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잠수교-한남대교 우중런(5km)

러닝을 가로막는 건 나의 의지뿐

by 수메르인

달리기는 야외활동이지만 날씨에 별로 상관없다. 기온이 높아도 수분 공급에 신경 쓰면서 많은 사람들이 뛴다. 방한용 옷만 든든히 입으면 겨울에도 달릴 수 있다.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뛸 수는 있다. 마라톤대회는 우천 취소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는 듯하다.


요 며칠 계속 비가 왔던 터라 러닝을 미뤘다. 오래간만에 비 없이 흐리다는 일기 예보를 믿고 집 밖에 나섰다. 얼굴을 때릴 정도로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일단 집에 돌아와 잠시 고민했다. 명절 연휴에 전과 튀김 따위를 많이 먹어 오늘은 꼭 뛰어야 했다.


지난번에 갔었던 잠수교는 비가 와도 달릴만하지 않을까. 상단에 위치한 반포대교가 지붕이 되어줄 텐데. 잠수교 북단과 이어지는 동쪽 한강 산책로는 강변북로 고가 밑이라 그늘졌었다. 비도 막아주지 않을까. 한번 시도해 볼 만했다. 아예 비를 제대로 맞은 채 뛰려면 어디라도 상관없겠지만 처음 시도하는 우중런이었기 때문에 혹시라도 감기에 걸릴까 걱정됐다. 우중"런"을 하고 싶었다. 꼭 "우중"런일 필요는 없었다.


잠수교는 서울 지하철 3-7-9호선 인 고속터미널역이 제일 가깝다. 보통 8-1 출구를 통해 지상으로 나와서 한강까지 걸어간다. (오늘같이 비를 피하기 위해) 최대한 지하로 가려면 고속터미널 지하상가, 일명 고터몰 서쪽광장으로 향한다. G2 출구로 나가면 원베일리 아파트 옆으로 한강까지 지하보도로 연결되어 있다. 24시간을 형상화한 이런저런 벽화를 따라가면 된다.


평상시보다 준비물을 두 개 더 챙겼다. 러닝용 모자와 방수재킷이다. 비 올 때 안경을 쓰고 달리면 와이퍼 없이 운전하는 것과 같다. 물방울 때문에 시야 확보가 안된다. 젖어도 무거워지지 않도록 금방 마르는 가벼운 기능성 러닝모자가 좋다. 방수재킷은 달릴 때는 필요 없다. 거추적거리고 달리다 보면 열이 오르므로 반팔티로 충분하다. 러닝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는 땀이 식으면서 체온이 떨어져 감기에 걸리기 쉽다. 재킷을 입으면 한결 낫다.


지하철역부터 반포 한강공원 입구까지 비 맞지 않고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한강공원은 날씨 때문인지 한산했다. 길을 건너면 잠수교인데 이 구간은 지붕이 없어 비를 맞는 수밖에 없다. 잠수교에 도착해 방수재킷을 허리춤에 묶고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스마트워치 러닝앱의 시작버튼을 눌렀다.


잠수교를 달리기 시작하자 한강 쪽에서 미세한 빗방울이 들이닥쳤다. 비를 아예 맞지 않을 거라 기대한 건 아니었다. 그러려면 실내 피트니트 센터를 가야 한다. 바람이 꽤 불어 비가 사선으로 들이닥쳤다. 분무기를 뿌리는 정도의 빗방울이 계속 얼굴과 몸에 분사됐다. 잠수교 오른쪽 보행로로 달렸는데 우측으로 뛰어서 더욱 심했다. 양방향이면 서로 우측으로 달리는 게 관행이다. 비를 덜 맞으려면 용산 방향은 잠수교 왼쪽, 반포 쪽으로 갈 때는 오른쪽 보행로를 선택하자.


성가신 건 날리는 빗방울뿐만이 아니었다. 군데군데 고인 물 웅덩이를 밟아버리면서 신발이 서서히 젖어갔다. 물 웅덩이를 피하느라 스텝도 일정하지 않아 힘이 더 들었다. 그럼에도 우중런만의 매력이 있다. 우선 시원하다. 달리면 몸에 열이 오르기 때문에 과열한 기계 같아진다. 잔디밭에 돌아가는 스프링클러처럼 비가 실시간으로 열을 식혀줘 쾌적했다.


뿐만 아니라 한강을 전세 낸 것처럼 달릴 수 있다. 요새같이 러닝의 유행으로 한강이 북적일 때 더욱 빛을 발한다. 이 날씨에도 간간히 뛰는 사람들과 마주쳤다. 곱게 접힌 우산을 들고 달리는 사람, 우산을 쓰고 달리는 사람도 보였다. 고개를 돌려 한강을 바라보니 뿌연 유화처럼 빗방울이 도시 전체를 덧씌우고 있었다.


잠수교를 빠져나오자 비를 바로 맞았다. 몇백 미터를 달리자 산책로가 강변북로 밑으로 연결되면서 완전히 비를 막아줬다. 오늘은 5km 뛰는 게 목표여서 한남대교 북단 한남역 인근에서 반환점을 돌았다. 중간에 비가 가려지지 않는 지점이 두어 군데 있었지만 체감상 3/4 이상은 방수였다. 아예 비 맞는 게 싫으면 그 구간만 왕복하는 것도 방법이다. 조금 더 간다면 옥수역 인근인 동호대교 북단에서 반환점을 돌 수도 있다. 8km 정도 코스다.


러닝을 끝내고 다시 지하도로를 이용해 고속터미널 역으로 이동했다. 땀이 식으면서 약간 오슬오슬했다. 재빨리 허리춤에 묶었던 방수재킷을 팔에 끼워 입었다. 집에 오자마자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다. 젖은 옷은 세탁기에 넣고 러닝화는 잘 마르게끔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뒀다. 러닝을 가로막는 건 나의 의지뿐이라는 걸 다시금 확인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광화문-종로 멍멍이런(댕댕이런) 코스(8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