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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미 Jul 13. 2023

요양병원이라는 신세계

(2)

벚꽃이 만개할 무렵, 나는 뒷좌석에 엄마를 태우고 B시로 가고 있었다. 햇볕이 찬란한 날이었다.


"꽃이 참 예쁘다. 꽃구경 가야 하는데..."


"그래, 가자. 2주 있다가 나와서 가도 늦지 않아."


2주 후는 4월 중순이었다. 꽃구경은 그때 가도 늦지 않지. 벚꽃은 지겠지만 더 알록달록한 꽃들이 만개해 있을 테니.


우리 둘에게 생소한 B시로 가는 까닭은, 누군가가 그곳의 요양병원을 추천했기 때문이다.



미영 이모의 메시지를 받고 한달음에 달려갔던 날, 엄마가 조금 이상하긴 했다. 별일 아닌 일에 신경질을 내고 눈빛이 약간 멍했다. 엄마가 보이는 증상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아무래도 섬망 같았다.


섬망. 태어나 처음 듣는 단어였다. 섬망은 연세 드신 분이나 중증 환자가 몸이 급격히 쇠약해지거나 수술을 한 직후 나타나는 현상이다. 인지저하, 망상, 환청 및 환각, 배회, 폭력적 언행이 대표적인 증상이다. 치매와 섬망은 증상 면에서는 비슷하다. 치매는 서서히 진행되고, 섬망은 갑작스레 나타나는 것이 차이점이었다. 그리고 치매는 불가역적이지만 섬망은 가역적, 즉 시간이 지나면 정상으로 돌아온다.


엄마는 3월 초만 해도 괜찮았다. 멀쩡한 핸드폰이 느려졌다고 짜증 내고 카톡 메시지에 맞춤법이 틀리긴 했지만, 1월에는 그런 증상마저 없었다. 갑작스레 변한 걸 보면 치매가 아니라 섬망이렷다. 아무래도 항암 치료 후 몸이 너무 쇠약해지고 설사를 오래 해서 그렇지,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면 인지도 괜찮아질 것이다. 안방에서 화장실로 가는 몇 걸음도 겨우 옮길 만큼 기운이 없는데 정신이라고 멀쩡할까.


일반 병원에서는 딱히 병명이 없어 안 받아줄 것 같으니, 암 요양병원에 입원시켜 설사를 멈추게 하고 영양수액을 맞히는 걸로 오빠와 결정했다. 오빠는 이런 결정을 한 직후 자기 식구와 하와이로 여행을 떠났다.


요양병원에 도착해 주치의로 배정된 내과 의사와 면담했다. 고지식해 보이면서도 책임감이 강해 보였다. 의사가 엄마의 상태를 면밀히 물어보며 수첩에 가득 메모를 했다. 우리 엄마를 진지하게 대해주는 그에게 감동해, 내가 아는 엄마의 모든 투병 히스토리를 줄줄 읊었다.


이야기를 들은 그는 신중히 고민하는 듯했다. 그러다 서랍에서 A4 사이즈의 종이를 하나 건넸다.


"아무래도 항암치료로 인해 몸이 많이 쇠약해져 그런 것 같습니다. 저희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치료들을 권해드릴게요. 얼마나 입원하실 예정인가요?"


"2주 생각하고 있는데, 한 달까지 있을 수도 있어요."


종이에는 각각의 암 면역주사가 암환자의 회복과 면역력을 얼마나 강화시키는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우리 엄마도 진작 이런 주사를 맞았다면 좋았을걸.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얼마가 들든, 하자.


"가장 좋은 치료는 이 4종류의 주사를 모두 맞는 건데요, 한 달 동안 투여하면 약 1200만 원 정도 든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하지 말자.


"아......"


낙담하는 표정을 본 의사가 재빨리 말했다.


"물론 이 4가지를 모두 추천하긴 하지만, 꼭 다 하실 필요는 없어요. 제가 생각했을 때... B주사랑 C주사만 맞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강제는 아니니 잘 생각해 보세요."


"아 네... 오빠랑 얘기해 보고 결정할게요."


