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한 번째 밤
사랑을 보듬는 집과 노숙자
지금 살고 있는 동네 가장 끄트머리에는 작은 아파트 단지가 있습니다. 야트마한 산 바로아래 자리잡은 요즘 같지 않은 저층아파트입니다. 조용한 산아래 동네의 깔끔한 단지의 작은 아파트라니 썩 제 마음을 동하게 만듭니다. 아파트보다는 한적한 시골마을을 좋아하지만 이정도 조건이라면 아파트라도 나쁘지 않겠단 생각입니다. 그렇지만 전 저 아파트를 살 여력이 없군요.
집.집.집
서울살이가 왜이리 팍팍한가 싶어 요리조리 뜯어보았더니 집이란 녀석이 큼지막한 바위처럼 날 짖누르고 있었습니다.
'희망을 잃은 시대.'
정확히는 집을 살 수 있는 희망을 잃은 시대입니다. 누구나 똑같이 그런거면 서로 위안이나 삼으련만 주변에는 사회에서 잘 자리잡은 멋드러진 지인들이 하나 둘 집을 사고 있습니다. 희망을 잃은 건 사회 속에서 부족한 능력으로 아웅다웅 살아가는 나와 같은 부류들에게 적용되는 말이지요.
각기 나름의 고민은 있겠으나 집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사는 모습은 꽤나 달라보입니다. 집은 단순히 거주하는 공간이 아니라 나와 가족이 살아가는데 있어 가정의 안식을 담아둘 그릇이 되어주기에, 온전한 나의 집이 없는 이들은 두 손으로 떠올린 물처럼 작은 걸음걸이 하나에도 물이 쏟아질까 전전긍긍하게 됩니다. 반대로 집을 가진 이들은 대체적으로 행복해 보입니다. 적어도 집이 없는 불안함에 걱정하고 싸울 일은 없으니까요.
저 역시 온전한 집하나 없다면 섣불리 가정을 이루지 않으려고 합니다. 예전처럼 차근차근 준비한다고해서 집을 마련 할 수 있는 세상은 아니게 되었으니까요. 거기다 저는 이리저리 치이며 다른 이들보다 한참 늦은 출발선에 서 있으니 그 불안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행복할 자신이 없다는 말이지요. 집 한 채 마련할 능력이 없어 당신과 헤어져야했던 것처럼요.
K
나는 가끔 조카들을 보러 가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집을 가진. 가정을 가진 행복을 가까이서 엿보고 싶어질 때. 그럴 때면 조카들을 보러가게 됩니다.
엄마와 아빠의 품에 안겨 애교를 피우고, 장난감이 가득한 방에서 하루를 보내며 자기 방 책상에 앉아 숙제를 하는 조카들을 보며 내가 가지지 못한 가정의 모습을 구경합니다. 눈보라 치던 겨울날 따뜻한 식사를 하는 모습을 엿보던 성냥팔이소녀의 눈은 아마도 저와 닮아있지 않았을까요.
집을 산다라는 의미가 사랑을 하고 안정을 찾았다는 의미라면 제 지금 모습은 집 없이 떠도는 홈리스. 노숙자와 닮아있습니다. 저 스스로도 처량하고 부끄럽습니다.
K
나는 집을 살 수 있을까요. 나는 행복해 질 수 있을까요.
안정을 이루고 그 안에서 사랑을 보듬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저 막연하고 막막하여 가슴은 답답해져갑니다. 지붕이 없는 이곳에서 별하늘을 보며 기도를 하는 것만이 오늘의 유일한 희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