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는 왜 퇴사했을까?

관계의 거리, 1미터

by NULL

인간관계에 크게 관심이 없었던 내가 <관계의 거리, 1미터>를 읽게 된 건 순전히 가족 때문이었다. 동생이 이 책을 읽고 싶다고 해서 도서관에 희망도서를 신청하고 빌려오긴 했으나 내 취향의 글이 아닐 거라 생각해 읽을 마음이 없었다. 먼저 책을 읽은 아버지가 지나가는 말로 몇 번 내가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동생도 별다른 말 없이 조카의 짐가방에 책을 실어 보냈다. 내게는 그 행동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선생님 글은 마음이 힘든 사람이 읽는 겁니다.”


지지부진한 원고 작업 중 만난 출판사 대표는 저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가족들이 내게 이 책을 읽어보라고 한 건 그래서였다. 이 책의 저자는 정신과 의사였고, 나는 우울증 환자였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책부터 찾는 오랜 습벽 탓에 우울증을 인지한 순간 처음으로 찾았던 것도 병원이 아니라 책이었다. 한동안 정신과 의사가 쓴 책이나 환자의 상담 경험을 담은 책들을 연달아 읽었던 것 같다. 하지만 가장 효율적인 치료방법은 역시나 몇 알의 약이었다.

앞서 말했듯 나는 인간관계에 무심하고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타격을 받지 않는 성격이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둔 건 인간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3년 전 2명분의 업무를 8개월간 맡으면서 생긴 번아웃의 후유증 때문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관계의 거리, 1미터>를 읽고 난 후 나는 나의 문제 역시 관계의 문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보다 연차가 오래 된 사람에게도 요구하지 않는 업무량과 퀄리티가 내게는 당연하게 요구됐다. 2명분의 일을 하고 이제는 회사의 배려를 받고 조금 여유있게 일하고 싶었던 내게 돌아온 말은 2명분의 일을 야근 없이 해낸 사람이 왜 1.5명분의 일을 못하겠다고 하냐는 질책이었다. 조직 개편이 있던 해에는 열 명 이상의 직원들이 나에게 업무와 관련한 질문을 퍼부었다. 전임자가 모르쇠로 대응하니 전전전임자인 나에게 그 질문이 넘어왔다. 문제는 그 사람들 외에도 내가 맡은 업무와 관련하여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거였다. 심지어 동종업계의 사람들이 수시로 전화해 업무에 관해 묻는 일도 있었다. 외부교육에서 내가 질의응답하는 걸 보고 회사와 이름을 메모해뒀다가 전화했다는 사람도 있었고, 이전에 업무상 통화를 했는데 설명을 잘해줘서 따로 메모를 해뒀었다며 매번 1시간 넘게 전화기를 붙잡게 만드는 사람도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요구되지 않는 일들, 발생하지 않는 일들이 왜 내게만 발생하는 걸까. 나는 정확히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나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는 거라고 확신하기 시작했다.


‘조직생활은 나와 안 맞아.’


그렇게 내 마음은 회사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 우울증을 방치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퇴사했다.




이미 정신과 의사가 쓴 책들을 읽어본 경험이 있지만 <관계의 거리, 1미터>가 조금 더 특별하게 느껴졌던 건 환자가 아니라 저자인 의사 본인이 치료 과정에서 치유되는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정신과 의사가 쓴 책들은 성공적인 치료 사례를 담은 글들이 많다. 그것이 그 책을 선택한 사람들이 성공적으로 치료되고 위로 받아 어려움을 개선하는 방법이라고 대부분이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신과 의사 스스로가 자신 역시 문제가 있었고, 여전히 문제를 가진 사람이라고 말하며 어려움을 극복한 과정을 함께 언급하고 있는 게 꽤 진솔하고 따뜻하게 다가왔다. 오랜만에 책에서 따뜻함을 느꼈다.

기억에 남는 내용을 몇 가지 소개하자면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가 공황발작으로 병원을 방문했다. 그녀는 결혼식에서 남편의 변변치 않은 친구와 자신의 초라한 가족과 친지들이 주변에 공개되는 것이 두려워 결혼식이 다가올수록 초조하고 불안해져서 급기야 공황발작으로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다. 환자에게 저자는 자신도 타인의 시선을 많이 의식한다며 사람들이 의사에게 갖는 신뢰, 특히 정신과 의사에게 기대하는 도덕성 때문에 힘들었다고 말한다. 다음 상담일에 찾아온 환자는 저자에게 고마웠다며 이런 말을 한다.


“선생님, 저는 정신과 의사에게 큰 기대가 없었어요.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고요. 공황발작으로 병원에 갔을 때, 정신과를 방문해 보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온 거예요.”

