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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Joy Oct 22. 2023

주육야사 (晝育夜事)

낮에는 아이를 돌보고 밤에 일하려면 체력이 필요하다

아이들을 보는 틈틈이 그날 할 일들을 정리해 두고, 애들이 학교와 어린이집에 간 동안 중요한 일을 휘리릭 처리한 후 그래도 못한 일들은 아이들이 잠든 이후 시간 이후로 넘어가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래야 진도가 나가고 적어도 직장인만큼 일하며 계획했던 일들이 어느 정도 구현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체력이 늘 문제였다. 할 일은 산더미 같은데 무거워지는 눈꺼풀과 피곤한 몸은 의지력만으로 이기기 힘들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육아도 하고 일에도 성과를 올리려면 우선 체력부터 끌어올리는 것이 시급했다. 


그 무렵 '마녀체력'이라는 책이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며 주변일하는 여성들 입에서 종종 언급이 되었다. '마녀체력'의 마녀는 마흔의 여자를 의미한다. 여자 나이 마흔이 되면 체력이 중요하다. 체력만 끌어올려도 생산성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뿐 아니라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맞다!" 내 몸이 피곤하면 모든 게 힘들고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이 책을 읽은 후 세게 찾아왔다. 


그 무렵 밤에 일하기 위해, 아니 살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했다. 달리기라는 운동은 시간과 공간에 제약이 없기도 했고, 원할 때 핑계 대지 않고 쉽게 할 수 있는 데다 자유로운 느낌이 좋았다. 달리면 가슴이 뻥 뚫리는 것처럼 마음이 좀 정돈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은 덤이었다. 사실 나는 직장인 시절 웬만한 운동은 모두 한 번씩 찔러본 이력이 있다. 요가, 필라테스, 수영, 크로스핏까지... 하지만 운동은 나와 늘 거리가 먼 단어였다. 잘하지도 잘하고 싶은 마음도 딱히 없지만 생존을 위해서 해야 하는 것 정도로 정의된 이름이다. 그렇게 어떻게든 커리어를 부여잡기 위해 달리기를 꾸역꾸역 하기 시작했다. 한 달 50km를 뛰는 게 목표였지만 처음에는 5km를 걷는 것도 힘에 부쳤다. 1km 정도를 뒤뚱뒤뚱 뛰고 나면 턱밑까지 숨이 차올라 그다음은 걸을 수밖에 없던 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아침 운동화를 신고 집밖으로 뛰쳐나갔다. 어려운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침에 작은 성취감이라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냥 스스로 운동화를 신고 나가서 달리려는 노력을 했다는 자체가 큰 성취감이었다. 그렇게 달리기를 시작한 지 1년이 되자 아침 운동은 나에게 빼놓을 수 없는 루틴이 돼버렸다. 아침에 바깥공기를 마시며 하는 유산소 운동은 성취감뿐 아니라 두뇌가 잘 돌아가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매일 출근하지 않지만 스스로의 루틴이 정해지기 시작했다. 아침에 아이들을 보내고 한바탕 달리기를 한 뒤 샤워를 하면 자연스레 일할 마음으로 세팅이 되었다. 그때부터 아이들이 하교할 때까지가 첫 번째 나의 일하는 시간이다. 이때는 집중근무시간이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운동 후 맑은 정신으로 급하고 중요한 일들을 처리하는 시간이다. 오후 1~2시 아이들이 집에 온 후 소소한 간식을 챙기고 학원에 데려야 준 후 오후 3시 다시 짧게 일을 할 시간이 생긴다. 그 시간에는 집중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급한 일들을 처리한다. 그렇게 오후 5시가 되면 퇴근모드로 바꾼다. 식탁에서 노트북을 정리한 후 간단한 저녁을 준비하고 먹고 정리를 한 후 애들과 놀거나 숙제를 도와주고 잠자리에 들면 오후 10시가 훌쩍 지난다. 그때 나의 마지막 업무 시간이 된다. 따듯한 차를 머그컵에 담아 또 한 번 서재방으로 들어가 한두 시간 집중한다. 이때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만 중요한 일들을 한두 시간 처리한 후 잠자리에 든다. 수험생들처럼 새벽까지 하지는 못하지만 한두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미팅이 없고 집에서 일하는 날 루틴이 정해지니 외부 일정이 있는 날에도 시간을 맞추기 쉽고 엄마가 가끔 자리를 비워도 아이들이 협조가 잘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가끔 나가니 아이들이 엄마가 나가는 날을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한 느낌이 든다. 이때는 아이들도 편하게 편의점에서 간식도 사 먹고 자유의 기분을 만끽한다. 초창기 회사밖에서 자리를 잡으려면 회사원 때보다 정신을 더 가다듬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9 to 6의 근무시간은 못 지키더라도 8시간 언저리에서 집중을 하리라 생각을 하고 나름의 루틴을 만들어 놓으니 내가 원하는 일들을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시행착오를 통해서 얻은 루틴을 통해 게을러지지 않고 하고자 하는 일들을 실행에 옮길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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