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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해 병상을 배정받았다. S병원 응급실이 야전 막사라면, G대학병원 응급실은 최첨단 우주선 같았다. 의료 기기도 많고 시설이 번쩍번쩍했다. 앞자리 환자가 바지 내리는 모습을 나도 모르게 봐 버리는 S병원과 달리, 병상 간 구분이 잘 되어 일부러 들여다보지 않으면 환자가 있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러나 S병원도 G대학병원도, 응급실 보호자 의자는 똑같았다. 불편한 간이의자.
도착해서 갖가지 검사를 하고 나니 새벽 2시가 넘어 있었다. 점심 이후 아무것도 먹지 못해 몹시 배 고프고 지친 상태였다. 편의점에서 사 온 빵과 우유를 한입에 해치웠다.
엄마는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다. 수액, 뇌압 낮추는 주사, 승압제가 주삿바늘을 통해 주입되고 있었다. 이런 치료가 필요한 사람을 요양병원에 들여보내 수액만 맞히고 있었구나. 가만 보면 요양병원은 이름만 병원이지 치료랄 게 없었다. 영양주사나 면역주사로 병을 고치는 건 아니니까. 그럴 거면 병원이 아닌 돌봄 의료소 같은 이름으로 부르는 게 낫지 않을까.
간이 의자에 쭈그려 앉아 졸다 깨다 밤을 새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청바지나 고무줄 바지 입고 올걸. 원피스가 빳빳한 재질인 데다 무릎 위까지 올라와서 다리도 편하게 못 가눠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츄리닝으로 갈아입고 아빠다리 하고 싶은 맘이 간절했다. 왜 멋을 부리고 와가지고는...
"류미야, 나 똥 누고 싶어."
네?
"아 엄마... 화장실 못 갈 텐데."
"그럼 여기서 싸라는 말이니?"
"안 되지.. 잠시만."
담당 간호사를 찾아갔다. 키가 작고 눈이 동글동글한 남자였다.
"저기요.. 저희 엄마가 대변을 보고 싶어 하시는데, 어떻게 할까요?"
"저쪽에 간이 변기 가져가서 패드 깔고 보시면 돼요."
그의 시선을 따라가니 4개의 발이 달린 지지대에 플라스틱 바가지를 붙인 것 같은 간이 변기가 있었다. 와... 저기다 똥을 누면 바가지를 빼서 화장실에 버리는 거구나. 내가... 할 수 있을까?
간이 변기를 들고 엄마에게 갔다. 변기를 만지는 것만으로도 대장균이 손을 타고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기분상 그렇다는 거지, 물품은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다)
"엄마. 여기에 누면 돼."
"이게 뭐니?"
"간이 변기래."
"여기서 똥을 누라고? 내가 미쳤니?"
"그럼 어떡해. 화장실까지 걸어가면 안 된다는데."
"됐어! 참을 거야. 내가 죽으면 죽었지 바깥에서 바지 내리고 똥을 어떻게 싸니?"
"엄마 참으면 안 돼. 그냥 여기에 하자."
"필요 없어. 여기는 왜 대변 보러 화장실도 못 가게 해. 무슨 병원이 프라이버시라는 것도 몰라. 내가 아픈 사람이지만 수치심까지 잊은 건 아니다."
엄마가 버럭 화를 냈다. 한숨이 나왔다. 그러게. 나라도 저 변기에 앉아서 대변 못 볼 것 같다. 손잡이 잡는 것만으로도 불쾌한데 저기다 엉덩이를 어떻게 댄담. 온갖 사람들이 엉덩이 대고 똥을 눴을 텐데. (하지만 생각해 보면 공중화장실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저건 1회 사용 후 소독이라도 하지 공중화장실 변기는 언제 닦는지도 모를 일)
엄마는 화가 난 표정으로 누워 있었다. 참는다고 했지만 정말 참아지려나... 다른 방법이 없을까?
커튼을 열고 나가 이번엔 여자 간호사에게 물었다.
"엄마가 간이 변기를 거부하시는데... 대변 보러 화장실 가면 안 될까요?"
"안 돼요. 그거 아니면 기저귀밖에 없어요. 편의점에서 파니까 사오세요."
기저귀? 아기 키우면서 기저귀야 하루에 열 번씩도 갈지만... 성인의 기저귀를 간다? 간이 변기도 감당 안 되는데 기저귀라... 등골이 오싹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엄마가 참다 참다 시트에 실수해 버리면 그야말로 대형사고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편의점으로 뛰어갔다. 어른용 기저귀가 종류별로 있었다. 그중 가장 안전해 보이는 특대형 밴드 기저귀 1팩과 물티슈 2팩을 샀다. 그냥 가져가기에는 창피해서 검은 봉지에 넣어 응급실로 뛰어갔다.
다행히 아무 일 없었다. 그러나 엄마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엄마... 괜찮아? 응가 급하지 않아?"
"몰라. 나 그냥 죽을 거야."
"아 왜 그래 진짜."
"이게 뭐니 진짜... 내가 저런 데 앉아 대변이나 볼 사람이니?"
