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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미 Aug 23. 2023

억수로 운이 좋게도

(7)

응급실을 나왔다. 저 앞에 제비꽃이 서 있었다. 인자하고 둥근 얼굴. 결혼 생활 2년 만에 그는 얼굴이 더 크고 둥그레졌다. (성격은 더 날카로워졌다) 그는 내 손을 꼭 잡고 주차장으로 걸었다.


차를 타고 병원을 나서자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다. 우리 엄마... 엄마가 뇌종양이라니. 신장이랑 폐에 암이 생겼을 때는 엄마의 죽음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뇌종양은 달랐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뇌종양입니다"라는 말을 들은 캐릭터들은, 암 진단 후 얼마 되지 않아 빼빼 마른 몸에 하얗게 마른 입술을 하고 두건을 쓴 채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 슬프게 웃은 뒤 얼마 후 전부 죽었다.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누구나 한 번은 죽고, 각자 죽음이 어떤 모습으로 찾아올지 모른다. 우리 엄마는 객관적으로 죽기 아까울 만큼 젊은 나이도 아니고, 나름 삶을 충실히 누리며 살았다. 그러므로 지금 하늘나라에 가도 그리 아쉽진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왜 이렇게 눈물이 나지.


"흐어어 엉엉엉.. 엉엉엉.. 엉엉엉!! 왜 우리 엄마가 왜! 왜!!! 왜.. 대체 왜! 흑흑흑...흑흑흐긓흑.."


제비꽃은 내 흐느낌을 들으며 말없이 운전했다. 평일 퇴근시간이라 도로가 꽉 막혀 있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여보세요."


"여기 G대학병원 신경외과인데요. 오미실 환자 보호자세요?"


"네, 맞는데요."


"내일 오미실 환자 수술 잡힌 거 아시죠?"


"네? 내일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응급실에 30시간 넘게 있었는데 의사는 코빼기도 안 비췄다. 그 많은 검사를 하고도 엄마가 어떤 상태인지 알려주지도 않았으면서, 갑자기 내일 수술이라니.


"아... 모르셨나요?"


"의사 선생님을 못 만났는데 당연히 모르죠."


"... 어쨌든 한 시간 있다가 수술 담당 교수님이랑 면담하시고, 수술 어떻게 할지 얘기 들으세요."


"저 지금까지 응급실에 있다가 집에 돌아가는 길인데요. 차 돌려도 한 시간 안에 도착 못할 것 같아요."


"아 그러면 내일 수술 못할 수도 있겠는데..."


썩을 것들. 암 환자는 수술하기까지가 지옥이다. 1분 1초 내 몸 안의 암 덩어리가 더 커지는 기분에 얼마나 불안하고 초조한지 아나? 그런데 당장 오늘 면담 못하면 수술을 미룬다고? 미리 좀 알려주든가, 지들 멋대로 면담 시간 잡아두고 못 오면 수술을 미룬다고? 열불이 났다.


"혹시 이따 통화로 면담하면 안 될까요?"


"아... 가능할지 모르겠는데 말씀드려 볼게요."


전화를 끊었다. 슬픔은 분노로 변해 있었다. 이놈의 병원은 환자랑 보호자를 호구로 보는 게 틀림없었다. 돈 주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는 우리지만, 병원은 지들 편한 대로 하면서 소비자가 맞추는 걸 당연시했다. 응급실에서 그렇게 의사를 찾았건만, 수술 담당 교수는 고사하고 응급실 담당의마저 오지 않았다. 어디 가서 돈 쓰고 이런 대접받으면 가만히 있을까? 병원이니까 참고 가만히 있는 거지. 목숨은 건져야겠으니.


아까 통화한 전공의에게서 전화가 왔다.


"저희 교수님께서 전화로는 면담하고 싶지 않다고 하시네요. 모레 오후 3시쯤 병원에 오시면 될 것 같아요."


"그럼 내일 수술은요?"


"수술은 내일 안 해요."


"그럼 언제 해요?"


"모레 면담 후에 잡으실 것 같은데요."


한숨이 나왔지만, 의느님과 어찌 싸우겠는가. 칼을 들고 사람의 생사를 결정하는 사람인데. 부글거리는 속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오늘 밤은 간병인이 있고, 내일부터 모레까지는 하와이 여행에서 돌아온 오빠가 엄마를 간병할 예정이었다. 오빠가 의사를 만나 면담하겠지. 나는 할 만큼 했으니, 이제 그의 차례다.



