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사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회사에서 일하는 게 더 이상 즐겁지 않게 되면서 문제의 시작에 대한 답 없는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일이 어떻게 재밌을 수 있냐는 정신과 의사의 말이 아니더라도, 나 역시 오래 전부터 그 사실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 현재가 즐겁지 않으니 일을 하며 보람과 성취를 느꼈던 과거가 도무지 납득되지 않았다.
과거에 가능했던 일이 왜 지금은 노력해도 되지 않는 걸까? 과거의 기억이 벌써 풍화되고 미화된 걸까? 오랜만에 들춰봤던 대학시절 일기가 떠올랐다. 돈도 없으면서 지금보다 더 많은 문화생활을 즐기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는 사실에 꽤 충격을 받았었다. 도대체 그때의 에너지는 지금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어쩌면 그저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에너지가 고갈된 것뿐일지도 모른다.
갖은 노력에도 일하는 즐거움은 돌아오지 않았다. 해결되지 않는 의문들은 급기야 자기부정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나는 주변사람들에게 실은 나는 일을 좋아하지 않으며 주위사람들의 높은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항상 신경과민상태에 놓여 있었고, 그것이 마침내 터져버렸노라 고백했다. 물론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나의 고백에 “아 그랬구나.”라고 호응해주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다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네가?”라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걸으면서 심심해하고 그런 심심함을 참지 못하는 사람은 마음의 평정을 잃고 안절부절못하며 돌아다니거나 이런저런 다른 활동을 해볼 것이다. 하지만 심심한 것을 좀더 잘 받아들이는 사람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어쩌면 걷는 것 자체가 심심함의 원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은 그로 하여금 완전히 새로운 움직임을 고안하도록 몰아갈 것이다.
- <피로사회>, 깊은 심심함 中
나는 함께 일한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워커홀릭이었다. 일이 없는 상태를 십 분도 견딜 수 없었다. 사실 업무량을 고려할 때 일이 없는 상태는 삼십 분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잠깐의 시간조차 버티지 못해 팀장님에게 일을 달라고 졸랐고, 다른 팀원들에게 도울 일이 없는지 물었으며, 업무를 개선하거나 새로운 일을 벌였다.
남들은 회사에서 쇼핑을 하고, 영상을 보고, 게임을 한다는데 나는 한 번도 그러지 못했다. 사실 너무 바빠서 남들이 회사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도 몰랐다. 다들 비슷하게 바쁠 거라고 생각하다가 그게 아니라는 걸 알 게 될 때는 매순간이 충격이었다. 팀원이 바쁠 거라 생각해 무리하게 일을 떠맡았는데 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을 때나 다른 건물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여유롭고 한가로운 한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느낀 감정은 일종의 배신감이었다. 그리고 뒤이어 회사생활에 대한 회의가 따라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를 다니며 가장 괴로웠던 순간은 일이 많은 때가 아니라 없을 때였다. 우울증이 심화되고 몇 차례 퇴사를 언급할 때마다 일이 줄어들었건만 내 마음은 편해지지 않았다. 여유로운 순간 찾아오는 잡생각들은 서서히 나를 잠식했고, 나의 멘탈을 사정없이 갉아먹었다.
‘일조차 하지 않을 거라면 나는 왜 회사에 앉아 시간을 허비하고 있어야 하는 걸까?’
회사 밖에 나의 꿈들이 나를 보며 손짓하고 있었다.
긍정성의 과잉 상태에 아무 대책도 없이 무력하게 내던져져 있는 새로운 인간형은 그 어떤 주권도 지니지 못한다. 우울한 인간은 노동하는 동물로서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물론 타자의 강요 없이 자발적으로. 그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다. …(중략)… 우울증은 성과주체가 더 이상 할 수 있을 수 없을 때 발발한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일과 능력의 피로이다.
- <피로사회>, 규율사회의 피안에서 中
회사에서 몇 차례 업무를 바꾸고 부서이동을 하면서 ‘일이 즐거운 나’는 아주 잠깐씩 돌아왔다. 하지만 모두 길어야 두 달을 넘기지 못했다. 팀원의 휴직으로 새로운 일을 또 떠안게 됐을 때, ‘이걸로 또 두 달은 버티겠네.’라고 생각하는 나를 보며 스스로도 참 답이 없다 싶었다. 회사에 더 이상 나를 즐겁게 해줄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뒤, 나는 몇 달을 더 버티다가 우울증으로 퇴사했다. 마지막까지 나는 왜 즐겁게 일하던 때로 돌아갈 수 없었는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그 대답을 나는 퇴사 후 세 달여 만에 한 권의 책에서 발견했다. 그리고 끝까지 벗지 않으려 했던 가면을 마침내 벗어던졌다. ‘즐겁게 일했던 나’는 내가 만들어 낸 환상이었다. 나는 워커홀릭인 자신의 성향에 맞게 일을 하고 그에 따른 당연한 보상을 원했다.