엄마를 살리는 것도 좋지만 1200만 원을 어디서 구하냐고. 그리고 엄마는 수술도 잘 됐고 항암 치료도 마쳤는데 저런 주사들을 꼭 맞을 이유가 없었다. 솔직히 말해, 온열치료니 면역주사니 그런 걸로 암을 퇴치할 수 있다면 뭐 하러 대학병원에서 돈 들이고 고생해서 수술하고 항암 치료를 하나.


오빠랑 얘기해 본다고 둘러대고 일어나서 나가려는데, 의사가 근엄하지만 약간은 다급한 목소리로 날 불러 세웠다.


"잠깐."


"네?"


"정 힘들 것 같으시면... 마지막으로 이 주사만은 권해드립니다. B주사는 꼭 맞으세요. 최소한도로 맞으면 180만 원 정도 듭니다. 아 물론! 강제는 아닙니다. 오빠 분이랑 고민해 보고 얘기해 주세요. 부담 갖지 마시고요."


이 정도면 부담을 넘어 협박인데요. 고지식해 보였던 의사가 이젠 약장수처럼 보였다. 나는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게요’ 표정을 지으며 방을 겨우 빠져나왔다. 그러나 내 마음엔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엄마에게 필요한 건 영양수액이었다. 그저 몸이 약해진 것뿐이니까, 수액을 맞으며 푹 쉬고 음식 잘 가려 먹으면 100% 좋아질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괜히 귀 팔랑대다가 귀한 돈을 날릴 순 없지.


접수처에서 병실을 배정받는데, 간호사가 물었다.


"직접 간병하실 건가요?"


"아뇨, 아기가 있어서 가봐야 해요."


"환자분은 거동이 힘드시기 때문에 간병인이 필요해요."


"그럼 어떡하죠?"


"저희가 간병인을 알아봐 드릴게요. 구하더라도 오늘은 힘들고 내일부터 가능할 거예요. PCR 검사 때문에요. 내일 오전에 간병인 오실 때까진 따님이 있으셔야겠어요."


그때였다. 접수할 때부터 근처에서 서성대던 아주머니가 다가왔다. 환자복을 입고, 손에는 자판기 커피를 들고 있었다.


"간병인 구해요?"


"네."


"내가 아는 사람 소개해줄까요? 한국인이에요."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도 이런 일을 하나?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요새 조선족들이 간병인을 많이 한다고 한다. 조선족들도 일 잘하고 친절하다는 후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후기도 많다. 그래서인지 간병인 구할 땐 '저희는 한국인만 보내드려요'라고 하는 간병업체도 있다.


"네 좋죠. 제가 아는 분이 없어서요."


"잘됐다. 내가 암수술 3번 하고 여기서 9년째 살고 있는데, 초반에 나 도와준 간병인이에요. 일을 어찌나 잘하고 싹싹한데요. 나랑 아직도 연락하고 지내요."


맙소사. 병원에서 9년을 살았다고? 9년 동안 요양병원에 살았다는 아주머니의 얼굴을 자세히 뜯어보았다. 암환자라고는 볼 수 없을 만큼 건강한 혈색에 꼿꼿한 상체, 활기찬 말투였다. 그러고 보니 아까 로비 옆에 큰 방 같은 게 있었는데, 사람들이 모여 요가를 하고 있었다. 벽면에는 프로그램 안내가 붙어 있었는데, 이런 상주 환자들을 위한 것 같았다. 병원에서 몇 달도 아니고 1년도 아니고 거의 10년을 사는 기분은 어떨까? 게다가 저렇게 건강해 보이는데.


"저... 간병인은 얼마인가요?"


"그렇게 비싸지 않아요. 서로 얘기해 봐야 알겠지만 24시간에 12만 원 선이에요. 이 분은 양심적이어서 많이 받지도 않아요."


"아 그렇군요. 24시간 있어주시는 것 치고는 싸네요."


12만 원을 24시간으로 나누면 시급 5천 원. 최저 시급의 반 정도다. 사람을 부리는 것 치고는 싼 금액이다.


하지만 나중에 간병인들을 부르고 간병비를 지불할 때마다, 무시무시한 현실을 자각할 수 있었다. ‘간병파산'이라는 단어가 내 사전에 들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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