다음날 아침, 간병인과 교대해 상주보호자로 들어간 오빠에게 카톡이 왔다.


- 엄마 계속 병원에서 나간다고 난리야. 여기 있기 싫대

- 그러면서 병실에 고양이 먹인다고 츄르 사오랜다


- 진짜?

- 병실에 고양이가 있어?


- 바보냐. 없지. 엄마가 환각 보는거지


- 상태 더 심해졌네


- 나 10분밖에 안 있었는데 내 머리가 이상해질 듯


그렇지. 오빠는 엄마가 본격적으로 이상해지기 전에 여행갔으니 이 상태를 알 리가 있나. 난 그보다 '혹시 저 인간이 엄마 똥 기저귀라도 갈게 되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었다. 비위가 유난히 약한 그는 엄마가 싼 대변을 견디지 못할지도 몰랐다. 다행히 기저귀 얘기는 없었다. 하긴, 엄마가 어렸을 때 본인 기저귀 3000번은 갈았을 텐데, 엄마 기저귀 몇 번 정도는 갈아야 자식 된 도리지. 딸이라고 더 잘하라는 법 있나. 난 기저귀 관련해선 모른 척하기로 했다.  


- 엄마 뇌가 부어서 그런가부다


- 지금 영국왕실발레단 얘기하는 중


엄마는 재작년 영국에 다녀왔다


- 곧바로 수영 얘기 나오네


엄마는 젊었을 때 우리에게 직접 수영을 가르쳤다.


- 키 크는 주사 얘기함


오빠는 어려서 키 크는 주사를 맞았다. 그러나 키는 크지 않았다. (큰 게 그 정돈가?)


- 추리소설 얘기도 함


엄마는 다독가이며 특히 셜록홈스 시리즈와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좋아했다.


- 말 자체는 이상하지 않은데 5분 동안 주제가 수십 번씩 바뀌어. 돌겠다


- 좀만 버텨. 수술하면 좋아질 거야

- 내일 의사랑 면담 잘해. 수술 일정 최대한 당겨보고


- 어


다음날 아침이 됐다. 오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야 엄마 때문에 미치겠다. 밤에 잠을 아예 안 자고 말을 끝도 없이 해. 맥락도 없는 얘기를. 그러면서 혼자 일어나서 나가려고 해."


"엄마 혼자 걸을 수 있어?"


"안 되지, 몸을 아예 못 가누는데. 나 더는 못하겠으니까 오후에 바로 간병인 불러. 엄마가 날 엄청 싫어해. 1분마다 나한테 가라 그런다."


"에휴..."


"전공의가 올라왔었는데, 이따 교수 면담할 때 최대한 많은 가족들 참석시키랬대. 너도 와. 아빠랑 이모들이랑 이모부들까지 다 불렀어."


이혼한 아빠까지? 대체 왜? 무슨 일로 다 동원하라는 걸까? 혹시 상태가 너무 심각해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역시 엄마, 얼마 안 남은 걸까? 목이 꽉 막혔다.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 아무래도 어려울까?"


"아직 몰라. 얘기 못 들었잖아. 걱정 말고 와. 3층 상담실이다."


"알았어."


병원 로비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도착해 있었다. 아빠, 오빠, 큰 이모, 다섯째 이모랑 이모부, 나까지 총 여섯 명이었다. 아니, 휠체어에 태운 엄마까지 일곱 명. 의사가 뭐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가족끼리 뭉쳐 있으니 든든했다.


우르르 몰려 상담실에 들어가니 담당 교수가 앉아 있었다. 생각보다 젊었다. 한 40대 후반에서 많아야 50대 초반으로 보였다.


"많이 오셨네요. 자 이제 설명을 시작할게요."


"저 뇌에 암 있어요?"


엄마가 대뜸 끼어들었다.


"환자 분, 가만 있어. 내가 지금 설명한다잖아."


엥? 반말? 짜증스럽진 않고, 조근조근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자 여기 보세요. 이게 환자의 두개골 사진이에요. 이 덩어리가 보이죠? 이게 암입니다. 오른쪽 측두엽에 있어요. 전이인지 원발인지는 조직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지금으로선 조직검사가 큰 의미가 없어요. 수술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예상되는 어려움들이 있어요."


