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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루양 May 08. 2020

내 금요일 밤을 망친 녀석

006. 날씨가 좋으면 기운이 나고,몸이 아프면 기운이 빠진다


내게 한주의 보상을 선물하는 날은 금요일 밤이다. 주말을 앞두고 있는 금요일 밤은 평일의 수고로움을 스스로 달래기 더없이 좋은 날이다.


프리랜서인 내게 목요일과 토요일은 딱히 구분될 것도 없지만, 주말이라는 요일 주는 나른함이 있다. 한주 끝에 매달려 있는 빨간 숫자는 억지로라도 기지개를 켜게 만든다.


막상 토요일이 되면 토요일대로 시간이 흐르는 게 아쉽고, 일요일이 되면 일요일대로 흐르는 게 괜히 애가 탄다. 금요일이 되면 매주 반복되는 소풍 전날처럼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 과자 상자를 앉고 있는 것마냥 풍요로운 달콤함을 누린다.


이토록 고대하던 금요일이었는데 꽃가루 때문인지, 집먼지 때문인지 아침부터 들이닥친 비염 탓에 하루 종일 재채기를 하며 골골댄다. 창 밖에 날이 흐려도 아직 비가 오지 않는데 창 앉에 책상 앞에서 나는 내내 콧물 비를 쏟았다. (비염이 어떻게 사람을 고독하게 만드는지는 여기에 쓴 적이 있다)


오늘따라 독한 알레르기 약도 들지 않고 한숨 자고 나면 좀 나아질 때도 있는데 몸만 점점 쳐져갔다. 이놈의 알레르기. 망할 놈의 비염. 세상 쓸모 없을 것 같은 콧물 따위가 나의 하루를 옥죄다니. 그리고 해지고 어두운 저녁.


가만히 나를 들여다본다. 기분이 나쁠 것까진 없지만 기운이 하나도 없다. 마저 하던 일을 막 끝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꼼짝도 할 수 없다.  


어제는 참 기분이 좋았는데. 기운이 쑥쑥 났는데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의욕이 생기네요.” 라고까지 했는데 말이다.


날씨가 좋으면 기운이 나고, 몸이 아프면 기운이 빠진다. 좋은 날씨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게 볕을 안겨준 것처럼 몸이 아픈 것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닥치는 일이다.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데 오늘은 이런 날이다. 분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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