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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미 Jul 05. 2023

엄마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게 분명했다

(1)

평범한 토요일 오후, 쇼파에 앉아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내 목소리가 점점 심각해지는 걸 느낀 남편이 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전화를 끊은 나는 남편을 보며 울먹였다.


"제비꽃, 엄마가 이상해."


"장모님이 왜?"


"그냥 좀... 이상해."  


"어떻게 이상하신데?"


"말을 끝도 없이 해. 내 말은 안 듣고 자기 말만 해. 그리고... 한 말을 계속 반복해."


"나이 드셔서 그렇겠지."


"아냐, 단순히 나이 때문은 아닌거 같아."


그때, 띠링- 문자가 왔다.


- 류미야, 미영 이모야. 너희 엄마가 좀 이상한 것 같은데... 엊그제 큰이모네서 다같이 모였는데, 화장실을 못 찾아서 뱅뱅 돌더라고. 나갈 때 현관문도 못 찾고. 그리고 기운이 너무 없고 걸음도 잘 못 걸어. 아무래도 네가 한번 가봐야 할 것 같다.


"이것 봐. 내 말이 맞지."


제비꽃에게 핸드폰을 건네는 순간,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뭔가 많이 불길했다.



제비꽃과의 연애와 결혼과 출산(아기도 낳았어요!)을 거치는 동안, 내 첫사랑 오미실 여사는 힘든 시간을 겪고 있었다.


제비꽃과 남해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 결혼하겠다고 알렸을 때, 엄마는 묘한 표정을 지을 뿐 별 말이 없었다. 자신의 오른쪽 신장에 7cm 크기의 암이 있고 수술을 앞두고 있다고 말했다면, 나는 제비꽃과의 결혼을 취소하거나 미뤘을까?


내가 결혼식 준비에 한창일 때, 엄마는 암수술을 받아 신장 한 쪽을 떼어냈다. 결혼식 당일에 엄마는 총 8번 중 6차 항암치료를 막 받은 상태였다. 발이 퉁퉁 부어서 꽃신이 맞지 않아 결혼식 내내 버선발을 한복 치마에 가리고 있었다.


항암 치료를 마친 엄마는 몸무게가 54kg에서 45kg이 되었지만, 생각보다 멀쩡해 보였다. 그녀는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다시 자유롭고 행복한 아줌마로 살아갔다. 매일 걷고, 모임에 나가고, 행복센터에서 수업을 들으며 누구보다 바쁘게 지냈다.


당시 나는 적응 안 되는 결혼생활로 인해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결혼한 지 3개월도 안 돼 울면서 이혼하고 싶다고 말하는 내게 엄마는 한 가지 묘수를 냈고, 나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으며 결혼 생활에 성공적으로 적응했다. 그 시기 우리에게 아기 천사가 찾아왔다.


아기의 탄생을 기다리며 임신 6개월에 들어섰다. 이 시기, 다시 충격적인 일이 닥쳤다. 엄마의 암이 이번에는 폐로 전이돼 커다랗게 자라고 있다고 했다. 항암 치료가 끝난 지 1년도 안 된 시점이었다. 게다가 3개월 전에 CT 찍었을 땐 깨끗했는데, 3개월 만에 이렇게 폭풍성장한 걸 보니 아주 악질적인 놈이 틀림없었다.


엄마는 조금 신경이 날카로워지긴 했지만, 이번에도 담담했다. 수술 전 걷기 운동으로 체력을 키우고, 수술해서 한쪽 폐를 떼어내고, 항암 치료를 시작했다.


엄마가 치료를 받는 동안 아기가 태어났다. 내가 아기를 낳으면 봐주겠다는 명목으로 산후도우미로 일했던 엄마지만, 정작 내 아기가 태어난 지 100일이 넘도록 보러 오지 못했다. 기운이 없어서 우리 집까지 운전해서 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엄마에게 간다고 해도, 엄마는 아기 때문에 힘드니까 절대 오지 말라고 했다.


엄마가 너무 보고싶었다. 엄마의 병원 진료날 몰래 G대학병원으로 향했다. 저 앞 대기 의자에 앉아 있는 엄마 뒷모습이 보였다. 살금살금 다가가 장난스럽게 등을 쿡 찌르자, 엄마가 놀란 눈으로 날 돌아봤다.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엄마는 TV에서만 보던, 뼈만 앙상히 남은 말기 암 환자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내 눈물을 본 엄마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는 엄마가 아기 얼굴 한번 못 보고 돌아가실까 봐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엄마는 항암 치료를 가까스로 끝내고, 아기가 생후 120일쯤 되는 날 우리 집에 왔다. 아기를 안은 엄마는 행복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 딸, 애기를 아주 네모 반듯하게 잘 키워놨네!"


다부지고 뚠뚠한 우리 아기를 네모 반듯하다고 표현한 오미실 여사였다.


이번 항암 치료 후에도 엄마는 일상 생활을 했다. 39kg까지 빠진 몸에는 더 이상 살이 붙지 않았지만, 그녀는 거의 매일 밖으로 나갔다. 이모들이 걱정할 정도로 쉼없이 움직였다. 마치 태엽이 고장난 장난감 인형처럼.


그렇게 매일을 불태우고 살던 엄마가... 걷기도 힘들고 인지가 급격히 떨어졌다고? 암을 그렇게 씩씩하게 이겨내더니, 이제는 치매에 걸린 걸까? 이모의 문자를 확인하고 얼마 후, 남편에게 아기를 맡기고 A시로 차를 몰았다. 서쪽으로 가는 길이라 석양이 근사했지만,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엄마의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이때는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기막힌 일이 펼쳐질지 아무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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