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수민! 내가 너 심심할까 봐 방금 찍은 알래스카의 일출 사진 보여주러 왔어~"
"존, 사진 말고 커피는요? 내가 맨날 이렇게 가위랑 풀 챙겨 놓는데~"
"그럼 내가 다시 올라가서 가지고 올게!"
"에이 됐어요~ 말 안 해도 가지고 와야지, 친구는 이 아침부터 일 하고 있는데~ 일단 사진부터 보자고요~"
5개월 동안 매일같이 본 최장 숙박 승객 미스터 존 퍼카와의 지극히도 일상적인 아침 대화였다.
존 아저씨로 말하자면, (1) 미국 뉴욕에서 퀸 메리로 승선해서 대서양 횡단 크루징을 하고 영국 사우스햄튼에서 하선하여 (2) 영국 여행을 한 달 동안 하다가 (3) 퀸 빅토리아로 승선해서 3달 동안 유럽 노선 크루징을 하고 (4) 내가 근무하는 퀸 엘리자베스로 갈아타서 2달 동안 호주와 뉴질랜드 노선 크루징을 하고 (5) 이어 2달 동안 몇 아시아 국가를 거쳐 일본 노선 크루징을 하고 (6) 요코하마항에서 잠시 하선해서 일주일 동안 혼자서 일본 동경 여행을 하다가 (7) 퀸 엘리자베스가 마지막으로 요코하마항에 정박하는 날에 다시 승선해서 알래스카 노선 크루징을 하다가 (8) 캐나다 밴쿠버에서 하선해서 뉴욕까지 기차 여행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간, 진정한 여행자이다.
뉴욕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거주하며 학교 선생님을 해왔다는 그는, 여행 일지 쓰기와 사진 찍기를 너무 좋아하는 소박한 분위기의 70대 아저씨이다.
사실 존 아저씨와의 시작은 애매했다. 아저씨가 하루에도 몇 번씩 데스크에 와서 가위와 풀을 빌려가는 것을 기억하고, 나는 배려한다는 생각에 아예 드리겠다며 번거롭게 안 오셔도 된다고 했더니 안 좋은 표정으로 가버린 것이다. 며칠 동안 보이지 않아 방에도 전화를 해보았지만 받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오픈덱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나는 반갑게 인사하며 잘 지내셨냐며 가위랑 풀 챙겨놓고 기다렸는데 왜 안 오셨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네가 귀찮아하는 것 같아서 안 갔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게 아니고 미스터 퍼카가 귀찮으실까 봐 그런 건데 제가 괜한 짓을 했다며 사과하고, 이제는 아무 때나 오시고 싶으실 때 오시라고 하며 한동안 그의 여행 이야기를 들었다.
그 후로 미스터 퍼카와는 존이라고 부르며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고, 항상 내가 있는 시간에만 데스크에 와서 한참 이야기보따리를 풀고 가곤 하셨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때 왜 존이 안 좋은 표정으로 가버린 것인지 알았다. 20대에 결혼하자마자 사별한 아내를 잊지 못해 50년 동안 계속 혼자 지낸 그는, 여행 중에 여러 사람들과 오고 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것인데 나는 그럴 빌미를 아예 차단해버린 격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일편단심 민들레 마음을 지닌 진심으로 여행과 기록을 사랑하는 존이야말로, 진정 즐길 줄 아는 크루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