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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미 Jul 14. 2023

요양병원 사람들

(3)

핸드폰이 울렸다. 요양병원 간호사실이었다.


"여보세요."


"오미실 환자 따님이시죠?"


"네 맞는데요."


"오미실 씨가 영양 주사 놔달라고 해서 전화드렸어요."


"네, 놔주세요."


"이 오마프원페리주가 영양공급에는 최적이거든요. 그런데 비급여라... 비용이 12만 원이에요."


"네, 놔주세요. 앞으로는 말씀 안 하고 놔주셔도 돼요."


"네... 전화받는 거 번거로우시죠? 보호자 분들이 영양제 놔준다고 하면 오케이 하시곤 나중에 청구서 보고 항의하시는 경우가 있어서요. 무슨 주사비가 이렇게 많이 나왔냐고. 그래서 저희가 부득이하게 매번 전화드리고 있어요."


"아 네. 저는 괜찮으니까 엄마가 놔달라고 하면 그냥 놔주세요."


"알겠습니다."


길어야 한 달인데 매일 맞는다고 집안이 망하겠냐. 사실 뭐라도 돈 드는 걸 해야 이 병원에 있을 수 있다는 건 눈치로 알 수 있었다. 값비싼 항암 면역주사를 결국 안 맞기로 했기 때문이다.



면담 이후 의사는 내게 전화해서 엄마의 피검사 결과를 알려주었다. 그는 학구적이고 진지했고, 환자에 대한 관심이 느껴졌다. 대강 설명하고 넘어가는 게 아니라, 작은 것 하나하나 짚어서 얘기하고 배경 설명까지 곁들여 이해시켜 줬다. 내가 좋아하는 의사 스타일이었다.


그는 전화를 끊기 전, 다시 한번 면역주사를 권했다. 나의 예민한 감각이 그의 목소리가 민망함으로 떨리는 것을 감지했다. 이제 희망고문을 끝내야 했다.


"죄송하지만 면역 치료는 못 할 것 같아요."


"네, 알겠습니다."


그가 간결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퇴원하는 날까지 다시는 주사 권유를 하지 않았다. 참 저것도 못할 짓이다. 위에서 얼마나 압박할까. 요양병원 페이닥터는 영업의 최전선에 있다. 환자 1명당 잘하면 몇 천만 원씩 받아낼 수 있는데, 그걸 만들어내는 사람은 간호사도, 오너도 아닌 의사들이다. 싫다는 사람을 설득해 기어이 고가의 주사를 맞히는 일이 적성에 안 맞으면 힘들겠지.


병원 웹사이트에서 의료진을 검색해 약력을 찾아봤다. 그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2차 병원에 잠시 있다가 이곳에서 쭉 일하고 있었다. 서울대 의대 동기들이 대학병원에서 일하며 교수님 소리를 듣거나 개업해서 원장이 되어 있을 텐데, 그는 소도시 변두리 요양병원에서 말단 페이닥터로 의심스런 주사제를 영업하고 있었다. 나이는 많아 봐야 40대 후반으로밖에 안 보이는데… 박탈감을 느끼지 않을까? 그에게 어떤 사정이 있는지 궁금했다. 물론 캐묻진 않을 것이다. 대신 멋대로 상상해야지.


(상상의 내용: 가난한 집 막내아들로 태어난 그는 몸이 허약했지만 머리는 비상하게 좋아서 학원 한번 안 다니고도 전교 1등을 놓친적이 없었고, 서울대 의대를 장학금 받고 들어갔으나 대학 1학년때 첫 미팅에서 만난 여학생을 가난 때문에 이별해야 했기에 이로 인한 충격으로 매일 술로 살다가 유급하고, 에라 모르겠다 술집에서 만난 여자와의 사이에 아이가 생겨 급하게 돈을 벌어야 하는 바람에 공부도 제대로 못하고 2차 병원에 취업했다가, 그 여자가 바람나서 도망가버려 혼자 애를 키우다가, 애 둘 딸린 이혼녀와 어찌어찌 재혼했는데 그 이혼녀의 아빠가 이 요양병원 원장이었고, 그는 이곳 말단 의사로서 초라해보이지만 사실은 장인어른이 죽으면 본인이 원장이 되는 대단한 인물이었던 것이다…라고 1초만에 상상해버림으로써, 그가 간절히 권하던 면역주사를 거절하고 불편했던 마음을 해소해 보았다)


간병인을 쓰면서 몸은 편했을지언정 마음은 불편했다. 엄마는 하루종일 전화를 해댔다. '나 언제 나가냐'면서. 매번 '2주만 있다가 나갈 거야, 잘 걷게 되면 나갈 거야' 하고 말했지만, 그새 잊었는지 전화해서 같은 질문을 똑같이 하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며칠 지나니 전화는 뜸해졌지만, 말이 점점 공격적으로 변해갔다.