- <관계의 거리, 1미터>, 내가 만든 타인의 시선 中


그녀는 저자의 말을 듣고 ‘누구나 자신이 만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산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저자에게 편하게 살라는 농담을 남기고 진료실을 떠났다. 나는 이 에피소드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우리가 의식하는 타인의 시선이란 결국 허구였던 것이다. 사람들은 남의 일에 관심이 없다는 건 익히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내가 2명분의 일을 맡아 허덕이고 있을 때도 자신이 요구한 일을 빠르게 처리해주지 않는 것에 불만을 표하며 회사에 안 바쁜 사람이 어딨냐며 왜 혼자 바쁜 척하냐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맡은 일이 다른 직원이 몇 년 동안 맡아오다가 타부서로 발령 나는 바람에 내가 임시로 맡고 있는 일인지도 몰랐다. 그는 그 업무가 줄곧 내 업무였다고 믿고 있었다. 회사 사람들의 착각에 따르면 나는 회사 일은 전부 혼자 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 와중에 내 일이 아니라고 하면 전임자가 아니냐며 내가 일을 미룬다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입사 이래로 내가 그 업무의 담당자였던 적은 단 하루도 없었는데 말이다. 사람들은 정말 다른 사람의 일에 관심이 없다. 오로지 자신이 편한 것만 생각할 뿐이다.




기억에 남는 두 번째 에피소드는 사실 흔하게 봐왔던 이야기다. 저자의 바람둥이 친구에 관한 이야기인데,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날 때마다 명함을 남발하는 친구를 보고 어느 날 저자는 정말 궁금해져서 그렇게 하면 정말 연락이 오냐고 물었다.


“백번 정도 명함을 주면 한두명. 그런데 그게 어디냐. 중요한 것은 연락이 오는 여자애는 정말 내게 마음을 열고 다가온다는 거지. 거의 사귀었던 거 같은데.”

- <관계의 거리, 1미터>, 바람둥이 친구 中


그때 나는 가족들과 아이의 공모용 그림을 편의점 점주가 발송하지 않았다고 오해한 엄마가 편의점에 차를 들이받은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과한 행동이긴 했으나 아이가 정성들여 그린 그림이 유실됐으니 속이 많이 상하기는 했겠다, 따위의 이야기였다. 문득 ‘아이의 엄마는 그 공모전이 아이 인생에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인생에서 참여할 수 있는 공모전은 무궁무진할텐데 말이다. 그러다 퍼뜩 나 자신도 그런 마음으로 스쳐가는 모든 기회들에 상처 받아왔음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낮에 읽었던 책의 내용을 떠올리며 백 번 정도는 실패할 각오로 모든 도전에 임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내내 실패하는 것이 두려워서 도전하지 않았던 일들도 이번엔 반드시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무것도 안하면 실패조차 못한다는 사실이 사무치게 와닿았다.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 빅터 플랭클이 말더듬이 환자를 치료했던 일화도 떠올랐다. 작정하고 말을 더듬겠다고 각오하고 말해보라고 했더니 환자는 말을 전혀 더듬지 않았다고 한다. 실패를 각오하고 하다보면 오히려 실패가 더 힘들어지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했다.




나의 문제 역시 관계의 문제라고 생각하게 만든 결정적인 에피소드는 ‘누구의 행복이 더 중요한가요?’였다. 가족과 오랜만에 나들이를 다녀오는 길에 잠들었던 조카가 깨서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조카는 집까지 가는 동안 참을 수 있다고 말했지만 엄마는 참기 어려우면 차를 세우고 노상방뇨를 하라고 말했다. 나는 그럴 바엔 근처 가게에 들어가 화장실을 빌릴 수 있도록 부탁해보겠다고 했다. 별 거 아닌 이 문제로 엄마와 나는 가벼운 말다툼을 했다. 결국 조카는 집에 도착해 화장실로 호다닥 뛰어들어가 볼일을 보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됐다. 하지만 내 머리 속에는 여러 일들이 떠올랐고 조금 심각해졌다.


“누구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아간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행복이 자신에게 향해 있는지, 다른 사람에게 향해 있는지는 한번 생각해보세요.”

- <관계의 거리, 1미터>, 누구의 행복이 더 소중한가요? 中


나는 가족의 행복을 위해 사는 사람이었다. 기억이 있던 때부터 물욕이라는 게 없었다. 이것이 맏이 콤플렉스 때문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한 적은 있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나는 커다란 곰인형이 갖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유치원 행사 때 오는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자루에 인형이 들어가지 않는다며 곰인형이 재봉된 휴지걸이를 유치원에 선물로 보내겠다고 설득했다. 나는 그게 거짓말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엄마가 불편해질까봐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행사 후 선물을 받은 애들이 선물포장을 하나씩 깔 때 나는 친구들에게 엄마의 거짓말을 그대로 읊었다. 부모님이 초라해지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곰인형 휴지걸이는 그 뒤로 꽤 오래 우리집 화장실에 걸려 있었다.




퇴사 후 나는 내 행복을 위해 살아보기로 했다. 여전히 갖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없었지만 회사원이 아닌 다른 직업을 갖고 싶다는 마음이 남아있었다. 퇴사 후 굳이 회사를 생각하지 않았다. 회사와 관련된 것들을 떠올리는 게 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일부러 피하기도 했다. 나는 마치 처음부터 백수였던 것처럼 백수생활에 적응해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관계의 거리, 1미터>를 읽은 후 회사생활을 하면서 불거졌던 일들 역시 관계의 문제였을 것 같다는 막연한 추측이 마음을 자꾸 불편하게 들쑤셨다.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아 덮어뒀던 상념들이 조카의 화장실 사건으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나는 다음 정신과 상담일에 이렇게 말할 것이다.


