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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술이세무사 Nov 28. 2023

세무사 개업 (세무법인 퇴사)

세무사의 하루

PC카톡의 알람이 울린다.


'폐'?


경기악화로 몇 안 되는 거래처 중에서도 폐업이 있는 요즘이다 보니 '폐업'의 'ㅍ'만 봐도 심장이 떨리는 상황


'또 폐업이면 안되는데..'


바로 클릭하기는 겁이 난다.

먼저 책상 주변에 이면지, 스테이플러, 널브러진 펜을 정리하고

냉장고에서는 박카스를 꺼내마셨다.

조세일보에 접속해 기사도 훑어보고..


5분 정도 지났을까?

심호흡과 함께 카톡을 클릭했다.



다행스럽게도 '폐업'이 아닌 '폐기처리'

히유...

안도의 한숨과 함께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 경기침체 기사와 어려움에 빠져있는 거래처를 보고 있자면

앞으로 나의 미래는 어떻게 될는지..

요새는 매일매일이 외줄을 타는 심정이다.


답답한 마음에 '한국세무사회' 홈페이지 내 세무사 모집공고를 조회했다.



[XXXX기금] 신입직원 채용 공고
-모집부문 : 세무사
-채용인원 : 3명
-연봉: 약 4,960만 원
[한국XXX공사] 전문계약직 채용 공고
-모집부문 : 세무사
-채용인원 : 1명
-연봉 : 약 5,553만 원 내
-요건 : 3년 이상 세무분야 경력보유



이래 봬도 7년 차 세무사

연차가 적지 않다 보니 웬만한 지원자격은 충족하고

빡빡한 경쟁률이지만 아직 젊은 편이니 열심히 준비한다면 통과 못할 것도 없다.


'다시 회사로 들어가는 건 어떨까?'


저 정도 연봉이면 어디서 부끄럽지 않을 금액

돈을 좀 모으면 그동안 못 산 정장과 구두를 사고

부모님 댁에 건조기도 하나 놔드리고 싶다.


퇴근 후에는 직장동료들과 술 한잔 기울이고

잘 꾸미고 다니면 사내 연애도 할  있겠지?

.

.

.

하지만

다시 회사로 들어갈 생각이면 잘 다니던 세무법인은 왜 그만두었을까?




입사 5년이 되던 해

나는 팀장에 임명되었다.


'믿고 맡겨주신 자리 최선을 다해보리라!'


어린 나이에 높은 직책을 맡게 되니 책임감과 의욕이 넘쳐났고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에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수익창출을 위해 고민했다.


그러나

회사창립부터 함께해 온 연차 오래된 직원들은 어린 세무사를 팀장으로 인정하기 어려웠던 것일?

팀장의 이야기를 귓등으로 들으며 그동안 해오던 업무처리에서 조금의 변화도 용납하지 않았다.


따라주지 않는 팀원들로 인해 여러 번에 좌절을 겪고 나니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고..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채 기존 일처리를 답습하날이 반복됐.


' '


그러던 어느 날 마음속에 떠오른 두 글자


'이곳에서 해내지 못한다면 내 회사를 만들어 이뤄보!'


단단하게 결심이서니 그 이후로는 거칠 것이 없었다.

며칠뒤 대표님께 사직서와 함께 퇴사 의사를 전달하고

한 달 동안의 인수인계기간이 난 후 퇴사와 함께 조그마한 원룸에 사무소를 개업했다.




그랬다.

매달 꽂히는 월급의 달콤함에 취했다면,

직장 동료들과의 어울림이 우선했다면,

지금도 회사를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내 회사를 만들어 보겠다는 무쇠와 같은 결심이 있다.


젊음에서 오는 객기여도 좋다.


나는 늑대


우리가 아닌 초원에서 죽고 싶다.




후기


어린 나이에 입사해 애기 대우를 받아서인지,

회사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굉장히 컸었습니다.

팀장이 되었을 때는 '내가 이렇게 잘할 수 있다.'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기도 했었구요.

하지만 제 역할을 찾지도 못하고 무엇도 바꿀 수 없는 현실을 맞닥뜨리니

퇴사를 결심하기까지 며칠이 걸리지 않았네요.


퇴사 당시 부모님, 친구, 주변 세무사들, 누구도 저의 퇴사를 응원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냥 다니지, 네가 뭘 어쩌려고'

준비 없는 성급한 퇴사에 다들 현실도피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럴 땐 후회보단 분노가

'그래? 내가 보여준다!'

이런 오기가 치밀었습니다.

쥐뿔도 없으면서 자존심만 셌죠;


주변에 우려처럼 개업은 쉽지 않았습니다.

좀처럼 상황이 좋아지지 않았다 보니 취업생각을 해본 적도 있었구요.

그런데 무언가 해보지도 못하고 중간에 포기해 다시 회사로 돌아갈 모습을 상상하면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현실도피였습니다.

'죽더라도 여기서 죽자.'

퇴사 때 결심을 떠올리며 '도망치지 말고 제대로 한번 해보자.' 마음을 다잡았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에 와서 제 능력을 증명할 필요가 있거나, 저를 인정해 줄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혈혈단신 바닥부터 시작해 일궈낸 거래처 그리고 함께하는 직원분들을 보고 있으면 작지만 일가를 이루었다는 생각입니다.

이 정도면 쬐끔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겠죠?

( ´ ▽ `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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