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S병원 응급실은 한산했다. 요양병원 의사가 쥐어준 소견서를 응급실 입구 직원에게 전달했고, 금방 응급 병상을 배정받았다.
"엄마 괜찮아?"
"응 괜찮아. 그런데 왜 이렇게 춥니?"
응급실은 전혀 춥지 않았다. 엄마는 체력이 떨어진 탓에 시도 때도 없이 추운 듯했다.
"기다려 봐."
나는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있는 담당 간호사에게 다가갔다.
"저 죄송한데요, 저희 엄마가 너무 추워하셔서 그런데 담요 있을까요?"
간호사가 힐끗 쳐다보더니 말했다.
"저희는 담요 없어요. 시트 추가로 드릴 테니까 덮으세요."
참 친절하지 않네. 나는 시트를 받아서 엄마에게 덮어주고, 엄마가 입고 온 모든 옷을 위에 덮어주었다. 그런데도 엄마는 몹시 추워했다.
"나 화장실 가고 싶어."
"응. 화장실 가자."
엄마를 침대에서 내려 부축해서 화장실에 갔다. 응급실이라 그런가? 화장실이 한 칸밖에 없었다. 그리고 매우 비좁았다. 수액걸이를 조심해서 한쪽에 놓았다.
"엄마 혼자 할 수 있지? 앉았다 일어날 때 조심해야 해."
"응."
화장실 문을 닫고, 엄마가 볼일을 다 보길 기다렸다. 엄마가 이제 다 됐다는 신호를 보내서 화장실 문을 열고 엄마를 부축했다. 그런데 화장실 한쪽에 놓은 수액걸이를 같이 끌고 가는 걸 깜빡했다. 몇 걸음 걷다가 바닥을 보니 바닥에 피가 흥건했다.
"으악! 엄마 괜찮아?"
팔에 혈관이 안 보여서 발등에 수액 바늘을 꽂았는데, 수액걸이를 잊고 사람만 이동시켜 선이 당겨지는 바람에 바늘이 뽑힌 것이다. 너무 당황하고 무서워서 허둥지둥했다.
"저기요! 여기 좀 도와주세요!"
큰일 난 것처럼 소리를 질렀다.
"류미야, 별거 아냐. 바늘이 뽑혀서 그런 거야. 안 죽어."
엄마가 별거 아닌 듯 말했다. 무슨 일 난 줄 알고 뛰어온 간호사도 별 일 아니라고 안심시키고 바로 조치를 해줬다. 바닥에 흘린 피는 청소하시는 분이 와서 바로 닦아주었다.
"엄마, 너무 미안해..."
바닥에 작은 웅덩이가 생길 만큼 많은 피에 충격받았다. 엄마를 죽일 셈이냐. 간병을 처음 해본 나는 아무 개념이 없었다. 수액을 꽂은 환자는 이동 시 수액걸이를 함께 밀고 가야 한다는 기본 중 기본도 지키지 않았다. 아픈 엄마를 이렇게 더 아프게 만들다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 후에도 엄마는 20분마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 했다. 몇 년 전 암 수술하면서 신장과 요도와 방광 일부까지 떼어내서 가뜩이나 화장실에 자주 갔는데, 수액이 계속 들어오니 더 자주 가는 게 당연했다. 계속해서 엄마를 침대에서 내려서 부축해서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하는데, 간호사가 말했다.
"소변 대야 드릴 테니까, 환자 분 소변 거기에 보게 하세요. 자꾸 움직이지 마시고."
간호사가 준 것은 가운데가 푹 파진 플라스틱 대야였다. 사용 방법은 이랬다. 누워 있는 환자의 바지와 속옷을 내린다. 엉덩이를 힘껏 든다. 그 아래에 플라스틱 대야를 놓는다. 쉬야를 한다. 대야를 빼서 (조심조심) 바닥에 놓는다. 물티슈로 뒤처리를 한다. 속옷과 바지를 올린다.
화장실을 갈 때마다 피 바다를 만들까 봐 조마조마한 것보단 나았지만, 소변 대야에 일을 보는 건 딱히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엉덩이를 힘껏 들고 그 아래 대야를 놓고 일을 보면 소변이 허리쪽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조절해서 아주 살살 쉬야를 해야 한다. 뒤처리도 찝찝하고 대야를 뺄 때 내용물이 흐를 염려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좀 창피했다. 응급실 침상마다 커튼이 있었지만 틈이 벌어져서 안이 훤히 들여다 보였고 (누가 일부러 보진 않겠지만), 의료진이 말도 없이 커튼을 확 밀고 들어왔다. 환자가 오줌을 누든 말든 노관심인건 알겠는데, 환자는 수치심을 느낀단 말이다.