"저기요, 나는 수술하는 거 하나도 안 무섭거든요? 궁금한 게 있는데 내가 지금..."


엄마가 또 성급하게 끼어들었다.


"환자 분, 내가 가만히 있으랬지? 이따가 질문할 시간 얼마든지 줄 테니까 설명 끝날 때까지 그냥 좀 있어. 응?"


민망했는지 다섯째 이모가 끼어들었다.


"언니, 선생님 말씀 마저 듣고 질문할까? 설명해 주신다잖아~ 선생님, 이해하세요. 저희 언니가 워낙 똑똑해서 똑똑한 척하고 싶어서 그래요. 호호."


의사는 엄마의 상태에 대해, 그리고 전이성 뇌종양의 위험성에 대해 쭉 설명을 이어나갔다. 말이 워낙 청산유수 같아서 아무도 중간에 끼어들 생각을 못 했지만, 이미 정신을 거의 놔버린 엄마는 틈만 나면 끼어들지 못해 안달이었고, 가족들은 그녀가 입을 열 기미가 보이면 검지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며 제발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했다.


"(어쩌고 저쩌고 엄마 상태 설명) ... 지금 환자분은 아주 위험한 상태예요. 종양이 뇌를 밀고 있어서 언제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고 뇌부종도 심해요. 조금 더 지체했으면 지금쯤 아마 돌아가셨을 거예요."


눈물이 왈칵 고였다.


"하지만 우리가 뛰어난 의술로 조치를 한 상태라 며칠 벌어놓았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다고 해도 갑자기 사망하는 경우도 간혹 있으니 아주 안심할 수는 없어요."


심장이 철렁했다.


"그렇지만 환자 분은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니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고..."


다시 숨을 내쉬었다.


"뇌에 있는 종양이 작지 않아요. 3.5cm 이상 되거든요. 보통 뇌로 전이가 되면 수술하기가 아주 까다롭고, 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수술을 해도 언어장애나 편측 마비 같은 후유증이 남을 가능성도 커요. 간혹 아주 고통스러운 후유증이 있는 경우도 있어요."


앞이 캄캄해졌다.


"환자분은 말이죠..." 


모두가 숨죽이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침이 꿀꺽 넘어갔다. 의사가 잠시 뜸을 들였다.


"환자분은 말입니다... 그런데 억수로 운이 좋게도! 암의 위치가 나쁘지 않고! 여기저기 퍼져 있지도 않아요. 이 경우 수술로 암이 깨끗하게 제거될 확률이 몇 프로다? 약 99프로다! 후유증도 남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러므로 저만 믿고 수술하시면 됩니다. 제가 살려드릴게요."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다들 마찬가지 심정이었는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박수를 힘차게 쳤다. 연로하신 큰이모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데 수술은 언제 해?


"그럼 선생님, 수술은 언제 하나요?"


"오늘은 안 할 거야. 너무 당연하겠지? 시간이 늦었잖아. 내일도 안 할 거야. 수술 스케줄이 이미 꽉 찼어. 모레 하자."


"아 네, 알겠습니다."


나에게도 너무 자연스럽게 반말을 구사해서, 우리가 원래 알던 사이인가 싶어 그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전혀 모르는 얼굴이었다.


"이제 다들 돌아가세요. 환자 분은 모레 나랑 만나, 알겠지? 맘 편히 먹고."


상담실을 나왔다. 엄마는 뇌에 암이 있다는데도 시종일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엄마... 괜찮아?"


"그럼 괜찮지. 수술하면 되는 거 아냐? 빨리 하고 퇴원하자. 암 땜에 죽는 게 무서운 게 아니라 여기 있으니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야."


"겁 안나?"


"겁이 왜 나. 죽어도 할 수 없어. 수술이 귀찮지 뭐. 빨리 올라가자."


엄마가 충격받을까 봐 그렇게 숨겼는데, 막상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아 귀찮게 이게 뭐야' 하는 표정이었다. 나만 잠 못 자고 마음 고생했네...


아무래도 좋았다. 엄마는 살 수 있을 것이다.

억수로 운이 좋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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