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고 싶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 당신에게
비염 환자들의 훌쩍임과 곳곳에 출몰하는 러너들은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전령이다. 한강 근처, 도심, 하천 주변 등 시내의 주요 스팟에는 어김없이 러너들을 만날 수 있다. 바야흐로 달리기의 대유행시대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 달리기는 고통을 참아가며 한계에 도전하는 근성 있는 일부, 특히 중년들의 비주류 취미였다.
러닝 붐의 원인은 뭘까. 기안84, 가수 션, 이시영 등 연예인들의 러닝 참여가 주도했다는 의견, 골프, 테니스로 이어지는 MZ세대의 인스타그래머블(인스타에 찍을 만)한 운동 취미가 가성비 있는 러닝에 정착했다는 의견 등 분분하다.
마라톤 대회 참가만 해도 요새는 경쟁이 치열하다. 아이돌 콘서트 티켓팅으로 단련된 MZ세대들이 오픈런으로 다 선점해 버리는 것이다. 기어이 참가비에 끼워 팔기까지 등장했다. 참가권에 러닝화, 스마트시계, 소소하게는 러닝벨트 등을 끼워 파는 것이다. 참가비 10만 원에 스마트워치 50만 원이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일반 티켓팅에 실패한 가련한 러너들을 유혹하는 악랄한 상술이다.
참가비만 해도 그렇다. 코로나 전엔 마라톤 풀코스도 5만 원 정도이던 것이, 이젠 풀코스 10만 원, 10킬로미터는 8만 원이 정가(?)인듯하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해도 두 배는 심하지 않은가.
주말 저녁의 한강변은 러너들로 빼곡하다. 에버랜드에 온 것 같아 혼미하다. 얼른 러닝의 인기가 식었으면 좋겠다. 예전처럼 한적하게 달리고 싶다. 안타깝게도 당분간은 힘들듯하다. 평소에 운동과는 하나도 인연이 없던 사람들까지 달리러 나오고 있는 지경이다.
이를테면 친구 L이 그렇다. 몇 년 전 내가 러닝을 권유할 때는 분명 저글링 하는 서커스단의 원숭이를 보는 눈길로 나를 쳐다보았다. 최근에야 "나도 동네에서 달리기 하고 있어.."라며 슬며시 고해성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별건 아니고 매일 2킬로미터씩 뛰어. 근데 걸어가는 사람들이 나를 다 추월해."
달리기의 장점이야 두 말하면 입 아프다. 챗GPT에게 물어보았다. 신체적으론 심혈관 건강을 개선하고, 체중 감량 및 체지방 관리에 효과적이며 하체 근육과 골밀도를 강화해 골다공증을 예방하며 면역 체계도 강화한단다. 정신적으론 엔도르핀 분비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우울과 불안을 완화하며, 뇌 혈류량 증가로 집중력이 향상되며 성취감과 자기 효능감을 높인다. 만병통치약 고로쇠물을 능가하는 효능이다. 알고 보면 달리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리기를 주저하는 당신에게 '걷기보다 느리게 뛰기 클럽'에 가입하기를 제안한다. 좀 민망하다면 고상하게 'SRC(Slow Running Club)'라고 불러도 좋다. 회원은 아직 나와 L뿐이다.
아직도 달리기가 엄두가 나지 않는 당신을 위해 내가 체득한 다음의 요령을 공유한다.
1. 약간의 준비물이 필요하다. 제대로 된 러닝화는 한 켤레 구비하면 좋다. 스포츠 매장 가서 물어보면 알아서 추천해 줄 것이다. 트렌드를 따르고 싶으면 호카와 온러닝이 인기다. 무릎 보호를 위해 슬개골 밴드도 구입하면 좋다. 스마트폰을 갖고 달리고 싶다면 러닝벨트를 구입하자. 밴드와 벨트는 꼭 비싼 브랜드가 아니더라도 괜찮다.
2. 가벼운 체조로 몸을 풀고 일단 달려보자. 달리기란 속도와 상관없이 두 발이 동시에 땅에서 떨어져야 한다. 한 발이라도 붙어있으면 달리기가 아니라 경보다.
3. 가능한 한 천천히 달린다. 이러다가 멈추면 어쩌지 하는 정도로 천천히 달린다. 숨찬 나머지 호흡이 곤란하지 않을 정도여야 한다. 내 들숨날숨으로 달리는데 필요한 산소를 충분히 공급할 수 있어야 지속적인 달리기가 가능하다.
4. 속도는 전혀 상관없다. 걷는 사람이 나를 추월해도 상관없다. 우선 일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달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뛰다가 힘들면 걸어도 된다. 뛰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5. 좀 달릴만하면 서서히 거리를 늘려본다. 다시 강조한다. 속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달리기가 좀 된다 싶으면 속도를 올리지 말고 거리를 늘리기를 추천한다. 거리가 늘면 속도는 어느 정도 따라오게 되어 있다.
6. 달리기가 끝나면 바로 멈추지 말고 좀 걸어서 쿨다운을 해준다. 이어 스트레칭으로 근육의 피로를 풀어준다. 달리고 난 뒤 무릎에 아이스팩 등을 이용해 얼음찜질을 하면 좋다. 무릎의 열감을 내려 통증을 예방해 준다.
요새야 러닝크루라 해서 단체로 달리고 서로 430이니 530이니 하며 기록을 경쟁하지만 원래 달리기는 고독한 운동이다. 그리고 당신이 느리게 뛰건 말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당신은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는가? 좀 전에 지나간 행인의 인상착의를 기억하는가. 아마도 아닐 것이다. 남들은 잊자. 내 페이스대로만 달리면 러닝은 가능하다. 그 페이스가 남들보다 많이 느려도 상관없다. 1킬로미터도 못 달리다가 꾸역꾸역 10킬로미터까지 달리게 된 내가 보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