속이 상했다. 그렇지. 깔끔쟁이 공주님 오미실 여사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별 수 없었다.
"그럼 기저귀 하자. 내가 사 왔어."
"싫어."
"아휴, 엄마. 괜찮아. 나만 믿어. 바지 벗긴다?"
엄마는 더 이상 거부하지 않았다. 자포자기한 것 같았다. 엄마의 바지를 벗기고, 엉덩이를 들어 기저귀를 밀어 넣고 밴드를 채웠다. 특대형이라 그런지 엄마 엉덩이의 3배는 되어 보였다.
엄마에게 기저귀를 채우고, 난 의자에 앉았다. 온몸이 쑤시고 피곤했다. 옷이 얇아서 밤새 으슬으슬 떨었다. 두통이 심하고 속도 안 좋았다. 이러다 내가 쓰러지지 않을까. 엄마를 살리겠다는 불타는 의지는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사그라들었다. 아픈 엄마에겐 미안하지만, 집에 가서 따끈한 물에 샤워하고 침대에 눕고 싶은 맘이 간절했다.
"류미야. 이거 빼줘."
엄마가 무표정하게 말했다. 그와 동시에 냄새가 확 풍겼다. 나도 모르게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엄마가 일을 보았구나.
난 용기를 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엄마, 아주 잘했네! 침대에 볼일 보는 것보단 이게 100배 낫지. 내가 맨날 하는 일이 뭔지 알아? 기저귀 가는 거야. 나 이거 짱 잘하니까 걱정하지 마."
사실은 도망가고 싶었다. 엄마의 똥기저귀 가는 일은 상상한 적이 없었다. 내 나이 40도 안 됐는데, 60대 엄마의 기저귀를 가는 일이 생길 줄이야. 나는 기저귀 밴드를 조심조심 풀어서 엄마의 엉덩이를 들었다. 건강한 변이 아닌 물변이었다. 이 정도면 참기 힘들었을 텐데, 애썼네 울 엄마.
침착하게 위생장갑을 끼고 물티슈를 왕창 뽑아 꼼꼼히 닦아냈다. 비닐봉지에 물티슈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기저귀를 둘둘 말아 봉지에 푹 집어넣었다. 엄마의 얼굴은 쳐다보지 않았다. 최소한의 배려랄까.
뒤처리가 끝나고 엄마의 자세를 편안하게 잡아주었다. 그제야 엄마의 얼굴을 보았다. 엄마는 공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떤 기분일지 상상하기 싫었다. 한 달 전만 해도 누구보다 힘차고 해맑게 살던 사람이, 이제는 기본적인 생리현상마저 도움을 받는 신세가 됐다. 이렇게 한순간에 곤두박질 치리라고 누가 알았을까? 원래 이렇게 스위치 탁 끄듯 갑작스러운 걸까?
"류미야, 엄마가 좋아하는 시 있다. 들어볼래?"
멍하게 있던 엄마가 말했다.
"사랑하는 이여, 나 죽거든
날 위해 슬픈 노래를 부르지 마오
내 머리맡에 장미꽃도 심지 말고
그늘진 사이프러스도 심지 마오
내 위에 푸른 잔디가
비와 이슬방울에 젖게 해 주오
그리고 생각이 나시면, 기억하고
잊고 싶으면, 잊어 주시오
나는 그림자도 보지 못하고,
비가 내리는 것도 느끼지 못할 거요
고통스러운 듯 노래하는
나이팅게일 소리도 듣지 못할 거요
해가 뜨거나 저물지도 않는
희미한 어둠 속에서 꿈을 꾸며
어쩌면 나는 기억하겠지요
어쩌면 잊을지도 모르지요
크리스티나 로제티의 시야."
엄마는 시를 외우며 죽음을 말하고 있었다. 이 지경까지 오니 본능적으로 끝을 예감한 걸까? 혹은 운 좋게 살아난다 해도, 예전과 같은 삶은 이제 다신 없을 거란 걸 아는 걸까? 엄마는 삶의 끝자락에 다다를 때를 대비해, 이 시를 완벽하게 외우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새로 구한 간병인이었다. 남편이 더 이상 연차를 쓸 수 없었기에 난 집으로 돌아가야 했고, 오빠네 식구는 아직 하와이에 있었다. 시간은 오후 5시. 여전히 일반 병상으로 옮기지 못하고 응급실에 있던 상태였다.
조금 더 엄마와 함께하면 좋으련만, 코로나 규정 때문에 보호자는 간병인 포함 1인으로 엄격히 제한되어 내가 나가야만 간병인이 들어올 수 있었다.
"엄마, 나 갈게. 간병인이랑 잘 있고, 나랑은 다음에 교대할 때 만나."
"그래, 얼른 가. 가서 쉬어. 우리 딸 고생했어."
엄마의 얼굴이 서글퍼 보였다. 내가 외출할 때 날 바라보는 우리 아기와 같은 표정이었다. 난 고개를 돌리고 얼른 나와버렸다.
하루 아침에 아기가 된 엄마는 나를 필요로 하고 있었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