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4시간만 일한다
“일하는 게 재밌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점심을 굶어가며 일했다고요? 이해할 수가 없네요. 어떻게 일하는 게 재밌을 수가 있죠?”
궁금한 게 없냐는 질문으로 시작된 상담은 말꼬리를 잡듯 몰아치는 질문으로 한 시간을 채웠다. 환자가 가진 모순된 생각을 스스로 깨닫게 만드는 산파술을 이용한 정신 치료법이라는 건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환자들이 그러했듯 나 또한 이 치료 방법에 불쾌감을 느꼈다. 누군가는 상담 도중 화를 내기도 한다던데, 당시의 나는 완전히 바닥 아래로 가라앉아 아무 저항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네요.”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게 전부였다.
상담 횟수가 늘어날수록 의사가 내뱉는 말들은 더욱 무례해졌다. 병원을 추천한 내과 의사로부터 문제점을 빠르게 캐치하기 위해 때로 과격하게 느껴지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고 언질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마음은 쉬이 해소되지 않았다.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감정과 반응을 끄집어내기 위해서였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당시 나의 상태에 맞는 치료는 아니었다.
어차피 서울을 떠나 본가로 가면 다른 병원에서 본격적인 치료를 받을 것이다. 나는 의사에게 완전히 마음의 문을 닫았고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다. 처방전을 받기 위해 진료실로 들어가고 기분이 나빠진 채로 나오는 일이 반복됐다.
나는 전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완벽한 일자리란 가장 짧은 시간 일하는 것이라고 간주하겠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무한한 성취감을 주는 일자리를 제대로 찾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는 성취감을 목표로 하지 않겠다. 이 책의 목표는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도 수입은 저절로 생기게 하는 것이다.
- <나는 4시간만 일한다>, 이 책이 필요한 이유 中
나의 첫 번째 정신과 의사가 그러했듯 <나는 4시간만 일한다>의 저자 팀 페리스에게도 일이 재밌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는 이 재미없는 일하는 시간을 대폭 줄여보기로 했다. 팀 페리스는 재택근무와 업무위임을 통한 자동화로 일주일에 4시간만 일하고도 더 많은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또한 통화가치가 높은 곳에서 수익을 얻어 통화가치가 낮은 곳에서 생활하며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으로도 백만장자의 경험을 누렸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나는 직장인이었다. 하루에 4시간만 일하면 인생이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에 나온 주요법칙들을 메모해 항상 소지하고 다니며 가끔 읽어볼 정도로 이 책을 좋아했다. 하지만 <나는 4시간만 일한다>에서 제안하는 것들을 한국에서 실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고임금을 받으며 저임금 국가의 근무자에게 업무를 위임하여 비용을 절감하는 것은 영어권 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이었고, 무엇보다 팀 페리스가 최초에 이야기한 때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나 있었다.
이 책은 2002년에 프리스턴대학교에서 강연한 내용을 바탕으로 2007년에 미국에서 출간되었다. 삶에 대한 새로운 방식은 충분히 인사이트가 될 수 있지만 직접적인 해결책으로 활용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굳이 비슷한 것을 찾아보자면 최근 한국에서 크게 유행하고 있는 스마트 스토어나 탈잉, 클래스101 등과 같은 온라인 강의, PDF 책 판매 등이 책에서 제안하는 모델과 가장 가까울 것이다.
백수가 되어 다시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일에 대한 정의’였다. 책의 도입에서 팀 페리스는 이 책이 ‘꿈의 직업’을 찾아주는 책은 아니라고 못 박았다. 그럼 거의 4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을 할애하여 그가 설명한 ‘일’이란 대체 무엇일까? 놀랍게도 ‘꿈의 직업’을 찾을 시간과 수입을 얻기 위해 토대를 다지는 것이다.
1단계에서 4단계까지의 결과를 바탕으로 파트타임 또는 풀타임의 새로운 직업을 생각해 보라. 그 일이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이라면 풀타임 직업이라도 나쁠 건 없다. 이 점에서 우리는 ‘직업’과 ‘천직’을 구분할 수 있다. 수입이 저절로 창출되는 구조를 만들었거나 일하는 시간을 대폭 줄였다면, 진정한 소명이나 꿈의 직업을 시험해 보는 것에 대해 생각하라. 이것이 바로 내가 이 책을 통해 한 일이다.
- <나는 4시간만 일한다>, 일을 없앤 후 공허함 채우기 中
팀 페리스는 ‘꿈의 직업’이란 유니콘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뭐… 그리 틀린 생각은 아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는 사람은 그 일이 생계를 책임져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회사원이 된다. 하고 싶은 일이 딱히 없는 사람도 회사원이 된다. 우리 모두의 꿈은 회사원이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 회사원이 가장 경쟁률 치열한 직업이 됐다.
나 역시 그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은 언제나 안정적인 환경이 갖춰진 후 그 너머에 존재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워라밸이 지켜지는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타이틀은 나를 빗겨 갔다. 점심시간을 쪼개 퇴사 준비를 하면 회사는 야근을 하고, 주말 근무를 해야 한다고 했다.