“타인이 불편해 하는 걸 못 견디는 게 퇴사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줬다고 생각은 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게 전부였던 것 같아요. 일을 과하게 맡았던 것도, 그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부서이동 제안을 거절한 것도 그로 인해 누군가 불편해질 거라는 생각에 했던 결정이었어요. 내 불행은 내가 감수하고 참을 수 있는 것으로 치부하고 방치하면서 늘 다른 사람이 불편하지는 않은지 전전긍긍했던 거죠.”


노인돌보미를 하시는 어머니는 체력적으로 힘들어 하면서도 주말에도 일을 나가신다. 자신이 나가지 않으면 애가 셋인 그 집 첫째 딸이 무리해서 할머니를 돌보러 나와야 하는데 그걸 모른 체하기가 어려우신 거다. 물론 이 성향만이 문제는 아니다. 부모님 두 분 모두 완벽주의 성향을 가졌고 아버지에게서는 문제 상황은 반드시 내 손으로 해결하고 마는 고집스러운 부분과 물욕 없이 살아가는 절제하는 부분을, 어머니에게서는 앞서 말한 타인의 불편함을 가만 내버려두지 못하는 지나친 공감능력과 이타주의를 물려받았다.

앞으로 조직생활을 할 마음이 없으니 이전에 회사에서 겪었던 것과 같은 일은 웬만해선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이 조금은 변화하셨으면 하고 바라는 걸 보면 어느 정도는 고치는 것이 필요한 성향임은 분명하다. 뜻밖에도 읽지 않으려던 책을 읽고 내 우울증의 근본적인 문제점 일부를 발견했다.




정말 고마운 책이지만 마지막 장에서 나는 마음이 좀 서늘해졌다. 이것이 정신과 전문의들을 대상으로 치료방법이라고 가르치는 정석이라면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중요한 부분이다.


“… 모든 사람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사는 것은 아냐. 아직도 앞날이 한창인 네가 이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수도 있어. 많은 이들이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살아. 지금 네 옆에서 울고 있는 어머니도 자신의 행복이 아닌 바로 너의 행복을 위해 살고 있어. 네가 왜 살아야 하냐고 굳이 내게 묻는다면 그냥 엄마를 위해 한번 살아봐.”

- <관계의 거리, 1미터>, 나는 행복을 주는 사람 中


만약 자살을 시도하며 왜 살아야 하냐고 묻는 이들에게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보라고 말하는 게 정신과 치료의 정석이라면 이건 그 환자에게 지금 당장 죽으라는 것과 다름없는, 그야말로 자살방조다. 이미 충분히 누군가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이라고 믿고 달려왔던 사람이 어느 날 문득 그런 인생이 보람차지만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때로 존중 받지 못하고 착취당하는 것처럼 느껴져 이제는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원래대로 살라니. 세상은 더 이상 살아갈 가치가 없는 것이라는 걸 재확인시켜 주는 꼴이다.

본인들은 자각하지 못하겠지만 때로 정신과 의사들의 말은 환자에게 너무 차갑게 와닿는다. 물론 진심은 그런 의도가 아니겠지만 속뜻을 읽어낼 수 있을 정도면 환자가 굳이 병원을 찾지도 않았을 것이다. 왜 살아야 하는지 묻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 내일까지 살아 있어야 하는 이유다.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행복하다고 느끼는지, 나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과정이 그에게 필요하다. 당장 먹고 싶은 게 있고, 사고 싶은 게 있고, 가고 싶은 곳이 있고, 하고 싶은 게 있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그러니 알아야 한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언제 행복한지. 언젠가 다시 타인을 위해 살아가는 걸 선택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내가 누구인가를 분명하게 알고 살아가는 것과 모르는 채 살아가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다.



“죽으면 편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긴 해요.”


첫 상담에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냐는 의사의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3개월이 지난 지금 이 질문에 다시 대답하자면 “아니오.”다. 사실 우울증 치료를 병행하며 퇴사를 준비하는 과정과 퇴사 후에 상태가 바로 개선되지도 않았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너무 무기력한 상태로 몇 달을 보낸 터라 퇴사가 내 삶에 극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지는 않는다는 결말에 씁쓸했다. 하지만 내 상태에 맞게 복용하는 약의 종류를 점차 늘려가면서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안정된 상태에 이를 수 있었다. 그게 겨우 일주일째다.

그래도 나는 너무 행복하다.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에,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에, 저질체력으로 누워있는 것밖에 못하는 상태를 벗어난 것에 정말 행복하다. 돈 한 푼 못 버는 백수라는 건 지금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하고싶은 것을 충분히 할 수 있을 만큼 좋아졌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환경도 어느 정도 갖췄다는 것.


나는 최근 몇 년 중 가장 행복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