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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힐링까지 해준다고요?

양산 숲애서

by 송지영

올해 결혼기념일엔 뭘 할까 고민하다가 매년 하는 식사와 선물 교환 대신, 좀 새로운 선택을 해보고 싶었다. 안 하던 걸 해보는 것도, 어색함을 감수할 만큼 신선한 일일 수 있으니까. 이름부터 묘하게 궁금해지는 ‘1박 2일 웰니스 힐링 프로그램’을 냉큼 예약했다. 숲에서 보내는 결혼기념일이라니, 낭만적이지 않은가.


장소는 양산 대운산 자락의 ‘숲애서’. 이름부터 숲에 잠겨 있듯 예쁘다. 이곳은 국내 최초 공립 힐링 체험관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양산시에서 직접 운영한다. 2024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인증한 ‘웰니스 관광 88선’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미 트라비움과 하동 차밭에서 경험한 웰니스 인증이 믿음직스러웠기에 고민할 것도 없었다.


숲에서 제대로 쉬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보다 좋은 환경은 없겠다. 우리는 부부가 왔지만 가족, 친구, 모녀등 구성이 다양했다. 어떤 조합도 재밌을 공간이다. 2021년에 문을 열어 깨끗하고 산뜻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든 건, 숙박부터 식사, 체험까지 몽땅 책임져주는 ‘풀코스 웰니스’라는 점이다. 직접 체험해 보는 프로그램을 선택했는데, 원하는 대로 휴식하며 편의시설만 이용하는 자유형도 선택할 수 있다.


워크숍은 따로 다녔지만, 둘이서 정해진 시간표대로 움직이는 건 처음이었다. 패키지여행조차 안 해봤는데, 주는 대로 먹고 입고 노는 이 ‘힐링형 합숙’에 괜스레 설렜다. 더군다나 인당 8만 원에 먹여주고 재워주고 놀거리도 책임져준다니 공공형 클럽메드 같다.


힐링·명상 분야에서 손꼽히는 공간답게, 이곳의 프로그램엔 ‘회복’과 ‘쉼’이라는 말이 꽤 진지하게 녹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무겁거나 지루하지는 않다. 딱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그 여유와 ‘가볍게 시키는 대로 움직이면 되는’ 그 편안함 사이 어딘가쯤.


운 좋게도 성수기인 5월 연휴에 예약에 성공했다. 비가 막 그친 숲은 청량함이 폭발했다. 파란 하늘과 싱그러운 공기 덕에, 입소부터 폐가 확 열리는 기분이었다. ‘피톤치드 샤워’가 이런 거구나 실감했다.

입소하자마자 찜질방복 같은 생활복으로 갈아입었다. 남편과 눈이 마주치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오랜만에 셀카도 남겼다. 커플룩도 오글거린다고 신혼여행 이후로 입어본 적 없는데 이거, 생각보다 싫지 않았다. 요새 말로 ‘느좋’(느낌이 좋다)이다.


첫 타임으로 건강상식에 관한 강의도 듣고, 요가와 스트레칭이 가미된 수업을 들었다. 필라테스 수업을 함께 했었지만, 오랜만에 서로의 뻣뻣한 몸짓을 보니 웃겼다. ‘그게 안 돼?’ 하는 장난스러운 눈빛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즐겁게 따라 했다.

이어진 테라피 타임엔 난생처음 수압 마사지를 받아봤는데, 이건 거의 신세계였다. 뜨끈뜨끈 부글부글한 물살에 휩쓸리다 보니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곯아떨어졌다.
쉬는 시간엔 열 치유실에서 건식 사우나랑 반신욕도 체험했다. 몸이 데워지니 마음도 슬며시 풀렸다.


뭣보다 식사가 놀라울 정도로 훌륭했다. 건강식 식단은 맛까지 기대하기 힘든데, 이곳 맛집이다. 밥도 든든히 먹여주고 프로그램도 착착 돌려주니 딴생각할 틈 없이 그냥 리듬에 몸을 맡기면 된다. 하루 종일 손에서 놓지 못하던 휴대폰의 존재를 잊었다. 디지털 디톡스까지 수 있다니.


마지막 시간은 화차 만들기였다. 남편이랑 나란히 앉아 꼬물꼬물 손을 움직여 뭔가를 만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서로 좋아하는 거 하며 따로 놀던 우리가, 생전 안 해본 걸 같이 해보는 게 좀 색달랐다. 남편은 꽃도 곱게 고르고 예쁘게 담아내는데, 나는 금방 집중력이 흐려져 대충 흉내만 냈다. "마지막은 째고 쉬자.”며 꼬시던 남편이 오히려 더 열심히 따라 하고, 더 좋아하는 것 같아서 웃음이 났다.


빠듯했던 일정을 끝내고, 어떻게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꿀잠을 잤다. 숲 덕인지, 빡센 스케줄 덕인지 모르겠지만, 만족스러운 숙면이었다.

둘째 날 아침, 새벽공기를 들이마시며 느낀 청량감은 역대급이었다. 숲 해설사의 안내로 숲길을 오르며 편백나무 향을 맡고, 피톤치드를 마음껏 흡입했다. 흔들 그물 위에 누워 눈을 감는 명상 시간에는 말 그대로 평온이 스며들었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든 햇살, 나무 그림자, 지저귀는 새소리까지. 숲의 위로라는 게 분명히 있었다.


1박 2일 힐링캠프. 우리 부부의 23주년 결혼기념일에 스스로에게 준 선물이었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남편과 같은 시간표에 묶여 움직이는 이 신선한 합숙 체험. 역시 괜찮은 파트너라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한 시간이었다. 다음에도 또 오자고 했더니, 그는 곳만 보더라.


https://www.yssisul.or.kr/forest/ 숲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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