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커피C

아흔두 번째 밤

by 숨결
굿바이, 커피C




몇 살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

엄마가 마시던 커피를 몰래 홀짝 훔쳐먹은 적이 있습니다. 쌉싸름한 맛 뒤로 따라들어오는 그 달콤함에 커피란 정말 맛있는 거로구나하고 놀라워했습니다. 신선한 맛의 기쁨과는 별개로 성인이 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커피는 금기와 같은 것이었기에 나의 어린시절은 커피맛 사탕과 아이스크림으로 커피를 마시는 즐거움을 대신해야했지요. 요즘은 중학생 고등학생 아이들도 카페에서 커피를 즐기는 모습을 보면 참 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스물이 넘어 여기저기 카페가 생기기 시작하고 대학가 앞에 나타난 싸구려 커피가게들 덕분에 매일같이 커피를 마시는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당시 단골집 커피가 1200원쯤 했던거 같습니다. 담배와 함께 하루도 빠뜨릴 수 없는 중독이 되었습니다.


그랬던 커피를 이젠 마시지 않습니다.

이제는 제 몸이 커피를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몇 모금의 커피에도 과하게 두근거리는 가슴과 함께 속 싶은 곳에서 울렁거림이 올라옵니다.


커피를 그만두어야겠구나 깨달은 날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카페 사장이라니. 장사는 둘째치고 커피를 참으며 살 수 있을까.' 걱정에 잠못이루었네요. 매장은 당연하고 집에도 한가득 쌓인 커피를 외면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아주 오래전은 기억나지 않아 모르겠으나 적어도 근 몇년간은 단 하루도 커피를 마시지 않고 살았던 날이 없었거든요.


불안과 걱정은 괜한 일이었나봅니다.

커피를 마시지 않게 된 하루는 몹시 상쾌하고 마셔야 싶다는 욕망과 마셔야 한다는 강박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아. 이렇게도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습니다. 사랑처럼 매일 같았던 한잔의 커피는 일순간 허무한 과거가 되었습니다.


K

당신을 향한 사랑이 결국 당신을 갈구했던 그리움으로 남게 된 그 때부터. 그리움이 되어버린 당신과의 사랑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고 아프게 만들었습니다. 몸에 맞지 않게 되어버린 커피처럼요. 다른 점이 있다면 커피는 나의 의지로 끊어낼 수 있었지만 당신을 향한 그리움은 지독히 끊어지지 않는, 사랑에 절여진 마음의 중독이란 점입니다. 때문에 당신에게 중독된 그리움을 끊어내는데에는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조금만 지나면 당신과 헤어지고 그리움으로 살아온 시간이 2년으로 채워집니다. 당신을 만나온 시간만큼은 당신을 그리워하게 될 줄 알았는데. 마지막 사랑이라 여겼기에 평생을 그리워할지도 모르겠구나 싶었는데 그에 비해서는 참 빨리 잊었습니다.


슬쩍 커피를 대신할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눈치를 보기도 했습니다. 커피를 마시던 습관에 디카페인 커피를 마신다던가, 허브티를 마신다던가 하는거요. 그런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신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지 싶었습니다.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애쓸 필요는 없겠구나 했거든요. 한줌 퍼낸 땅처럼. 한줌 비워낸 바다처럼 빈 자리는 노력하지 않아도 내가 시간을 보내며 자연스럽게 채워져 갈테니까요.


시간이 걸렸지만 당신의 빈자리도 자연스럽게 채워져왔습니다. 나의 가족들로, 나의 친구들로, 나의 일로, 또 다른 나의 사랑으로.


K

당신에게서 비워진 내 자리도 새싹이 돋고 나무가 되어 열매가 맺혔을까요

그 곳은 어떤 세상이 되어있을진 몰라도

기왕이면 볕이 잘 들고, 따뜻하고, 숲이 우거진 그리고 작지만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도 있는 풍경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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