"야, 환자는 프라이버시도 없냐? 인간의 존엄성은 지켜줘야 할 거 아냐. 아픈 사람은 사람도 아니니?"
응급실에서 엄마는 존엄성을 지닌 '존재'가 아닌 어떤 이슈들을 처리해야 할 '대상'이었다. 시스템에 따라 움직이는 의료진은 절차와 효율에 따를 뿐, 자기가 대하는 게 사람이라는 생각은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소변보고 바지도 채 못 올렸는데 간호사가 휙 들어와서 자기 할 일을 하고 나가버렸다. 나가면서 커튼을 다시 쳐주지 않았다. 피 뽑다 시트에 피가 묻어도 요청하지 않으면 시트를 갈아주지 않았다. 너무 춥다고 말하면 귀찮다는 표정으로 얇은 시트 한 장 더 주는 게 다였다. 따뜻한 황토팩이라도 주면 좋으련만.
이해는 된다. 바쁘게 돌아가는 응급실에 의료진은 부족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산더미 같으니, 인간적인 배려와 친절까지는 사치일지도. ‘살려주는 것만 해도 고마워해라’라는 말이 들리는 듯했다. 인간적인 배려야 어떻건, 어쨌든 잘 갖춰진 시스템과 생각보다 적은 환자 수 덕분에 엄마는 여러 검사를 비교적 빨리 마쳤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내내 엄마는 추워했고, 나는 옆에서 손을 잡아주었다.
곰돌이 같이 푸근한 인상의 의사가 다가왔다.
"오미실 씨 보호자세요?"
"네. 맞는데요."
"CT 결과가 나왔으니 잠시 와보시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의사를 따라갔다. 제발, 제발, 제발 멀쩡해라. 엄마는 단순히 항암치료의 후유증으로 쇠약해진 것이어라. 아무 이상 없으므로 다시 요양병원으로 돌아가도 된다고 말해라. 환자가 영양실조 걸릴 때까지 보호자는 뭐 했냐고 호통치고 돌아가서 잘 돌봐주라고 말해줘라. 제발.
"뇌종양입니다."
"네?"
할 말을 잃었다.
역시 엄마의 문제는 심각했다. 그것도 아주아주 심각했다. 난 무의식 중에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뇌졸중보다 더 큰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하지만 무의식 중에라도 알면 뭐 하나? 터져 나온 눈물이 도저히 수습이 안 됐다. 어디 가서 펑펑 울고 오고 싶었지만 그럴 때가 아니었다. 한시라도 빨리 설명을 듣고 조치를 취해야 했다.
그가 모니터를 돌려 보여주며 말했다.
"환자분 오른쪽 뇌에 커다란 종양이 있어요. 뇌를 많이 밀어내고 있거든요 지금. 기존에 암이 있으셨나요?"
"네 신장 쪽에 있었고, 폐로 전이됐었어요."
"뇌전이인지 이게 원발암인지는 조직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지금 위험한 상황은 맞아요. 뇌부종이 심하고, 종양이 호흡 중추랑 가까이 있어서 생명이 위험할 수 있어요. 빨리 수술해야 합니다."
항암 치료 끝난 지 6개월도 안 되었는데 뇌까지 번졌다니. 모든 게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혹시 저희 병원에서 수술할 생각도 있으세요?"
S병원에서 머리 수술을? 짧게 생각해도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이전 수술을 다 G대학병원에서 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S병원이 아닌 최고의 G대학병원에서 수술을 해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그것도 머리 수술인데 아무한테나 맡길 순 없었다.
"아뇨. G대학병원으로 옮겨서 하고 싶어요."
"G대학병원 응급실에서 받아줄지 안 받아줄지 몰라요."
아니, 뇌종양까지 생긴 자기네 환자를 안 받아준다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척 봐도 몇 센티는 되는 것 같은데, 3개월마다 한 번씩 하는 추적 검사에서도 발견 못한 주제에. 화가 났다.
"혹시 G대학병원 응급실에 연락해주실 수 있나요?"
"해드릴 수는 있어요. 그래도 제일 빠른 건 사설 구급차 불러서 응급실로 밀고 들어가는 거예요."
