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의 말은 지금은 맞고 그때도 맞나?

by 수메르인

난 네가 지난여름에 한 말을 알고 있다


"엄마, 티브이 열 시 반까지 봐도 돼요?"

"안돼, 열 시까지 보기로 약속했잖아"

"지난달 세 번째 금요일에는 열 시 반까지 봤잖아요. 오늘은 왜 안 되는데요?"

"........ (그런 건 잘도 기억하네)"


나는 어제 점심에 뭐 먹었는지도 생각이 안 나는데(기억나시는 분?), 아이들은 자기들한테 유리한 건 악착같이 기억합니다. 아이들은 양육자가 제시하는 규칙에 대해 끊임없이 도전하기 마련입니다. 이들의 논리는 머리가 굵어지면서 점점 정교해집니다. 조금이라도 빈틈을 내주면 공격당하기 십상입니다. 기싸움에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습니다. 나이 탓인지 단기 기억상실증인지 고민되는 저로서는 점점 불리해집니다.


한편, 아이들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아이들은 양육자의 말이 일종의 법입니다. 어른들만큼의 융통성이 아직은 없습니다. 우리가 준수해야 할 법이 계속 바뀌면 어떻게 될까요? 어제까지는 신호등 초록불에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는데, 오늘부터 빨간불에 건너는 걸로 법이 바뀐다면요? 아이들이 혼란스러운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에게 지시를 할 때마다 항상 과거에 했던 말과 충돌하지 않는지 (기억력이 허락하는 선까지) 생각해봅니다.




일관되어야 신뢰할 수 있다


예전의 제 사수가 남긴 금언입니다.


"통계는 거대한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지. 그 안은 닫힌 생태계야. 솔직히 통계가 정확한지는 생태계 밖에서는 모를 수 있어. 통계는 어떤 기준으로 집계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거든. 설혹 과거 뭔가 틀렸다고 해서 함부로 수정한다면, 과거와의 비교는 무의미하고 통계는 신뢰를 잃겠지."


자기가 만든 통계가 틀린 것에 대한 변명치고는 거창했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는 알겠습니다. 시대를 관통하여 일관되어야 신뢰할 수 있다는 걸요. 우리가 의사 판단을 할 때 과거의 행동은 현재의 판단의 지표 중 하나가 됩니다. 이를테면 우리나라와는 달리 영미법에서는 판례법주의를 따릅니다. 즉, 법원이 내린 판결에 대하여 법적 구속력을 인정하고 이것을 제1차적인 법원(法源)으로 하는 법원칙입니다. 따라서 선례 구속의 원리에 따라 동급이나 하급법원이 이와 동일한 내용을 가진 사건을 재판할 경우 기존의 판결에 따릅니다. 이러한 원칙의 근간에는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는 동일하게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합의가 깔려 있습니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지


예전에 모셨던 S 부장님은 "그때는 그때고"라는 무적의 논리가 있었습니다.


[Scene 1] 구내식당에서 다 같이 모여 점심심사를 하고 있다.


"수메르 과장, 자네는 왜 밥을 먹기 전에 국을 먼저 먹는 건가?"

"부장님께서 지난번에 목이 메니 국물부터 한 숟갈 뜨라고 하셨는데요.."

"그때는 그때고! 짠 음식이 먼저 입에 들어오면 입맛 버려서 되겠어?"

"....... 네, 밥부터 먹겠습니다..." (다음번엔 뭐부터 먼저 먹어야 되나...)


업무를 할 때마다 입장이 바뀌니, 하급자인 저로서는 참 곤란했습니다. 어느 기준에 맞춰 일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거든요. 하지만 저는 부하직원에 불과하니 매번 의사결정권을 가진 상사가 하는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뀐 입장에 대한 근거를 대면 반박이라도 할 텐데, 마법의 문장인 '그때는 그때고'가 나오는 순간 더 이상의 논쟁은 불가능했습니다.


확고한 주관이 없으면 외부 변화에 따라 나의 판단도 이리저리 변합니다. 결국 일관성 있게 행동하려면 스스로의 잣대를 먼저 세울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상황에 맞춰 판단을 수정해야 할 때는 있습니다. 환경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입니다. 하지만 충분하게 납득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본인이 유리하기 위해 입장을 바꾸면 부하직원의 신뢰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만큼 일관성이라는 것은 사람 간의 신뢰에 대한 중요한 원칙입니다.



MZ세대는 여러모로 공정성을 원한다


이것은 공정성이라는 측면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상사가 언제가 되든지 같은 기준으로 나에게 업무지시를 하고 평가하는 것은 '시계열적인 공정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상사와 나를 같은 잣대로 적용하기 바라는 것은 '횡단면적인 공정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횡단면적인 공정성에 대해서는 [브런치 매거진] 육아에서 배워 회사에 써먹기 "5. MZ세대는 실시간 공정을 원한다" (https://brunch.co.kr/@sumerians/8)에서 자세히 글 썼습니다.


이제는 끌어주는 강한 지도자보다는 알아서 가게 하는 리더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러려면 리더에게 신뢰를 가지게 해야 합니다. 한결같은 것만큼 신뢰를 주기에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Cover Photo by Hadija Saidi on Unsplash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제 막 워킹맘 반환점을 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