사무실에서 마지막으로 나와 불을 끄고, 가로등이 드문드문한 어두운 길을 터덜터덜 걸어 내려오며 맞았던 후덥지근하고 씁쓸한 그날의 바람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 그대로 잠이 들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지친 몸을 이끌고 지하철을 탈 것이다. 회사는 생활비를 벌기 위한 아르바이트에 불과할 뿐 진짜 나의 삶은 회사 밖에 있다고 끊임없이 내게 최면을 걸었지만 소용없었다. 나의 꿈은 회사 안에도, 퇴근 후에도 그리고 주말에도 없었다. 오로지 내 삶은 회사, 회사 그리고 회사였다.
“하지만…, 남는 시간에는 뭘 하시는데요?”
멕시코인은 미국인을 올려다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늦잠 자고, 물고기 좀 잡고, 아이들과 놀아 주고, 아내 줄리아와 낮잠을 잔다우. 그리고는 저녁마다 마을을 어슬렁거리다 포도주도 마시고 친구들과 기타를 치면서 놀지. 살고 싶은 대로 살면서 내 딴에는 바쁜 몸이라우.”
…(중략)…
“수백만 달러? 그러고 나서는?”
“그다음엔 은퇴한 후 작은 어촌 마을로 가서 늦잠 자고, 물고기 좀 잡고, 아이들과 놀아 주고, 아내와 낮잠 자고, 저녁에는 어슬렁어슬렁 마을이나 돌아다니며 포도주도 마시고 친구들하고 기타 치며 노는 거죠….”
- <나는 4시간만 일한다>, 삶의 중간에 떠나는 미니 은퇴 中
참 이상한 일이다. 직장인일 때는 실천은 못할망정 팀 페리스의 말에 ‘그럼, 그럼, 맞지. 그렇고 말고.’라고 고개를 끄덕이기 바빴던 나는 백수가 된 후 그의 말에 계속해서 반기를 들게 됐다. 우리가 부를 추구한 끝에 얻으려고 했던 삶은 지금 현재에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었다며 너무 많은 부를 좇을 필요 없다고 말하는 그에게 왜 ‘꿈의 직업’으로 바로 향하지 않고 에너지를 엉뚱한 데 쏟아 붓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 온전하진 않지만 상당 시간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보낼 수 있는데 경제적 자유를 위해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며 돈을 벌어야 할까? 팀 페리스에게 영감을 받은 스콧 리킨스의 <파이어족이 온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경제적 자유를 위해 평균 10년 이상 인내하며 씨드머니를 모아야 했다. 그걸 계산하며 퇴사시점을 잡다보면 영원히 퇴사하지 못할 것 같아 숨이 턱 막혔다.
우울증 환자의 장점은 스트레스 상황을 최대한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예전만큼 넓지도 않아 선택의 폭도 제한적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지금 책을 읽을 수 있는 상태인가, 글을 쓸 수 있는 상태인가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책을 읽는다면 가벼운 소설을 읽을 수 있는 상태인지 사고를 요하는 책을 읽을 수 있는 상태인지 확인해본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모든 일의 마무리가 느려진다. 상태에 따라 이거 했다, 저거 했다 분주해진다. 어떤 때는 둘 다 할 수 없어 낙서를 끄적일 때도 있고, 재밌지도 않은 유튜브 영상을 보며 무표정하게 누워 있기도 한다.
이런 상태의 장점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확실히 나의 상태와 무관하게 의무감으로 일할 때보다 삶의 만족도가 높아진다. 할 수 없는 일을 포기할 때도 자책감을 덜 느낀다. 계획했던 바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해낸다거나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안전하게 지키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내 상태가 조금이라도 나빠지거나 균형이 흐트러지면 어차피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를 지켜야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일을 하나씩 차근차근 할 수 있다.
“어떻게 일이 재밌을 수 있죠?”
<진로진학은 과학이다!>의 저자는 좋아하는 일보다 잘하는 일을 선택하라고 했다. 잘하는 일은 직업으로, 좋아하는 일은 차선책이나 취미로 두는 것이 좋단다. 하지만 잘하는 일을 하다가 그 일이 싫어졌다면? 그때도 계속 생계를 위해 그 일을 고수해야 하는 걸까? 애초에 인간은 일을 즐겁게 할 수 없도록 만들어진 것일까?
누구에게나 불확실성과 실패의 가능성은 어둠 속에서 나는 무서운 소리와 같다. 따라서 사람들은 대개 불확실성보다는 불행을 선택한다.
- <나는 4시간만 일한다>, 행동 없이는 행복도 없다 中
나는 딱 일년만 불행보다 불확실한 행복을 택하기로 했다. 앞서 말했듯 달리 선택지도 없다. 나는 나에게 최적화된 직업을 찾을 것이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것이다. 물론 일년 뒤에 “팀 페리스! 당신 말이 맞았어!”라며 뒤늦게 스마트 스토어를 열기 위한 공부를 시작할 수도 있다. 그건 그때 가서 판단하기로 하고, 지금은 재밌는 것만 해보려고 한다. 일년 뒤 차선책이 되고 취미가 된다 해도 그 또한 나쁘지 않은 결말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