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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초정탄산수

Episode 4. 여름휴가철 단골 휴게소, 초정리 약수터에서 생긴 일

by 숲속의우주

더운 여름이 시작되고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편의점으로 향했다. 본능적으로 편의점 밖에 나와 있는 아이스크림 냉동고로 돌진했다. 성에가 끼어 있는 차가운 감촉의 유리문을 드르륵 여는 순간, 각종 얼음 덩어리로 내 입안을 만족시키고 싶다. 그러나 어느 한 종류의 얼음덩어리를 집어내지는 못하겠다. 먹는 순간은 시원할지 몰라도 달달한 것을 먹은 뒤에는 최종적으로 더욱 조갈이 심해지는 경험을 해봤기 때문이다.


여름 더위를 식히는 차선책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편의점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맥주와 각종 탄산음료로 가득한 냉장고를 칸칸이 훑어보며 입안에서 톡 하고 터지는 상상을 만끽한다. 사실 알코올, 카페인을 피해야 하는 임산부인 내게는 탄산수가 최종 선택지가 될 수 밖에는 없었다. 트레비, 빅토리아, 산펠그리노 등 화려한 브랜드의 페트병들 사이로 파란 병의 '초정탄산수'가 보였고, 아버지와의 추억이 떠올랐다.


"아빠, 나 콜라 시켜줘."

"이 가게에서 천연사이다를 주는데 몸에 나쁜 콜라를 왜 사서 마셔."

"진짜? 이 물통에 담긴 건 뽀글뽀글해 보이지 않은데?"

"식탁 위에 있어서 식어서 그래. 먹으면 톡 쏠 거야."

"우웩~ 이게 무슨 사이다야! 또 나 골탕 먹인 거지! 미워!"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여름방학이 되면 우리 가족은 시골 할머니댁에 오래 머물렀다. 햇볕이 따가워 얼굴이 벌겋게 익어도 마을 냇가에서 튜브를 타며 마음껏 물놀이하는 재미가 있었다. 수박, 감자 등을 캐고 옥수수, 오이 등을 따면서 시골 밭농사를 거들며 농촌체험을 했고, 땀 흘리며 수확한 농산물은 여름철 풍족한 간식거리가 되었다. 물놀이 한 뒤 허기진 우리 배를 채우는데 시골집은 천국이었다. 밤에 잠들기 전에는 봉숭아꽃을 따다가 손가락을 붉게 물들이곤 했는데, 할머니표 백반은 꽃잎과 함께 빻아 색을 예쁘게 내는 비결이었다.


이렇게 즐거운 여름방학을 얻어 내기 위한 여행길을 다소 고되었다. 중부내륙고속도로가 2001년 이후 개통되었고 상주 IC가 완공되기까지는 그 후로도 서너 해가 더 걸렸다. 아버지는 국도가 표시된 큰 전국 지도를 펼쳐 두고 운전했다. 지도가 익숙한 아버지는 지름길인지는 모르겠지만, 서울에서 상주로 가는 길에서 중간지점인 충청북도를 넘어서부터는 꼬불꼬불한 산길로 요리조리 차를 몰았다. 이는 승차감이 사납기로 유명한 남미 페루나 동남아시아 태국의 나이트버스가 절벽에서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를 하는 것과 비견할만한 난이도였다.


그래도 시골집으로 오가는 길의 수고로움 덕분에 우리가 시골집에서 머물면서 보내는 여름휴가도 2주 가까이로 길어졌을 것이다. 또, 큰아버지와 고모네 식구들과 함께 휴가 일정을 맞춰 여름방학을 맞이하고는 했다. 서울 각지에서 출발하고 수도권을 벗어나기까지도 시간이 걸리니, 막히는 구간에 따라 중간 집결지는 매번 달라졌다. 주로 충청북도에 위치한 오창, 증평, 청주 쪽에 집중하여 휴게장소를 결정하였고, 시골집으로 가는 길에 우리 대가족의 점심식사가 펼쳐졌다. 그중에서도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초정리에 위치한 수타짜장면이 유명한 어느 중국집이다.


