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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메르인 Mar 17. 2023

눈곱만 한 힘의 하찮은 남용

나이가 늘수록 체력이 떨어지는 게 실감이 난다. 서서히 떨어지는 게 아니고 계단식이다. 신기한 게 대략 오 년 단위로 많이 아프다. 마흔 즈음해서 많이 아팠다. 웬만큼 적응이 좀 됐다고 하니 사십 중반에 또 많이 아프다.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아니고 아프니까 중년이다. 그래서 근력운동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건강해지려고 운동하는 게 아니고 살려고, 아프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워킹맘 처지니 아무래도 점심시간을 활용하면 좋겠다 싶어 회사 피트니스 동호회에 가입 문의를 했다. 피트니스 동호회 총무인 모 대리에게 메신저 대화를 걸었다.


"빈자리 있나요?"

"아, 1분기는 마감이고요, 2분기에 다시 공지할 거예요"

"할 수 없네. 잘 알겠습니다"


단체 피티인데 나 한 명쯤 들어간다고 별 차이가 있나 싶지만 안된다니까 어쩔 수 없지. 그 동호회에 가입했다는 친한 팀장에게 말을 걸었다.


"나 그룹 피티 하려는데, 지금 마감이라 안된다네. 2분기까지 기다려야지 뭐."

"내가 거기 반장이야. 한번 알아봐 줄게"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그 팀장에게 연락이 왔다.


"내가 총무한테 물어보니까 어차피 안 나오는 사람들도 있어서 한 명 정도는 지금 들어가도 될 것 같대. 총무가 곧 회비 입금 요청메일 보낼 거야."


어라라, 이렇게 쉽게 해결되는 거였나? 그냥 하소연한 거였다. 나를 넣어달라고 압력을 행사해 달라는 게 아니었어. 그 팀장하고 상하관계도 아니고. 


하지만, 내가 팀장이 아니었다면, 동호회 반장에게 하소연할 수 없었겠지. 그러면 바로 동호회에 들어가지 못했을 거다. 변명을 해보자면, 회사 피트니스 동호회에 들어가는 것은 엄청난 특권도 아니며, 한 달만 기다려 2분기에 신청했으면 무리 없이 들어갔을 것이다.


그게 아님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눈곱만 한 권력도 권력이다. 의도치 않았더라도 남용한 결과가 되었다. 


마음이 조금 무거웠다.

내가 과민반응하는 것일까?


회사 어린이집의 특징 중 하나는 학부모간에 서열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누구 아빠는 대리고, 누구 엄마는 차장이고 그런. "누구누구는 엄마가 팀장님이니까 절대 때리면 안 돼"라고 당부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다른 애들은 때려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종종 젊은 직원들이 내가 안쪽에 있어도 먼저 나가라고 기다려준다. 그 직원에게 먼저 나가라고 몇 번 손사래 쳤지만 복지부동인 경우가 다반사다. 의미 없는 실랑이인 것 같아 나중에는 포기하고 양보하면 그냥 먼저 나가게 되었다. 


회사를 나가면 돌려주어야 할, 그 얼마 안 되는 권한에 익숙해지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나도 권위에 물든 어른이 될까 봐 두려웠다. 위선일까? 최소한 선한 척이라도 하는 게 대놓고 악한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식당에 가면 누구와 함께든 가능한 내가 먼저 수저를 놓고 컵에 물을 따르려고 한다.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려는 작은 결심이다. 


p.s. 결국 시작한 그룹 피트니스는 지옥을 맛보고 있다. 데드리프트 20회, 니하이(다리를 가슴높이로 올리면서 뛰는 것) 20회, 윗몸일으키기 20회를 다섯 세트 반복하니 잠깐 사후세계를 본듯한 착각이 들었다. 선의로 가는 길은 지옥으로 포장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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