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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진 Aug 03. 2024

일 너머

 정말 너무 귀찮은 일이 있었다. 교재를 몇 장 만들어 한글파일로 송부해야 하는 일이었다. 난이도가 어렵지도 않았지만, 어찌나 하기 귀찮던지 마감일 오후 11시 30분이 될 때까지 꾸역꾸역 일을 미뤘다. 당시 회사의 주요 고객사는 일반기업 즉 B2B(business-to-business) 사업이 주를 이루었지만, 종종 국가기관 즉 B2G(business-to-government) 형태의 일도 수행했다. 개인적으로 국가기관보다는 일반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을 훨씬 선호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아무래도 소통의 간결함과 비용 효율 측면이 가장 컸다. 일반기업을 대상으로 일을 할 때는 말 그대로 일반적인 수준의 업무 과정이었다. 문의-제안(수락)-기획-진행-비용 처리의 수순에 따라 대체로 평범한 과정을 밟았다. 국가기관의 일이라고 특별히 다른 수순은 아니었다. 다만 각각의 수순에 필요한 서류나 커뮤니케이션이 아주 세분화되어 있고 문서 중심적이어서 들어가는 공수는 체감상 3배 정도였다. 그러는 와중에 더욱 사기를 떨어트렸던 요인은 일반기업대비 매출이 1/3 수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국가기관의 특성상 교육비용 측정에 명백한 기준과 한계가 있었다. 지금에서야 업무를 대할 때 마음 & 시간에 대한 완급조절을 시도해 보고 적용할 노하우가 생기고 있지만, 당시 나는 모든 업무를 대할 때 몸에 힘을 잔뜩 주고 일했기 때문에 B2G 사업은 정말 피곤하고 재미없는 일이 되기 마련이었다.


 또, 정말 너무 싫증 나는 일이 있었다. 새로운 사업모델을 구현하는 일이었다. 새로운 것을 기획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협업하는 일은 내 강점이었음에도 반년 동안 이어진 사업 방향의 불확실성은 나를 지치게 했다. "이런 의도를 담아 이렇게 만들어 봤습니다!"라고 몇 주를 애써 만들고 나면 영 탐탁지 않은 얼굴로 "글쎄, 이것보다 더 효과적인 건 없을까?"라고 반려당하기를 거진 반년을 반복했다. 외부 클라이언트를 통한 개발도 아니고 내부적으로 진행되는 사업인데 어떻게 이렇게 삽질을 반복할 수 있는지 울화통이 터지다 못해 회사 생활에 싫증이 나버렸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하던 신입 때도 힘이 들면 힘들었지, 싫증이 나지는 않았었다. 어느 순간 새로 개발할 서비스를 사용할 고객이 아니라 컨펌을 해줄 팀장님과 대표님의 기호가 무엇 일지만 골똘히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정처 없이 헤매던 사업모델은 어느 정도 방향성이 잡혀 구체화하여 개발되기 시작했지만 나는 완전히 의욕을 상실하고 기계적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서비스를 출시했지만, 도무지 애정이 가지 않았다. 얼마 되지 않아 회사에서 나왔고 그 서비스가 잘 작동하고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제 와 고백하자면 나는 일 너머를 전혀 보지 못했다. 그저 주어진 업무에 급급해 그 과정에서 느끼는 피로감과 불만에 매몰되어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은 것은 일은 단순히 수치와 서류의 나열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사람들과의 소통, 문제 지점과 해결 지점의 교집합 그리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가치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복잡한 서류 작업과 느린 진행 속도에만 집중하느라, 누군가의 기준에 맞추는 데 집중하느라 일 너머의 가치와 나 자신을 방치했다. 일을 할 때는 항상 그 너머에 있는 의미를 찾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을 하며 느끼는 피로감과 싫증은, 결국 내가 그 일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반영하는 것임을 얼핏 알아간다. 일이 힘들고 귀찮다고 느껴질 때도 그 안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을 찾고, 그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요즘에서야 깨닫는다. 되도록 앞으로는 나의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그 가치를 소중히 여기려 한다. 그렇게 비로소 일은 단순한 노동이 아닌 나와 타인을 연결하는 소중한 경험으로 변화할 수 있다. 결국, 일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더 큰 사회와 연결된 하나의 흐름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그 흐름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작지만 가치 있는 역할을 찾아가는 과정이 결국 일을 잘 해내는 방법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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