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는 여자
긴 그림자가 문턱을 넘어왔다. 큰 키에 깡 마른 여자. 마네킹 같은 날씬함이 아니라, 바람에 오래 시달린 종이인형의 위태로움이었다. 모자챙 아래로 절반만 드러난 얼굴은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어린데 늙은 것 같고, 늙었는데 어린것 같은 얼굴. 힘이 빠진 듯했지만, 눈빛은 단단했다.
“안녕하세요.”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나도 얼결에 일어나 맞인사 했다.
“안녕하세요, 어세 오세요.”
우리는 어색하게 마주 선 채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얼른 의자를 당겨주었다.
“앉으시겠어요?”
마주 앉으니 앳된 얼굴이 드러났다. 점 하나 없는 피부는 매끈했지만, 혈색이 없었다. 눈매에는 오래 버틴 사람에게 보이는 피로가 내려앉아 있었다.
“간판 본 날부터 계속 생각났어요. 머릿속에서 안 떠나서... 와봤어요.”
가늘고 여린 목소리가 불균형하게 튀어나왔다.
“잘 오셨어요. 좀 신비스럽게 보이고 싶었는데, 효과가 있었네요?”
농담을 얹었지만, 그녀는 입꼬리만 살짝 움직였다. 웃음이라 부르기도 애매한 반응이었다.
“정말 이야기를 써주시나요? 출판사라고 쓰여 있던데...”
“네, 소설로 써드립니다. 다만, 조건이 있어요. 저작권은 출판사에, 진심은 우리 둘 사이에.”
가볍게 던진 말이었는데,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진지함이 오히려 나를 머쓱하게 했다.
“저는 이야기를 수집하고 의뢰인은 책을 받아가시는 구조라 생각하시면 되어요.”
웃기는 건 포기하고 말투를 정리했다.
“좋네요. 제 얘기가... 글이 된다는 걸 상상해 본 적이 없어서... 좀, 신기하네요."
“별일 없어 보이는 삶도, 글이 되면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서사 안에도, 주인공 있죠.”
길고 얇은 침묵이 이어졌다. 뜸을 들이는 건지, 할 말을 고르는 건지 모를 시간이 흘렀다.
“뭐든... 다 써주시나요? “
“대부분은 그러려고요. 들어봐야겠지만....”
‘뭐든’이라는 말이 꺼림칙했다. 계획에도 없던 ‘대부분’으로 응수했다. 사연을 가리지 않겠다던 나였지만, 이 사람 앞에서는 묘하게 경계심이 스쳤다. 예감조차 서지 않는 어떤 것이 오고 있었다.
“저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나요? “
고개를 숙인 모자 아래로 그늘진 뺨만 보였다. 테이블 아래 놓인 손이 꼼지락 거렸다.
“어떤 걸 쓰고 싶으세요?”
또다시 말이 없었다. 나는 물 한잔을 그녀 앞에 내려놓았다. 말을 꺼내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면, 그 조차 이야기의 일부라고 믿었다.
따뜻한 차를 내야 했던 걸까,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그녀가 시선을 들지 않은 채 말했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요.”
그 말이 떨어지자, 방 안의 빛이 한 톤 가라앉았다. 창밖에서 들리던 스쿠터 소리도 먼 데로 흩어졌다. 처음부터 이 결론을 향해 달려온 것처럼 느껴졌다. 불편함을 삼킨 건 나였고, 평정을 되찾은 건 그녀였다.
“그걸 써주세요. 왜 발버둥 치며 살아야 했는지 묻는 이야기."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안쪽에 딱딱한 심이 박혀 있었다. 내가 얼음이 되어 있는 동안, 그녀는 망설임 없이 다음으로 곧장 내달렸다.
“왜 태어났을까... 이 생각이 떨쳐지지 않아요. 그냥, 눈치 보며 떠밀려 살라고 세상에 던져진 것 같아요."
두 번째 고백은 훨씬 건조하게 들렸다. 놀라운 건, 그 말을 하면서도 얼굴에 아무 감정이 비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결론에 오래전 도착한 사람처럼.
내가 쓴 자서전의 주인공들은 저마다의 시련 속에서도 어떻게든 스스로를 복원하려 애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 알 수 없는 여자는 정반대의 자에 서 있었다
이 작은 글방에서 동네 이웃들의 잔잔한 서사를 엮어보고 싶었다. 그녀의 한 문장이 그 얼개를 흔들었다. 사연을 들어주는 것과 그 사람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결코 같은 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쓸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쓰고 싶다는 욕구보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먼저 올라왔다.