식당 마당에는 자갈돌이 깔려 있고 차들이 빼곡하게 이중으로 주차되어 있었다. 차에서 내리면 불그스름한 지붕 위로는 한 글자씩 큼지막하게 수, 타, 면, 이 적혀 있었다. 가게 이름 따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가게 옆으로는 돌담으로 쌓은 작은 우물터가 있었는데, 산 위에서 물이 졸졸 나오는 좁은 인공수로가 보였고 샘물이 흘러내려와 우물을 가득 채웠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손님들은 그 물에 관심을 가지는 듯했다. 손잡이 달린 플라스틱 바가지에 그 물을 떠 마시면서 외마디 감탄을 했다.


"다른 데서는 맛볼 수 없는 약수야."


바로 그 물 때문인 건지 중국집이 유명해서 청주 귀퉁이의 깡시골에 위치하였어도 식당 규모가 상당했다. 대가족 인원인 우리 식구들이 서너 개의 테이블을 붙이며, 서로 흩어지지 않고 모여 앉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으니까. 또래 나이의 남자아이 셋, 여자아이 셋이 모였으니 자기들끼리 얼마나 조잘대고 깔깔댈지 상상이 되지 않는가? 우리는 저마다 한 학기 동안 묵혀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기 바빴다. 담임 선생님이 어떻고, 새로운 친구들은 저떻고. 재미있지 않은 장난을 쳐도 그저 기분이 좋았다. 우리가 웃고 떠드는 동안 모두의 메뉴는 짜장면으로 통일되었다. 그리고 테이블마다 탕수육이 가운데 놓였다.


짭짤한 짜장면과 달콤한 탕수육을 먹다 보면 목이 마르기 마련이다. 어릴 적 나는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던 400원짜리 콜라, 사이다, 환타의 맛을 부모님 몰래 즐길 줄 알던 어린이였다. 아버지에게 콜라를 시켜달라 애원했지만 역시 건강상의 이슈로 나의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속는 셈 치고 '초정약수(지금의 탄산수)'를 마셔보았는데 역시나 한입 맛보고 나자 식욕이 뚝 떨어졌다. 초정약수의 맛은 찝찌름한 맛의 결정체였다. 조금 간이 되어있는 듯해서 그냥 물은 아닌 것은 확실한데, 끝에는 쏘아 올리는 탄산감이 느껴지지만 기세가 강하지 않아서 입안이 개운해지지 않았다. 어린 나에게는 그냥 뱉어버리고 싶은 물일 뿐이었다.


"이게 무슨 사이다야! 우웩~"


초정약수에 대한 어른들의 생각은 나와는 조금 달랐던 것 같다. 가게 주인에게 허락을 구했는지, 아니면 다분히 자연스러운 일인지 모르게 식사가 끝난 후 아버지는 약수터에 오래 머물렀다. 빨간색, 파란색 뚜껑이 양쪽에 달린 옆으로 뒤집어 놓은 디귿(ㄷ) 자 모양의 하얀 물통을 가져와 약수를 하나 가득 채웠다.


무거운 물통을 차에 싣는 아버지의 양 볼이 한껏 올라 붙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께 가져다 드릴 생각에 뿌듯함을 느꼈기 때문이었을까. 하기야 그 당시에는 페트병에 든 생수가 마트에 진열되고 물을 사 마시던 때가 아니었던 것을 감안하면, 초정리 약수터에 가야지만 먹어볼 수 있는 탄산수야말로 산지직송 효자상품이었을 것이다.


편의점에서 무엇으로 갈증을 달랠지 고민하던 나는 이런저런 추억들에 이끌려 초정탄산수를 골라 집었다. 편의점 밖으로 나와 의자에 앉으면서 곧바로 파란색 페트병 뚜껑을 땄다. "취... 팡~" 하는 소리와 함께 탄산수의 병이 열리고 강한 기세로 여름 더위와 맞서 싸웠다.


지금의 초정탄산수는 내가 기억하는 원조 초정약수와는 다른 맛이다. 아버지가 좋아하던 초정약수의 찝찌름함은 사라지고 초정탄산수는 환골탈태했다. 정말 천연사이다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브랜드화되었다. 탄산감이 강해서 초반부터 꼴깍꼴깍 들이키기 어려울 정도였고, 끝맛은 깔끔하고 시원했다. 거참, 오늘따라 지독하게도 맛있다.


"근데... 이건 옛날 그 느낌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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