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달이달꿈

하얀이(1)

1 Gorinthians 13:1

by 최여름

하얀이는 말을 할 수 없는 아이였어. 그래서 사람들은 하얀이의 마음을 쉽게 알 수 없었지. 단 한 사람, 하얀이의 엄마만은 눈빛만 보고도 아이의 마음을 다 알았어.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나 잠자리에 들 때 엄마는 하얀이의 손을 잡고 기도를 한 뒤 두 눈을 바라보며 ‘사랑해’라고 속삭였어. 하얀이는 목소리 대신 손과 눈빛으로 말을 해. 그래서 언제나 서로를 바라보아야 하지.

어느 날, 하얀이가 엄마에게 물었어.

"엄마는 왜 한 번도 내가 말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아요?"

엄마는 대답했어.

"말을 하지 못하는 대신 하나님은 너에게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는 눈과 마음을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셨잖아. 너는 많은 것을 가진 축복받은 아이란다."

"하지만 저는 말도 하고 싶고 노래도 부르고 싶어요. 제가 말을 못 하니까 아무도 제 마음을 모르고 제게 묻지도 않는걸요.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못 하고…."

하얀이는 뜨거운 눈물을 삼켰어.

"사랑하는 딸아, 엄마는 이미 네 마음을 다 알고 있단다. 그리고 노래 대신 우리는 춤을 출 수 있지."

엄마는 하얀이의 손을 잡고 춤을 추기 시작했어. 빙그르르 착, 빙그르르 착. 하얀이는 춤을 추며 엄마의 마음이 전해지는 것을 느꼈어. 엄마 품에서 하얀이는 활짝 웃었어.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하얀이는 더욱 말을 하고 싶어졌어.

‘내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어떤 목소리가 날까?’

하얀이는 밤마다 혼자 기도하기 시작했어. 아주 아주 간절하게 기도를 했지.

‘하나님, 제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예쁘다, 고맙다, 사랑해 처럼 예쁜 말이 너무 많은데 저는 한마디도 할 수가 없어요. 기분 좋은 날은 노래도 부르고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는 위로도 해 주고 싶어요. 아, 제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그러다 어느 날, 하얀이에게 큰 슬픔이 찾아왔어. 하얀이의 엄마가 병으로 그만 하늘로 떠나버린 거야. 하얀이는 엄마 없는 세상에 혼자 살 자신이 없었어.

‘하나님, 어떻게 저에게 유일한 가족인 엄마를 데려가실 수가 있나요? 엄마 없이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이제 세상에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하얀이는 밥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은 채 매일 눈물만 흘렸어. 그러다 결국 쓰러지고 말았지. 하얀이의 슬픔과 기도는 천사의 바구니에 담겨 하늘까지 닿았어. 하나님은 아직 하얀이를 하늘로 데려올 계획이 없으셨지. 그래서 하얀이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하셨어.

“물, 물 좀….”

하얀이의 말을 듣고 사람들이 달려왔어. 물을 주고 부드러운 음식도 먹여 주었어. 하얀이는 금세 기운을 되찾았어.

“고마워요.”

하얀이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깜짝 놀랐어. 하얀이가 말을 하게 된 것도 놀랐지만 그 목소리가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야. 말을 할 때마다 반짝이는 무지개 가루가 쏟아지는 듯했어.

“당신은 정말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군요.”

“당신 목소리를 들으니 내 마음이 치유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저마다 하얀이의 목소리를 칭찬했고 하얀이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어. 엄마 잃은 슬픔을 목소리로 위로받는 것 같았거든. 사람들은 매일 하얀이를 찾아왔고 하얀이는 모든 사람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었어.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은 하얀이에게 너무나 익숙한 일이었지. 이제 하얀이는 이야기를 들어줄 뿐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로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도 해 줄 수 있게 되었어. 가시 돋친 말들에 상처 입은 사람에게는 든든한 마음의 우산을 씌워 주고 사랑을 잃은 자들에게는 스스로를 먼저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어. 사람들은 하얀이를 만날 때마다 천사의 말을 듣는 것 같이 행복했고 모두들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어. 사실 하얀이는 아름다운 목소리만 가진 게 아니었어. 어느 날 하얀이는 자신의 말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을 알게 되었지.

“어서 일어나 예쁜 꽃을 피워주렴.”

라고 말하며 화분에 물을 주면 말라 가던 식물도 꽃을 피웠어.

“힘을 내세요. 당신은 꼭 이겨낼 수 있을 거예요.”

라고 또 말하면 삶을 포기하고 싶어 하던 청년도 다시 힘을 내 성공을 거두었어. 마음이 아픈 사람은 상처가 회복되었고 희망을 잃었던 사람도 다시 희망을 찾았어. 사람들은 점점 더 몰려들었고 하얀이는 행복했어.

그러던 어느 날, 이 모습을 지켜보던 검은 천사가 하늘로 찾아갔어. 그는 하나님 앞에 찾아가 이렇게 말했지.

“하나님, 당신은 저 아이에게 목소리 대신 따뜻한 눈과 마음을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거기다 이젠 천사의 목소리까지 더 주셨습니다. 이건 불공평합니다. 당장 목소리를 빼앗으십시오.”

“내가 준 목소리는 저 아이의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 준 선물이다. 그러니 다시 빼앗을 수 없다.”

“그렇다면 눈과 귀를 빼앗으십시오.”

검은 천사는 물러서지 않았어. 하얀이가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 샘이 나 견딜 수가 없었거든.

“그것도 할 수 없다. 목소리를 준 대신에 눈과 귀를 빼앗는다면 더 큰 고통을 주는 것이다.”

“하는 수 없군요. 그렇다면 제가 하얀이의 눈과 귀를 조금만 더 어둡게 하겠습니다. 그것마저 허락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더 이상 공평한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검은 천사의 말을 허락했어. 검은 천사는 옅은 웃음을 지으며 땅으로 내려왔어. 그리고 하얀이의 눈과 귀를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어두워지게 했어. 하얀이가 전혀 눈치챌 수 없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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