"전화기가 안 돼서 답답해 죽겠어. 전화하는 것도 안 되고 받는 것도 안 돼. 짜증나. 너 내 전화기 막아놓은 거 아냐? 빨리 와서 전화기 좀 바꿔줘."


"알았어 엄마. 주말에 가서 꼭 바꿔줄게."


"너 나 여기다 쳐넣어놓고 얼굴도 안 비추더라. 너, 여기 오기만 해. 내가 어떻게 할지 알아? 너한테 핸드폰 탁 하고 던질 거야. 너 들어올 때 얼굴 조심해라."


그러고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근데 맞으면 안 되지... 우리 딸 얼굴에 상처 나면 큰일나지..."


순둥이 오미실 씨가 이런 말을 하다니. 충격이었다. 왜 이렇게 공격적으로 변했을까? 엄마는... 정말 치매일까?


주말 아침 서둘러 B시로 향했다. 집에서 차로 1시간 거리였지만, 요양병원이 워낙 구석진 곳에 있어 골목을 뱅글뱅글 돌아서 운전하며 진땀을 뺐다.


로비 소파에 앉아 엄마가 내려오길 기다렸다. 주말이라 면회 온 사람이 많았다.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환자도 있었지만, 대부분 멀쩡해 보였다. 이들은 왜 입원했을까? 물론 항암치료 중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입원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 각자의 사정이 있겠지만, 외적으로 크게 힘들어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엄마가 간병인을 대동하고 내려왔다. 이 병원 로비에서 상태가 가장 안 좋아 보였다. 걷기가 어려운지 간병인이 엄마를 거의 들고 부축하는 상태였다. 입원하기 전보다도 훨씬 안 좋아 보였다. 왜 며칠 동안 영양수액을 맞았는데도 저렇지?


엄마가 나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저런 순둥한 눈으로 노려봐야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너어... 이럴 수 있어? 핸드폰 바꿔주는 게 그렇게 어려워? 응?"


간병인은 멀찌감치 떨어진 의자에 앉았고, 엄마는 내 옆에 잠시 앉아 있다가 소파에 누워버렸다. 핸드폰을 건네받아 작동해 보니 정상이었다.


"엄마 핸드폰 잘 되는데? 손가락으로 차분히 누르면 돼. 엄마가 잘 못 써서 그런 거니까 핸드폰 바꿀 필요 없어."


전화로 그렇게 으름장을 놓더니, 내 얼굴을 보니 좋았나 보다. 다시 온순한 엄마로 돌아가 있었다.


"알았어. 근데 나 병원에서 나가고 싶어. 응? 나가게 해줘."


"걸음도 잘 못 걷는데 어떻게 나가. 조금만 더 있어."


"나 너무 답답해. 응? 제발."


계속 애원하니 짜증이 났다. 소파에 앉아 있지도 못해서 누워버렸는데, 상태가 이 지경인데 나가겠다고 조르니 정말 난감했다.


"엄마, 그럼 걸어봐. 일어서봐."


엄마를 일으켜 세웠다.


"저기 벽까지 한번 걸어봐. 저기까지 걸을 수 있으면 내가 퇴원시켜 줄게."


일으켜 세워진 엄마는 눈을 크게 뜨고 목적지를 노려봤다. 예전에 엄마가 젊은 시절 볼링 대회에 나갔을 때, 공을 들고 준비자세를 할 때 딱 그 눈이었다. 정신을 집중하고 가만히 한 점을 바라본다. 진지한 표정, 결연한 눈빛, 스타트.


엄마는 한 발을 떼면서부터 휘청대더니 세 발도 못 가서 옆으로 쏠려 쓰러질 뻔했다. 내가 급히 잡아 세웠다. 엄마는 내 팔을 뿌리치면서 또 혼자서 걸어보려 했지만, 또다시 옆으로 넘어질 듯 휘청댔다.


