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야(초6)
인근의 다른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의 그림책 출판기념회를 한다고 해서 출장을 내고 다녀왔다. 빈틈없이 완벽한 행사를 보고 와서 그런가 마음이 조금 불편하다. 그래서 작가라 불리게 된 아이들은 글쓰기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쓰는 동안 혹은 쓰고 난 뒤 행복했을까...
엊그제 모 글짓기 대회에 우리 반 아이들 작품을 응모했다. 합천에서 하는 대회지만 전국에서 작품이 모일 정도의 큰 대회라 상금도 세고 경쟁도 세다. 레야 담임선생님께 부탁해서 레야도 글을 써보게 했는데 이 녀석이 어린이 글짓기 대회에 산문도 운문도 아닌 소설을 써왔다. A4 11포인트로 무려 18장. 내용은 둘째치고 나도 지난 방학 내내 썼던 분량을 단 2~3일 만에 썼다는 게 놀라웠다. 늦게 시작해 마감일자 하루 전날 완성하는 바람에 제대로 봐줄 시간도 없어 맞춤법이랑 문장만 조금 고쳐서 바로 제출했다. 이걸 6학년이 썼다고 믿기나 할지... 좋게 봐줄 수도 있지만 대회성격에 안 맞다고 버려질 수도 있다. 어쨌거나 상관없이 레야가 완성한 첫 소설이다. 그 글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그럼 자네는 정의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제가 생각하는 정의는...."
가족의 복수를 위해 전장에 홀로 뛰어들어 전사한 친구의 복수를 위해 군인이 된 에덴이라는 인물이 주인공이다. 처음에는 복수를 위해 뛰어들었지만 전쟁터에서 어느새 적들은 물론 민간인 학살까지 감행하면서 목표는 이루었지만 그것이 정말 정의였는지 되묻는 그런 내용이다.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이 떠오른다. 물론 본인은 그것까지 연관시키지는 않은 듯하다. 이 녀석의 머릿속에는 도대체 뭐가 들었는지 궁금하다. 부럽기도 하다. 이렇게 거침없이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어린이 문학 공모전 결과 발표가 났다. 내가 지도한 우리 반 아이의 글이 대상을 받았다. 그러나 레야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다. 나는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 없는 묘한 감정 속에 한동안 잠겨 있었다. 대상을 받은 아이는 다음 해에도 도전하여 수상할 정도로 글짓기에 큰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교사로서 얼마나 보람된 일인지 모른다. 그래도 13살의 나이에 단편소설을 뚝딱 써낸 인재를 못 알아본(?) 주최 측에는 실망감이 가득했다. 엄마는 이렇게 눈이 멀게 되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