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일곱번째 밤

병원

by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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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즐기기 좋은 토요일입니다

나들이를 가기에 너무 뜨겁지 않은 적당한 날입니다.


스케쥴 노트를 펼쳐보니 오늘은 아무런 일정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우리 직원은 때마침 오늘 하루종일 근무를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제는 하루종일 오늘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을 하느라 머리가 아플지경이었습니다.

의도적으로 비우지 않은 하루가 생긴 날은 정말이지 오랜만이거든요


누군가를 만나던지 어디론가 떠나던지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여유로운 주말을 여유롭게 보낼만한 친구는 딱히 생각나지 않았고

피곤해지고 피폐해진 몸을 이끌고 너무 먼 곳으로 가기에 나는 너무 지쳐있었습니다.

그렇게 어제 밤까진 고민만 하다 잠들었습니다.


아침엔 11시가 넘어서야 눈을 떴습니다.

이렇게 오래토록 잠든게 오랜만인걸 보면 많이 피곤했던걸까 싶었습니다.

어제는 어디든 쓰러져 잠들어 있고 싶을 정도로 하루종일 피곤했기도 했거든요


한편으로는 새로 먹기 시작한 약이 나를 피곤하게 만든건 아닐까싶기도 했습니다.

이틀 전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서 얻은 약입니다.

의사의 말로는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지는 않을거라고 했습니다.

조금 졸리거나 할 수는 있지만 열에 아홉은 이상이 없는 약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혹시 내가 열의 하나인걸까 의심이 들었습니다.


한번의 의심으로 나를 건강하게 만들어 줄지도 모를 약을 그만 둘 수는 없어

오늘 아침에 챙겨먹고 나와

미술관을 한바퀴 돌고 분위기가 좋은 카페로 나와있는 지금까지는 아무렇지 않을걸 보면

역시나 그냥 내가 피곤했던 모양입니다.




저는 아픈걸 잘 버티는 편입니다.

아프다고 티를 내지도 않는 편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저는 잘 버티며 아프지 않은 척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아픈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거든요.

버틸 수 없을것 같은 아픔이 잠시 머물다 가는 것과

버틸 수도 있을 것 같은 아픔이 오래토록 머물고 있는 한가지요.


잠시 머물다 가는 아픔은 이미 끝난 아픔이고

오래 머물고 있는 아픔은 언제 끝날지 모를 아픔입니다

저는 후자입니다.


그 지긋지긋함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겁니다.

제가 병원에서 의사가 앉아 있는 방문을 두드리고 약을 챙겨 나온데에는

나를 죽여왔던 일년의 시간이 평생을 갈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 지긋지긋함은 '아프지 않은 척'하기 힘들게 만들고 있습니다.


아프지 않은 척하기 힘든 요즘 나는

가끔 망가진 모습을 사람들에게 조금씩 내비쳐버리곤 합니다.

맥락에 맞지 않는 말을 내뱉기도 하고, 은연중에 힘들다는 늬앙스를 풍기기도 해버렸지요.


아프지 않고 당신을 그리워하는 방법은 아마도 없을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계속 아프지 않은 척 살아가며 아프고 싶습니다.

그래서 나는 의사와 약에게 의지하기로 한 것입니다.


약이 잘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내일부터는 또 평소와 다를것 없는 나를 사람들이 마주할 수 있게요.


웃으며 살아가겠습니다. 웃으며 지내겠습니다.

당신에 대한 그리움을 아무도 모르게 온전히 나만이 간직할 수 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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