G대학병원 응급실 앞에서 또 진을 치고 기다리라고? 뇌에 암이 있어서 언제 생명이 위험할지 모르는 엄마랑 무한정 대기하라고? 그럴 순 없었다.
"G대학병원 응급실에 연락해 주세요. 받아준다고 하면 여기로 연락이 오는 거죠?"
"네, 그럴 거예요."
"그럼 부탁드릴게요. 꼭 잘 좀 얘기해 주세요."
'제발 우리 엄마 살려주세요' 하면서 무릎 꿇고 빌고 싶었다. '이 환자는 아무리 봐도 너무 위독하니 빨리 받아줘야 한다'라고 G대학병원에 부탁해 주길 바랐다. 하지만 해줄 것 같진 않았다. 이런 환자가 수두룩 빽빽일 텐데 이 의사가 우리 엄마만 특별히 부탁해줄 이유가 있겠는가.
눈물을 닦고 엄마에게 갔다. 내가 들어온 기척을 들었는지, 눈을 감고 있던 엄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래?"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묻는 엄마를 보니, 갑자기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엄마, 나 지금 전화 온다. 잠깐만."
황급히 커튼을 열고 나와서 복도 의자에 앉아 펑펑 울었다. 왜 하필 우리 엄마에게, 그것도 머리에까지 암이 생겼을까. 독하기로 유명한 MVAC 항암도 8차까지 이겨내고, 매일 걷고, 좋은 음식 먹고, 긍정적으로 생활하고, 여행 다니면서 즐거운 삶을 살았는데 왜 머리에까지 번진 걸까? 진짜 이 암세포 새끼는 독하디 독한 놈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울고만 있을 순 없지. 이럴 때일수록 정신 차려야 한다. 심호흡을 한 후, 세면대에서 눈가를 물로 닦아냈다. 마음을 굳게 먹었다. 커튼을 열고 들어가니 엄마는 눈을 뜨고 있었다. 옆 간이 의자에 앉아서 엄마 손을 잡았다.
내가 말하기 전에 엄마가 먼저 말했다.
"우리 딸 고생 많다. 힘들지?"
또 눈물이 날 뻔한 걸 간신히 참았다.
"엄마가 힘들지 뭐. 난 괜찮아. 여기 병원에서 엄마 머리 CT 찍은 거 잘 판독이 안 된다고, G대학병원으로 옮기는 게 좋겠대. G대학병원 응급실에 자리 나면 연락준다고 했으니까 좀만 대기하자. 엄마도 G대학병원이 낫지?"
'엄마 뇌종양이래'라고 죽어도 말 못 해.
"그럼. 거기는 하도 다녀서 이제 집처럼 익숙해."
"그래, 연락 올 때까지 좀만 기다리자."
그때가 오후 3시였다. 난 30분에 한 번씩 의사에게 가서 물었다.
"G대학병원에서 연락이 왔나요?"
그때마다 의사는 '아니요'라고 답했고, '전화 오면 알려드릴게요'라고 말했다. 성질이 났다. '이 곰팅아 네가 전화를 또 해보란 말이야. 리마인드를 해달라고. 까먹었을 수도 있잖아'라고 말하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혹시라도 기분을 거스르면 불이익을 줄까 봐, 비굴하고 간절하고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물러날 뿐이었다.
오후 6시가 되자 응급실 담당 의사가 바뀌었다. 이제 여자 의사였다. 뭐야, 곰팅이가 자기 간다고 말도 안 하고 가버렸네. 저 의사가 히스토리를 알려나? 너무 불안했다.
"안녕하세요, 저 오미실 환자 보호잔데요. 혹시 이전 선생님한테 저희 엄마 얘기 들으셨나요?"
"네, 들었어요. G대학병원에서 아직 연락이 없네요. 제가 연락을 한번 해볼게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머리를 숙이고 뒷걸음질 쳐서 공손히 물러났다. 그게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최대한 불쌍하고 예의 바르게 보이면 뭔가 하나라도 더 해줄까 싶어서. 밖에서 만났으면 그냥 언니였겠지만, 여기서는 우리 엄마의 목숨을 살릴 열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다행히, 이 깐깐해 보이는 의사는 G대학병원에 여러 번 전화를 하며 성의 있게 팔로업을 해주었다. 너무 고마워서 껴안고 싶은 심정이었다.
드디어 G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연락이 왔다. 엄마는 S병원 응급실로 옮긴 지 10시간 만에 사설 응급차를 타고 G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길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G대학병원에 도착한 건 밤 11시가 넘은 시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