"아이구! 조심하세요."


지나가던 하얀 가운의 여자분이 엄마를 잡아주었다. 엄마를 부축해 다시 소파에 앉혔다.


"엄마 이것 봐! 안 되잖아! 이런 몸으로 어딜 나간다 그래!"


화가 났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구는 엄마가 답답했다.


"에이 따님, 엄마 기분 조금만 이해해 주세요."


엄마를 잡아준 하얀 가운의 여자분이 맞은편 의자에 앉아 있었다. 마음이 평온해지는 인자한 웃음이었다.


"잡아주셔서 감사해요. 자꾸 퇴원한다고 우겨서 걸어보라고 했는데, 전혀 안 되네요."


"그렇죠. 지금 많이 쇠약하신 상태라.”


여자분이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간호사 선생님이세요?"


"아뇨, 저는 여기 영양사예요."


"아 네."


"어머니가 원래 활동적인 분이셨죠? 매일 걸으러 다니시고, 그전에 항암치료 할 때도 혼자 운전해서 다녔다고 하시더라구요. 아마 여기가 답답해서 그러실 거예요. 어머니가 따님 칭찬을 어찌나 하시던지."


"저희 엄마랑 얘기 나눠보셨어요?"


"그럼요. 여기 소파에 누워서 저랑 한참 수다 떨고 그랬어요."


엄마는 힘에 부쳤는지 눈을 감고 있었다. 잠들었나? 영양사가 엄마를 힐끗 보더니 말을 이었다.


"여기 오시는 분들, 많이들 나가고 싶어 하세요. 그래도 할 수 없죠. 다 나아서 나가셔야지... 어머니께도 제가 밥 잘 드시고 걷기 연습 많이 하시면 나갈 수 있다고 틈틈이 말씀드릴게요."


"감사해요. 제가 엄마랑 같이 못 있어드리니까 마음이 너무 힘드네요."


"이해해요. 요새는 보호자들이 직접 못 돌보고 간병인 쓰시니까 마음이 편안치 않죠. 그래도 어쩌겠어요. 다들 삶이 있는데."


그랬다. 예전에는 가족이 아프면 누군가가 옆에서 간호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닥치니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아픈 사람에게는 24시간 온전히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돌봄을 맡은 사람은 일상을 포기하고 환자에게만 붙어 있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아무리 소중한 가족이라도 - 환자가 자신의 자녀가 아닌 이상 - 이게 가능할까?


나는 결혼 전까지 엄마 껌딱지였다. 결혼하고도 매일 최소 두 번은 전화를 거는 엄마 스토커였다. 그러나 정작 엄마가 아프니, 나는 간병인을 붙여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만약 내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만약 아기가 없었다면, 엄마에게 전적으로 붙어 있었을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 생활을 얼마나 지속할 수 있었을지는 잘 모르겠다. 엄마는 이런 내게 배신감을 느꼈을까?


소파에 누워 눈을 감고 있던 엄마가 눈을 떴다.


"엄마, 여기 많이 답답해?"


"응."


"병실에 같이 있는 할머니랑 간병인이랑 수다 떨고 그래. 시간 잘 가게."


"응. 근데 별로 할 말이 없어. 내가 낮에 누워서 뭐 하는 줄 알아?"


"뭐 하는데?"


"창밖에 풍경이 아주 이쁘거든. 하늘에 구름 떠가는 거 가만히 보면서 속으로 시 외운다?"


"어떤 시?"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두 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박목월 시야. 나그네."


눈물이 고였다. 몸은 병상에 누워 있지만 정신은 나그네처럼 전국 팔도를 정처 없이 떠도는 엄마의 모습이 그려졌다.


아픈 사람은 병원에 얌전히 누워 치료받아야 한다는 일차원적인 생각뿐, 엄마의 마음이 어떨지 생각해본 적 없다. 환자이기 전에 자유를 사랑하는 한 사람인데, 아프다고 해서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욕구가 이렇게 간단히 무시되면 안 되는 거였다. 아픈 사람도, 사람인데.


"엄마, 밥 잘 먹고 푹 자고 영양제 잘 맞고 있어. 딱 일주일만 더 있자."


엄마가 멍한 눈으로 대답했다.


"그래. 알았어."


그 일주일이 얼마나 늘어날지, 그리고 얼마나 다이나믹할지, 이때는 알 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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