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지는 존재, 그 이름 엄마

育兒, 育我, 六我수필 스물여섯 번째 이야기

by ANNA

엄마가 만들어 주던 된장찌개 소리와 냄새가 떠오르는 날이 있다. 엄마는 그런 존재인 줄로만 알았다. 내게 늘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는 존재. 내게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였으니까.


하지만 막상 내가 엄마가 되어보니, 엄마가 된장찌개를 만들어줬던 이유는 요리를 사랑해서가 아니었다.


엄마는 생존하기 위해서 요리를 한 것이다. 아이에게 밥을 만들어 줄 수밖에 없는- 그러니까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것이다. 닥쳤으니 할 수밖에. 엄마라고 처음부터(언제? 태어났을 때부터? 20살 때부터?) 요리를 뚝딱 해냈겠는가.


단지 주부라는 상황으로부터 하드 트레이닝을 받은 것이다. 지금의 나처럼.

뭘 열심히 해봐도 아기가 안먹어서 소용없던 나날들

대부분의 엄마들은 아기가 이유식을 시작하면서부터 요리똥손이든 요리금손이든 처음엔 직접 만들어 먹여보려고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떤 이유들로 사 먹게 되거나 계속 직접 만들어 먹이게 되는 결정을 내리는지 사실 그건 잘 알 수 없으나 여하튼 이유식용 도마와 냄비를 산 그때부터 우리는 본격적으로 엄마라는 존재로 만들어지는 중이다.




출산을 했다고 바로 엄마가 되었다는 건 실감 나지 않는 그냥 신비로운 현상처럼 느껴진다. 그런 엄마는 저 멀리 어디 출산의 신을 섬기는 곳에 하하호호 전혀 와닿지 않는 모성애라는 아름다운 이름의 모래성에나 존재하는 엄마지. (그녀들은 흰 천을 두르고 성모마리아같은 포즈와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다)


우리는 출산 후 현실의 벽에 부딪히면서 마치 끝이 존재하지 않는 스테이지에 서 있는 것 같다. 엄마가 되기 위한 오디션에 참가한 거다.


네~! 1라운드는 모유수유입니다! (사회자)


다들 수유실에서 가슴을 까고 끙끙댄다. 제발 먹어줘라 쫌! 마치 다른 엄마들과 경쟁하는 것 같지만 사실상 라이벌은 오직 자기 자신 뿐인 오디션 프로에서 계속되는 스테이지.


네~! 2라운드는 이유식입니다! (사회자)


(대략 심한 욕) 기권해? 말아?


네~! 기권도 상관없습니다~! 엄마로 만들어지는 이곳에서 나갈 수 없으니까요~! 기권하시면 다른 방에서 스테이지를 계속해볼까요?
(사회자)

.. 네? 다른 방요?

수면교육 방!
훈육 방!
아기랑 놀아주기 방!
(문이 열리고 사회자가 내 손을 덥석 잡고 이끈다)




그렇게 점점 칼질이 익숙해지고 징그럽게만 느껴지던 물컹거리는 고기와 생선 손질도 할 수 있는, 한 번에 여러 가지 반찬이 가능한, 아이가 원하는 게 뭔지 표정만 봐도 알게 되는 프로 엄마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엄마라는 존재가 만들어진다.

요리뿐만이 아니다. 집안일도, 바느질도 마찬가지다. 바느질에 '바'도 모르는 내가 터진 인형 등을 내가 꿰매고 있을 줄이야?


만들어진 엄마를 보는 아기들은

엄마에게 이름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아기에게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니까.

그러다 보니 나도 엄마로 만들어지기 이전의 내가 기억이 잘 안 날 때가 있다.


예전의 나, 어땠더라?


사진 속 예쁜 얼굴(출산 전 괜찮던 때가 있었다)은 두말할 것 없고, 예전의 나는 어떤 생각을 하면서, 무엇을 하면서 24시간을 보냈을까. 이 24시간, 아기 반찬만 하고 집안일만 하고 산책만 다녀도 꽉 차는 온통 아기로 이루어진 24시간인데 대체 그 전의 나는 아기 없는 24시간을 어떻게 보내왔을까. 참 궁금해진다.


지금 내 삶의 대부분을 아기가 차지하고 있는 순간, 만들어진 엄마 ver.2는 만들어진 엄마 ver. 1을 찾고 있다.


엄마 도와줘, 엄마가 만든 꼬막무침이 먹고 싶어


그럴 땐 만들어진 엄마 ver.2가 아기로 변하기도 한다.


응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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