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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메르인 Sep 20. 2022

이제 막 워킹맘 반환점을 돌았습니다

나는 당신의 미래입니다


밤 열한 시.

당신은 이제 두 아이를 겨우 재우고 한 숨 돌립니다. 퇴근하고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픽업해 왔습니다. 저녁밥을 지어서 먹였습니다. 목욕을 시켰습니다. 아이들이 졸릴 때까지 책을 읽어주었습니다. 아이들은 하루 종일 엄마와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잠을 드는 것이 아까운 듯 칭얼댔습니다.


이제야 혼자만의 시간이 생겼지만, 뭘 할 기운도 의욕도 없어 스마트폰만 스크롤합니다. 내일 아침이면 애들 아침밥 먹이고, 옷 입혀 어린이집 보내고, 부랴부랴 출근해서 회사 컴퓨터의 전원을 켜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이 이어질 것입니다.


육아는 혼자 운영하는 24시간 편의점과 같아서, 순간의 힘듬의 강도보다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아득한 쉼 없음이 당신을 지치게 합니다.




아이들은 금방 큽니다


저의 아이들은 이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습니다. 스무 살 성인이 될 때까지 양육의 의무가 있다고 친다면 이십 년 중 절반인 십 년이 지난 셈입니다. 나머지 십 년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아직 모릅니다. 입시라는 가장 큰 관문을 앞두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최소한 한숨을 돌리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생각보다 아이들은 금방 큽니다. 아이들이 뭘 해도 귀여운 시기는 의외로 짧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면 사춘기가 옵니다. 새삼스레 엄마가 하지 말라는 건 다 마음에 안 드는지, 툭하면 말꼬리를 잡기도 합니다. 오죽하면 사춘기 동안에는 (엄마의 정신건강을 위해) 남의 아이 맡은 셈 치라고 했다죠. 신기한 건 그 시기가 지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해진다는 겁니다. 고등학생인 제 친구 딸은 '엄마, 나 사춘기 때는 왜 그랬는지 몰라'라고 인정했답니다. 아이들이 말을 안 들어 부아가 치밀 때마다, 예전에 찍었던 아이들의 동영상을 보여 '그래 이렇게 귀여운 시절이 있었지'하고 화를 참습니다. 아이들은 만 세 살까지 평생 할 효도를 다 한다는 말도 있죠.


어쨌든 이 시기가 되면 머리는 좀 아파도 몸은 편해집니다. 애들이 웬만한 건 스스로 할 수 있습니다. 화분 물 주거나, 건조기 돌리거나, 슈퍼 가서 간장 사 오거나 요런 간단한 심부름도 시킬 수가 있습니다. 이제는 화장실에 데려다 줄 필요도 없고, 밥 먹여 줄 필요도 없고, 목욕시켜 줄 필요도 없고, 화장실에 간 그 짧은 순간에도 문을 두드리며 엄마엄마~하며 저를 찾지 않습니다. 집에 오면 주로 방 안에 틀어박혀 있네요. 껌딱지처럼 붙을 때는 힘들었지만, 사람이 간사한지라 막상 저를 내버려 두니 서운한 마음도 좀 들 때가 있어요. 이십 년 중 이제 절반도 안 남았어요. 지난날보다 남은 날이 더 짧습니다. 시간이 가는 게 너무 아쉽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더디지만 워킹맘의 회사 문화도 바뀌고 있습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는 입사 때만 해도 여성 직원이 드물었습니다. 한 기수에 한 두 명 입사해서, 그나마도 결혼 등의 이유로 중도 퇴사하여 끝까지 남아있는 경우는 별로 없었습니다. 우연히도 제가 들어올 즈음부터 여성 직원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과거에는 달리 여성 롤모델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회사에서 인정받으려면 일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저녁마다 상사와 술을 마셔서 돈독해지는 것도 포함되었습니다. 그게 정석이었습니다.


이제는 여성 직원이 수백 명에 이르니, 그 안에서도 여러 가지 케이스가 생겼습니다. 여성만의 특성을 가지고 커리어에서도 다른 길을 모색하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오로지 실력만으로 인정받는 경우도 종종 생겼고요. 여성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성실하다는 평판도 생겼습니다. 남녀의 지능 분포를 보면 남성이 여성보다 표준편차가 크다는 한 연구결과도 있듯이, 대부분 고르게 업무성과를 보이는 여직원을 선호하는 상사도 늘어났습니다.


워라밸을 위해 필요한 순간엔 커리어를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 집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몇 달간의 출산휴가가 끝나면 육아휴직 없이 무조건 아이를 남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운 좋게 회사에 어린이집이 생겨 두 아이를 다 어린이집에서 키웠습니다. 덕분에 업무에 보다 집중할 수 있었으니, 저뿐만 아니라 회사에게도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최초로 육아휴직 1년 쓴 여직원이 등장하고(그 당시엔 그렇게 오래 쉬면 앞으로 회사 어떻게 다닐 거냐고 주변에서 걱정했습니다.) 육아휴직 쓰는 직원들이 늘어나다 보니, 요샌 법으로 보장된 2년 정도는 쓰는 경우도 많습니다. 남자 직원이 배우자와 번갈아서 육아휴직을 내는 경우도 있고요. 이제 육아휴직은 자녀를 낳으면 으레 쓰는 것으로 여깁니다. 성희롱의 인식 관련해서도 예전에 비해 많이 바뀌었습니다. 여직원이 가해자가 되는 것을 조심해야 할 정도로요.


그러니까, 워킹맘의 여건은 더디긴 해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당신과 나를 포함한 워킹맘 한 명 한 명의 궤적들이, 당장은 보이지 않아도 변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Cover Photo by Jp Valer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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