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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Joy Oct 20. 2023

남아 있는 육아휴직 좀 사용하겠습니다

욕구불만 워킹맘 일상에 쉼표를 찍다!

숨쉬기가 어려웠던 그 첫날로부터 한 일 년쯤 지났을까? 이제 말해야 할 때가 왔다 싶었다. 머리를 굴려 계산을 해보았다. 출산을 두 번 했으니 남아 있는 육아휴직도 일 년이 넘었다. 꽤나 길고 생각을 정리하고 앞길을 정하기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육아휴직도 제대로 안 쓰고 열심히 살았는지', '일에 대한 욕심이 많았던 건지' 반문해 보았을 때, 나는 두 경우 모두 아니었다. 육아휴직이라는 제도가 제대로 정착이 되지 않았을 때 휴직은 언감생심이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눈치를 보며 쓸 수 있는 최소한의 휴직을 사용했기 때문에 휴직이 좀 남아 있던 것이었다. 그래도 러키 하게 힘들 때 꺼낼 수 있는 마지막 카드를 가지고 있게 된 것이다.


남들은 신생아 때 휴직을 쓰고 알차게 남겨서 초등학교 입학하면 사용하다고 했으나, 난 애매하게 큰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육아휴직 카드를 만지작 거렸다. 아이를 위해서만이 아닌 나도 살길을 찾아서...


"휴직을 한다"라고 공표를 하지 못하고 말하는 시점을 보던 중, 외근을 위한 이동 중에 후배에게 카톡이 왔다. '카톡카톡!'

"나는 실패한 여자 팀장이다"라는 글이 기고되어 있는 블로그링크였다. 잘 나가는 외국계 회사에서 빠른 승진을 했지만 번아웃이 와서 우울증에 걸렸고 결국 회사를 그만둔 이야기였다. 그녀는 현재는 커리어컨설턴트로 인생 2막을 개척하고 있는 분의 블로그였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빠른 승진, 번아웃, 퇴사"와 같은 뻔한 이야기에 충격을 받은 것이  아니라 커리어의 제2막을 스스로 개척하고 있는 그녀의 사례가 신선했다.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


"선배, 요즘 힘들어 보이는데 이 분 한테 한번 가보세요. 본인의 경험과 다양한 사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선배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거예요."


그랬다. 일을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현재 상황에서 어떻게 견뎌야 할지 답이 나오지를 않아 어렵고 힘들고 압박을 느끼는 것이었다. 또 지금 내 상황에서 '이직'은 답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에게 바로 연락을 취했다. "한번 만나 볼 수 있을까요?."


일사천리로 그녀와 미팅 약속을 잡다. 강남 한복판 잘 구획된 반듯한 빌딩 숲 사이로 우뚝 솟은 건물을 지나 나오는 공유 오피스에서 그녀를 만났다. 어디서부터 내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지 모르게 두서없이 앞 뒤 이야기를 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짐짓 다 알아듣는다는 미소를 지었다. 날카로운 설루션이 있을 리 만무하다 이야기지만 누군가가 내 이야기에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권유했다. "저는 점을 보는 사람이 아니에요. 한번 이야기를 듣고 답을 제시해 줄 수는 없었어요." 하지만  6개월간 자신을 알고, 공부하고 미래를 설계하면서 본인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숨 쉬기 힘든 날이 지속되며 압박의 무게를 견디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무던히 발버둥을 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로부터 6개월간 프로그램이 끝난 후 육아휴직 의사를 회사에 밝혔다. 나를 찾아가는 프로그램을 통해 회사 밖에 다른 세상도 있다는 것을, 도전할 때 즐거울 수 있고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스스로의 성향을 깨달으며  심사숙고 끝에 회사에 의사를 전달했다. 육아휴직을 쓸 수 있음에 감사했지만 한편으로 당장 나의 빈자리를 채워야 하는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휴직을 쓰며 다시 회사에 돌아올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넌지시 들었다. 관리자 윗단계로 진입해야 하는 시점에 쉰다는 결정은 안 그래도 치열한 경쟁시장에서 엄청난 마이너스 요인인 폭탄을 안고 가는 일인 것 같이 느껴졌다.


최종 결제자인 임원에게 이야기하기 전에 용기를 내서 선배들에게 의사를 밝혔다. 머뭇머뭇 어렵게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같은 팀 선배들은 내가 애 둘 키우며 회사 다니느라 전투력이 떨어졌다 생각을 했겠지만, 육아휴직을 쓰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렵게 이야기를 하니 역시나 돌아오는 대답은 "셋째 임신 했니?"였다. "그랬다". 출산 한 지 한참 된 여자가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큰 상황에서 휴직을 쓴다고 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거나 혹은 이해하기 싫은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런저런 해프닝을 겪고 앞으로 직장생활에서의 승진과 인사고과를 어느 정도 내려놓은 후............. 나는 드디어 휴직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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