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7.
친구들이 육아용품을 사 모으는 것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이 손바닥 만한 작은 크기의 물건에는 모든 디자인이 집약되어 있다. 어느 신발 디자이너는 ‘작을수록 가장 예쁜 디자인이 된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중에서도 가장 호기심을 이끄는 물건은 바로 책이다. 요즘 출판되는 아동용 책은 아이가 즐겁게 놀면서 독서 학습을 할 수 있도록 ‘세이펜(Say Pen)’과 호환이 가능하다. 책이 장난감이자 교육 도구가 되는 셈이다.
아이들은 세이펜으로 책을 보다가 한 페이지를 꾹 누른다. 그러면 세이펜에서는 기계음처럼 한 음절마다 끊기는 음성이 아니라 아주 유창한 어른의 말소리가 출력된다. 영어책이라면 원어민이 영어책을 읽어 주는 것 같다. 한글로 쓰인 동화책도 마찬가지로 구연동화를 듣는 것처럼 등장인물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때론 동요가 흘러나오기도 하고 아이들은 음악을 따라 노래를 배울 수도 있다. 이렇듯이 세이펜은 부모들이 자유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는 ‘효자상품’이 아닐 수 없다. 아이들이 쪼르르 달려와 “엄마, 책 읽어주세요.” 말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혼자서도 소리 학습을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세이펜에도 어두운 면이 있다. 첫째로, 무분별하게 세이펜을 사용하도록 아이를 장기간 방치하는 경우, 아이들은 세이펜에만 의존하여 책을 보려고 한다. 그래서 소리 없이 글만 읽는 것 또는 다른 가족들이 책을 읽어주는 것을 거부할 수 있다. 둘째로, 아이 발달 수준과 맞지 않은 책을 사용하는 경우, 사회성과 언어 발달의 부조화로 인한 다양한 문제가 발생한다. 요즘 꽤 많은 집이 외동의 자녀를 키우기 때문에 또래 친구들과 교류할 기회가 적다. 사회성 발달이 늦은 아이들이 세이펜 등을 통해 언어 발달은 더 빨라진다. 그러면 아이들이 뜻도 모르는 단어를 상황에 맞지 않게 마구잡이로 사용하게 될 수 있다.
나의 어린 시절에도 책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입학 전후 내가 예닐곱 살 되는 해였던 것 같다. 엄마는 독서를 많이 해야 한다고 책꽂이를 노란색 전집 100권으로 채웠다. 두 남매를 키우던 우리 엄마는 나와 책을 같이 읽어 줄 시간 없이 바빴다. 나는 책을 잡은 지 몇 분도 채 되지 않지 않아 방문을 열고 나오곤 했고, 엄마에게 혼이 났다. 그러고 나서는 방에서 혼자 책을 읽는 척하면서 코를 박고 자는가 하면, 책장만 넘기는 걸로 시간을 때우고는 했다.
여러모로 아이가 흥미를 느끼고 집중해서 읽을 수 있도록 책을 선별해 주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아이의 생각과 감정, 어린이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소통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만약 12월생에 태어난 아이(Ep.6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품어 주기)가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을까? 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말을 동화의 형태로 직접 써보기로 했다. 그림 없는 동화책일지라도 아이가 읽으면 동화적 상상이 찬란하게 펼쳐지기를 바라면서.
제목 : 할아버지의 요술 신발
학교가 끝난 후 보람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혼자 덜레덜레 집으로 돌아가요.
특별할 것 없는 학교생활만큼이나 집으로 가는 골목길은 지루했어요.
머리 자르는 미용실, 고기 파는 정육점... 온통 어른들이 좋아하는 것뿐이었죠.
그런데 오늘은 평소와 달랐어요.
서커스 극장처럼 알록달록 천막이 쳐져 있는 가게가 눈에 보였어요.
빨간 깃털이 달린 초록 모자를 쓴 할아버지 모습은 마치 피터팬 같았죠.
무얼 파는지 궁금했던 보람이는
천막 안으로 고개를 쑥 들이밀었어요.
“꼬마야, 너에게 꼭 필요한 신발을 할아버지가 가지고 있단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쓰고 있던 모자와 비슷하게 생긴
초록색에 빨간 깃털 모양이 그려진 신발을 내밀었어요.
“내일부터는 학교에 가는 게 즐거울 게다.”
보람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잘하는 게 없었어요.
달리기가 느렸고, 리코더는 잘 불지 못했죠.
그림 그리기를 못했고, 수학 문제도 너무 어려웠어요.
그런데 그 신발을 신고 다른 친구와 눈을 마주치면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어요.
우리 반 달리기 선수 1등은 세찬이었어요.
달리기 시합 전에 세찬이에게 다가갔어요.
보람이의 다리는 가벼웠고 움직임도 빨라졌어요.
결국 달리기 시합에서 처음으로 세찬이를 이겼어요.
또 우리 반에서는 재민이가 수학을 제일 잘했어요.
수학선생님이 문제를 풀어볼 사람을 물었어요.
보람이는 손을 번쩍 들어 올렸죠.
칠판 앞에 서자 분필을 잡은 손이 제멋대로 움직였어요.
보람이는 재민이와 짝꿍이었고 언제든 눈을 마주칠 수 있었거든요.
“이 신발만 있으면 난 뭐든지 잘할 수 있어!”
다른 친구들은 보람이의 달라진 모습을 보며 부러워했어요.
보람이는 열심히 연습하지 않아도, 공부하지 않아도 되었어요.
신발만 있으면 모든 걸 다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한껏 우쭐해졌어요.
그리고 일주일 후, 미술 시간이 다가왔어요.
보람이는 그림 공주 예슬이에게 색연필 하나를 빌려달라고 했어요.
역시나 흰색 도화지가 예쁜 나무와 꽃들로 저절로 그려졌어요.
그런데 보람이는 더 이상 즐겁지가 않았어요.
친구들보다 뭐든 잘 해낼 수 있는 수업시간이 더 길게만 느껴질 뿐이었죠.
“이제 마법은 필요 없어! 하나도 즐겁지가 않잖아!”
보람이는 할아버지의 신비한 상점을 다시 찾아갔어요.
어딘가 뽀로퉁 해보이는 보람이는 입을 삐죽이더니 초록색 신발을 벗었어요.
그리고는 할아버지에게 신발을 되돌려 주었어요.
할아버지는 보람이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어요.
“모든 일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단다. 그래야지만 더 값진 걸 얻을 수 있지.”
보람이는 더 이상 할아버지의 요술 신발을 신지 않아요.
음악시간에 삑 소리를 내며 이상한 리코더 소리가 나도 즐거워요.
리코더 요정 가온이가 같이 연습해 주기로 했거든요.
이제는 혼자 땅을 보며 골목길을 걷는 일도 없어요.
친구랑 함께니까요.
「할아버지의 요술 신발」은 주인공 '보람'이의 성장을 담은 이야기다. 보람이는 학교에서 잘하는 것을 찾지 못해 항상 자신감이 없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재능을 훔칠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지게 된다. 처음에는 친구들과 경쟁에서 앞서게 되자 기분이 들뜬다. 하지만 '노력 없이 얻은 재능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느낀다. 결국에는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배우는 과정이 즐겁다는 것을 깨닫고, 학교 생활에서 흥미를 되찾는다.
아이에게 어설픈 공감과 수요 없는 조언으로 듣기 싫은 잔소리를 하는 부모가 되기는 싫다. 아이와 현명하게 소통하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동화책 한 권을 골라 아이의 침대 머리맡이나 책상 위에 살포시 놓아주는 것. 꽤나 낭만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