그녀의 눈에 희미한 빛이 일었다. 기울였던 상체를 세우더니, 앉은 자세를 단단히 고쳐 잡았다. 나는 흥정을 하는 게 아니었지만, 그녀는 물건을 팔지 않겠다는 주인을 설득하듯 태도를 바꿨다.
“처음부터 그런 마음이었던 건 아니에요. 내게 주어진 걸 해내며 산다는 게... 조금씩 나를 갉아먹는 일이었어요. 애초에 시작하지 않는 편이, 더 나았다고 믿게 되었죠.”
그녀는 수없이 되뇌어온 문장을 천천히 꺼냈다. 나는 그 말의 질감을 곱씹었다. 씹을수록 풀잎 끝에 맺힌 떫은맛 같은 기운이 입안에 번졌다.
"무슨 일을 하고 계세요?"
“간호사... 였어요. 지금은 편의점에서 일해요.”
그 순간, 그녀의 눈빛이 중심을 잃고 흔들렸다. 떨림을 감추려는 듯, 탁자 밑에서 손을 꼭 맞잡았다.
“내 이야기를 써줄 수 있나요?”
그녀는 처음으로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 시선은 말하고 있었다.
당신이 써야 해요.
낯익은 눈빛이었다. 단 한 사람쯤은, 괜찮다고 말해주길 기다리는 표정.
나도 그런 간절함으로 누군가의 책상 위에 내 원고가 닿길 바라며 투고해 왔다. 지금, 그때의 나와 닮은 눈빛이 내 앞에 앉아 있다.
“혹시 몰라 말씀드리지만, 저는 상담사가 아니에요. 그저 쓸 뿐이에요. 글이 어떤 답을 줄 수 있을진...”
“알아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이곳에 들어온 이상, 돌아갈 생각이 없는 사람의 말투였다.
“원래 기대 같은 거 잘 안 해요. 이런 말도... 누구한테 해본 적 없고요. 어차피 아무도 이해 못 하니까... ”
“이해받지 못할 이야기는.... 없어요.”
내뱉고 나서야 알았다. 쓰지 못할 문장도 없다는 걸.
짧은 정적이 흘렀다. 무언가를 꺼내기 직전, 마음의 문을 더 열어젖힐지 말지 주저하는 사람의 침묵이었다.
“여기 간판을 보고... 말해보고 싶었어요. 어쩌면, 내가 잘못한 게 아닐 수도 있잖아요.”
그 말이었을 것이다. 나를 흔든 건. 가라앉힐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어떤 것이 그녀를 이 자리로 오게 만들었다. 이번엔 내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의자를 가까이 끌었다.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모아, 한 권으로 엮을 거예요. 서로 다른 삶이 이어진 한 권의 소설집으로요.”
그녀의 눈빛에 옅은 빛이 돌았다.
“돈 대신, 사연으로 계약한다는 게... 맘에 들어요."
책장에서 계약서 두 부를 꺼냈다.
“집에 가서 천천히 읽어보시고 결정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서명란으로 펜을 옮겼다. 펜촉이 종이를 눌렀고, 미세한 긁힘 소리가 잉크와 함께 번졌다. 종이결을 타고 흐르는 단호한 선이 마지막 점에서 멈췄다.
“좋네요. 일 년 안에 책을 받을 수 있다니. 스무 권이나 주시고.”
멍하니 굳어 있던 나를, 그녀의 한결 밝아진 목소리가 깨웠다. 그녀는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오래 기다려왔어요.’
계약서에 선명하게 박힌 글자를 내려다봤다.
최유화.
한 획 한 획이 오래 품어온 결심처럼, 또박또박 자리하고 있었다.
“최유화씨군요.”
그녀의 이름을 처음으로 소리 내어 불러보았다.
“그러고 보니 우리 이제까지 소개도 안 했네요. 저는 김민주예요.”
처음으로 동시에 웃으며 어설픈 목례를 주고받았다. 처음 만난 것처럼.
이 공간을 열 때, 나 자신에게 약속을 했다. 사연을 고르지 말자. 찾아온 것이, 시작할 이유가 되도록. 유화는 나를 골랐다. 아직 그녀의 사연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들어줄 사람이 나란 건 알겠다.
계약서 마지막줄, 최유화의 이름 위로 김민주 세 글자를 얹었다. 첫 계약이 성사됐다. 이곳은 더 이상 손님을 기다리는 긴 고요에 잠긴 공간이 아니다. 유화가 쏘아 올린 조명탄을 따라, 그 빛이 향하는 곳을 찾는 여정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