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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민크루 Nov 01. 2020

오랜 가뭄 끝에 내린 단비


스타 크루즈에서 2년 정도의 근무를 마친 뒤, 개인적인 이유로 다음 승선 날짜를 연기하고 한국에 있을 때였다. 나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부지런히 이력서를 업데이트해서 크루즈 승무원 취업 사이트에 올렸고, 직접 지원하기도 했다. 지원한 카니발 크루즈와 프린세스 크루즈에서 모두 좋은 결과를 받았고, 심지어 포지션과 급여 조건까지도 업그레이드된 상황이었다.


어느 선사로 갈까 고민하던 중 이메일 한통이 왔다. 큐나드 선사에서 일해보지 않겠냐는 스카우트 제의였다. 큐나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크루즈 선사로, 이해하기 쉽게는 타이타닉의 선사를 인수하여 지금까지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180년 역사의 정통 럭셔리 크루즈 선사이다. 영국 선사답게 배 이름은 영국 여왕의 이름으로부터 붙여져, 현존하는 배의 이름이 퀸 메리, 엘리자베스, 빅토리아이다. 명명식에는 반드시 왕족이 참여하는데, 내가 근무한 퀸 엘리자베스에는 당시 지금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참여했다. 특히 퀸 메리는 선사 설립 당시부터 운행한 대서양 횡단을 아직까지 유지하면서, 할리우드 영화 시사회 및 패션쇼 등 유명 행사를 주최하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크루즈 선사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인 승객에 대한 수요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인 승무원이 사실상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한국어와 영어뿐만이 아니라 다른 외국어를 구사할 줄 안다면 가능성은 높다. 나의 경우에는 일본어였다.


타이밍 좋게도 당시 큐나드는 일본 크루즈 재개를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크루즈 경력이 있으면서 일본어를 구사하는 승무원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한 달이라도 더 늦었다면 아마 나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큐나드에 승선한 사실을 안 전 동료 6명을 내가 인사과와 연결해주었고 모두 면접을 봤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카우트 제의 이후, 녹화 면접과 2번의 화상 면접, 영어와 일본어 시험이 있었다.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최종 합격했다. 승선 준비 과정이 생각보다 길었지만, 갈 곳이 정해진 상태에서 날짜만 기다리면 되니 감사한 상황이었다. 보통은 면접이나 그 결과를 위해서도 몇 달 혹은 일 년이 넘게 소요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쉽지 않았던 2년을 보내면서 모든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은 덕에, 나의 여왕님을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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