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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민크루 Jul 31. 2020

드디어 육지!! 드디어 귀국!!

크루즈 승무원의 격리생활 <132일 차, 그 마지막>


132일 차, 그 마지막 - 7월 25일


지난 2019년 10월 3일에 출국해서
10월 4일 승선했었다.

원래대로라면 2020년 3월 3일 하선이었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3월 16일 시드니에서 격리된 후부터
육지를 밟지 못한 채 132일이 지난 이날,

5개월이 10개월로 늘어난 이날,

드디어 하선하여 귀국하는 날이었다.

기쁜 날과 동시에 나의 제2의 가족, 뱃가족과
다음을 기약하지 못한 채 이별하는 날이기도 했다.

뱃생활을 하다 보면
모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보다도
사실상 연중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뱃가족,

게다가 굉장히 유니크했던 이 코로나 쇼크를
함께 견뎌내고 참아낸 뱃가족,

그들과 헤어지는 날이었다.

마지막까지 남아있으면서 먼저 보낸
수백 명의 크루들 생각도 났다.

그들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마치 집을 떠나는 듯한 기분.

다음을 기약하지 못하기 때문인지
배를 버리고 가는 듯한 기분.

배에게 버려지는 듯한 기분.

영원한 이별일 것만 같은 기분.

내가 이곳에 다시 올 수 있을까 불안한 기분.

오랜만에 집에 가는 기쁨만 생각하기에는
너무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늘 이 순간을 상상해왔다.

4개월 반 만에 밟는 육지는 어떨까.

육지 멀미한다고 하는 소리를 들으면
개인적으로는 조금 오버 아닌가라고 생각해왔는데
진짜 육지 멀미라도 하는 거는 아닐까.

발을 딛는 순간 어지러운 거는 아닐까.



아무렇지도 않았다.

정말 너무 아무렇지도 않았다.

갱웨이를 지나 육지에 첫 발을 딛었을 때
뭔가 감동할 것 같았는데

그저 정말 너무 아무렇지도 않았다.



배에서 나와 게이트로 나오니
사인온, 사인오프 때는 항상 그렇듯
포트 에이전트의 픽업 차량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우샘프턴 항구에서 런던 히드로 공항까지는
2시간 정도 소요됐다.

항상 많은 사람으로 북적거리던 공항이
참으로 한산했다.

입구에 들어섰을 때는
언뜻 100명도 없겠구나 싶을 정도로
시야에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몰릴만한 곳과 줄을 서는 곳에는
거리두기를 상기시키는 스티커가
바닥에 붙어 있었다.




출국 게이트로 들어갔다.

면세점과 레스토랑, 카페는 모두 열려 있었다.

점포 안의 줄을 서거나 계산을 하는 곳에는
역시 거리두기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모든 의자에는 자리에 맞춰
아예 앉지 못하도록 안내판이 붙어 있어서
자연스럽게 모든 사람이
거리두기를 실천할 수밖에 없도록 되어있었다.




이번 항공편은 카타르 항공이었다.

항상 깔끔하고 괜찮은 서비스로
크루 사이에서는 꽤 호감형 항공사이다.

카타르 항공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크루는 좋겠다 라고 한다.

나는 딱히 항공사를 따지지는 않지만
본사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만 아니었다면
대한항공을 탈 예정으로
비빔밥 기내식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나름 기대했었는데 약간 아쉬울 따름이었다.




본격적인 탑승이 시작되었다.

탑승을 확인하는 구간에 꽤 많은 직원들이 있었다.

바이저(보호 복면)를 나눠주는 직원,
탑승권과 여권을 확인하는 직원,
왜 런던에서 도하로 가는지 간략하게 묻는 직원,

평소에는 없었던 절차가 추가되어 있었다.

바이저는 탑승 전에 반드시 착용하게 했다.

나는 마스크도 하고 장갑도 끼고 있었지만
마스크와는 별도로
무조건 바이저를 착용하게 했다.

바이저는 비닐봉지 안에 개별 포장되어있었고
앞뒷면에 각각 보호 필름이 붙어 있었다.

처음에는 보호 필름인지 모르고 착용했더니
앞이 너무 뿌옇게 보여 불편하다고 생각했는데
직원이 필름을 제거해야 한다고 안내해줬다.

모두들 필름을 제거하고 나서야
앞이 보이니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그렇게 마스크와 바이저, 장갑을 낀 상태로
무장한 상태로 탑승했다.



기내는 한 좌석씩 거리를 두고 앉도록 되어 있었다.

모든 승무원들은
고글과 마스크, 일회용 보호복을 착용하고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며
크루즈도 운영 재개하면 저렇게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을 하며 바라보았다.



이착륙장 안에 나란하게 서있는 비행기들을 보니
신기하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드디어 비행기가 이륙했다.

진짜로 가는구나!!

드디어 귀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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