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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뜬 이밤에

내일은 또 오는건가요

by 숨결



달이 뜬 밤은

내일을 잊는 달콤한 지금



찬바람을 구태여 들이고 싶지는 않았다

메마른 기운과 가득할지도 모를 먼지가

달갑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어쩌겠는가

달은 하늘에 떠있고

너를 둘러싼 별들은 황홀하기 그지없고

춤추는 겨울이 이토록 매혹적인것을



내일 아침이 없더라도

나는 창을 한가득 열어 너에게 춤을 청해본다



부끄러운 첫 고백처럼

떨리는 마음으로

파르르 떨리는 손끝으로

글이없는 편지를 써본다



온갖 아픈것들이 날아가버린

달이 뜬 밤에 말이다



내일은 또다시 슬퍼해야 할 것들이 많은

달이 뜬 밤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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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wing by 윤익명





내일을 바라지 않는 간절한 오늘도 있지요



논현동에 터를 잡은지가 벌써 반년이 훌쩍 지나고있다.

6월 시작되는 여름의 한켠에 뙤약볕 맞으며 고생하다

뚝딱뚝딱 한달여를 난리를 피우다 한여름이 시작되는 7월에

'카페사장'이란 이름을 달고 터를 잡게 되었다


그간의 수많은 손님들 중에는

단골이란 애칭이 달린 고마운 분들이 꽤나 있었는데

이 동네의 특성인지 가게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남아있는 단골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일년정도 먼저 자리를 잡은 옆집 미용실 사장님의 말로는

동네로 들어온 사람중에 진득하니 사는 사람은 드문 동네라고 한다


짧게는 두어달, 평균 반년이 되기전에 다시 빠져나가는게 태반이란다

나또한 안면을 익힌 친구들이 어찌 살아가는지 보았더니

음악을 하는 멋들어진 모델같은 청년

쇼핑몰을 운영하는 발랄한 커플

술집 업소에 다니는 걸로 보이는 화장이 진한 어여쁜 아가씨

모델, 배우를 꿈꾸는 조금은 힘들어보이는 젊은이들 등등

이 동네에서 과도기를 보내고 있는 삶들이 참으로 많았다


걔중에 단골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이따금 얼굴을 비추던 남자가 있었는데

다리를 다친 상태라 다리를 가득 감싸는 보조기구를 차고는

홀로 커피를 한잔 사가거나, 친구와 자리에서 한참 이야기를 하고 가곤 했다


사람얼굴을 기억하는게 젬병인 나에게

단골도 아닌 이가 오고가는 사람 중 유별나게 기억나는것은

어느 순간 그가 가게 바로 앞 원룸건물에 거주함을 알고나서 부터다


그당시 피우려 가게앞에 서서 멀거니 있다보면

10미터가 채 안되는 맞은편 건물 현관을 나와 힘겹게 걸어와서는

아메리카노 한잔을 시키고 가게 앞 테라스에서 짧은 담배를 피우곤

다시 힘겨운 걸음으로 그의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 느린 아픈 걸음의 뒷모습을 어쩐지 바라보게 되었다


아픈 걸음에 혹여 넘어질까 걱정스러움이었을까

스쳐 지나갈 인연의 아쉬움이었을까

이런저런 거창한 이유보다는

장사가 잘 되지 않는 한가함에서 나온

시골 할아범의 오지랖 넓은 호기심 같은 거였으리라.


한번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모금 들이마시는 때에

그가 나타나 서둘러 그에게 커피 한잔을 내려주고는

다시 타다 남은 담배를 피러 나가게 되다보니

늘 그렇듯 커피한잔을 들고 가게 앞에서 담배를 태우는 그의 버릇과 맞물려

남자 둘의 어색한 자리가 성사되고 말았다


"다리는 괜찮으세요? 많이 불편해 보이시던데."


그는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쳤다.

크게 다친모양인지 보조기구를 채운채 재활훈련을 몇달간 해야한단다


다친 다리로 멀리 갈 수가 없어

하루 한두번 카페로 나오는 것과

며칠에 한번 마트를 가는것이 전부라고 했다


음악을 하고 있는데

잘 되지는 않고

그나마 뭔가를 해보려는 차에 이렇게 사고까지 당하게 됐단다



암울한 이야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고

남자 둘의 어색한 분위기는

타들어간 담배가 재떨이로 들어가는 순간 막을 내리고

그는 절뚝이는 처량한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손님이 없는 텅 빈 카페에서

그 남자의 방을 상상해보았다.


아무도 없는 하루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하루

비어가는 담배곽이 시계가 되고 달력이 되어버린 나날

아무런 의미없이 창문으로 들어왔다 어느새 사라져버리는 햇볕


그리고

그의 하루와 나의 하루를 비교해본다

가게를 열고 손님을 맞이하고

일이 끝난 뒤에도 남겨진 압박감에 끊임없이 일을 하는 하루.


그의 일상과 나의 일상은 닮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허무와 나의 허무는 거울을 마주보듯 닮아있었다


기대되지 않는 내일

희망이란 단어가 잘 생각나지 않는 요즘

달을 바라보며 서른살의 사춘기가 막을 내리길 바래본다






















Work by 윤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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