입사 후 삼 년간은 이 당연한 공식이 적어도 나에게는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스스로의 높은 기준에 맞춰 나 역시 열심히 일하기도 했지만, 그 모습을 좋게 봐준 분들이 애써주신 덕분에 회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고 곧바로 보상으로 이어졌다. 퇴사 무렵 알게 된 바로 나는 삼 년간 직원 평가 1위였으며, 그 때문에 사내에서 가장 높은 연봉인상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물론 직원 평가 1위가 내가 최고의 직원이란 의미는 아니다. 표준편차를 적용한다면 양적평가에서도 내가 1등이 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고, 질적평가로 보아도 내가 1등은 아니었다. 또한 연봉인상률이 높을 수 있었던 것도 애초에 내가 연봉이 낮은 신입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중요한 건 객관적으로 내가 그렇게 형편없는 직원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회사 대표가 바뀌고 새로운 평가도구를 도입하면서 발생했다. 새로운 평가도구는 평가대상을 줄 세우기 위해 억지로 비율에 맞춰 강제로 낮은 점수를 부여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그렇게 받은 점수를 부서별로 정해진 등급 인원에 맞추기 위해 강제로 하향조정했다. 이 황당한 평가는 모두가 같이 일하기를 거부하여 1인 부서에 혼자 동떨어져 일하는 직원과 내가 동일한 등급과 성과급을 받게 되는 해괴한 결말로 이어졌다.
이런 부당한 평가에 직원들의 사기가 저하되는 것은 당연한 일임에도 나와 면담을 했던 인사권자는 직원들의 사기가 계속 해서 떨어지고 있는 문제를 두고 나에게 하소연을 했다. 그리고 나처럼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연봉을 더 받아야 한다며 회사에 밉보인 팀원과 내 사이를 교묘히 이간질시켰다. 그 사람의 연봉을 깎는다고 나한테 연봉이 더해지는 구조도 아닌데 말이다.
내가 만난 인사권자들은 언제나 말로만 나를 칭찬했다. 모두가 같이 일하고 싶어 하는 직원, 팀에서 서로 데려가려고 하는 직원. 조직개편 때는 일당백을 하기 때문에 내가 있는 팀에는 필요인원보다 적게 배치해도 괜찮다는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이런 말이 직원을 기쁘게 할 거라고 생각한다는 게 어처구니없었다.
“저 그런 말 듣는 거 싫어요. 다들 일 많이 시키려고 저 데려가시려는 거지 잘해주려고 데려가려는 거 아니잖아요.”
퇴사를 마음먹고 막 나가던 나는 말대꾸를 하며 입에 발린 보상을 차단했다. 그쯤 오 년 먼저 입사한 선배가 연봉에 관해 계속해서 내 신경을 긁은 것도 보상에 대한 예민함을 극대화시켰다. 내가 자신보다 연봉을 더 받을 거라며 자신은 월급을 받을 때마다 울었다는 헛소리를 반복해서 해대는 통에 결국 정색하며 화를 내기도 했지만 선배의 입버릇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보다 연봉을 더 받는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된 후엔 연봉도 더 받으면서 일을 꼼꼼하게 못하고, 일처리가 오래 걸려 야근을 한다는 이유로 선배의 일이 나에게 넘어오는 것도 못마땅해졌다. 업무분장에 지속적으로 이의를 제기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다. 나는 업무분장에 잔뜩 예민해졌고 피해의식이 생겼다.
쓸 데 없는 자존심으로 나는 내 우울증과 회사에 대한 불만이 보상체계 때문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세뇌시켰지만, 어떻게 아닐 수가 있겠는가. 나는 여전히 열심히 일하고 싶은데 그 열심히 일하고 싶은 마음을 이용만 하고 정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겠다는 회사, 그 부당함에 직원이 상처 받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방관하는 회사를 위해 일하는 이 미친 짓을 도저히 스스로에게 납득시킬 수가 없는데, 어떻게 괜찮을 수가 있겠는가.
마침내 나는 회사가 열심히 일하는 것밖에 모르는 나를, 적당히 일하는 융통성이라고는 없는 나를 가성비 좋은 톱니바퀴로 이용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부당한 관계를 끊는 것은 퇴사밖에 없었다. 내가 적당히 일하는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놀면서 회사를 다니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었겠지만,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봤을 때 그럴 가능성은 제로였다.
딱 한번 그런 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숨기고 평범하게 이 회사에 잠입했다. 나를 드러낼 때 내가 어떤 상태에 이르는지를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내 옆에는 유능한 사수가 있었고, 나는 그의 그늘에 가려 6개월 동안 존재감을 감출 수 있었다. 하지만 사수가 타팀의 팀장으로 발령이 난 후엔 다른 대안이 없었던 탓에 나는 그늘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밤샘 야근과 함께 6년간의 고난이 시작됐다.
다른 팀의 팀장이 된 그와 한번 더 같이 일할 기회가 있었다. 삼 년 전 사수는 내게 자신의 팀으로 올 것을 제안했다. 가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남은 사람들에 대한 걱정 때문에 결국 나는 그 제안에 응하지 못했다. 이 일이 나를 아니꼽게 보던 이들에겐 좋은 먹잇감이 됐다. 나를 둘러싼 어이없는 소문 중에 소속팀장과만 일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루머가 추가됐다. 일 년 뒤 사수는 갑작스레 퇴사했다.
퇴사를 생각하면서 예전에 사수가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는 자신이 이 팀, 저 팀 옮겨 다니며 밭을 일구는 사람이라고 했다. 사수는 이 회사에서 자신은 맡은 업무의 체계를 갖춰 놓으면 새로운 팀으로 발령 나서 또 새로운 밭을 일구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수가 떠난 자리마다 잘 가꾸어놓은 꽃밭에 다시 무성하게 풀이 자라는 걸 보았다. 문득 내가 사수가 걸었던 길을 따라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퇴사했다는 소식을 들은 사수로부터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그때 내가 사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우리는 조금 더 오래 회사에 남아있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라고 사수와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우리가 강한 척을 조금 덜하고 서로의 아픈 속내를 나눴다면 현재는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법을 알았다면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시간과 일들이 지나가버렸다. 나는 사수에게 다음에 같은 상황이 오면 제안을 꼭 받아들이겠노라 맹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