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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중입니다, 부부 맞아요

by 여름햇살


둘만의 해외여행은 신혼여행 이후 처음이었다. 둘째까지 대학에 보내고 나니 시간도 마음도 한결 여유로워졌다. 그동안 열심히 달려온 세월에 대한 작은 보상이랄까. 둘만의 여행을 계획했고, 가장 빨리 출발 할 수 있는 홍콩 패키지를 골랐다. 제주엔 직항이 없어 인천으로 올라갔다. 08:10 홍콩행. 새벽 5시 반에도 공항은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다. 나도 새벽 네시 반에 일어났지만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여행은 늘 설렌다. 가끔 힘들고 재미없거나 실망스러워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추억이 된다. 처음엔 둘이라 신경 쓸 일이 없어 편하다 생각했는데, 막상 떠나니 아이들 생각이 자꾸 났다. 까다로운 아이들이라 늘 눈치 보며 다녔지만, 그 시간들조차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홍콩의 소호거리는 명성처럼 북적였다. 가이드는 줄 서는 유명한 완탕집과 그 옆 줄 안 서는 집을 알려주며 “맛은 거기서 거기”라 했다. 가이드 말로는 맛이 다 비슷한데, 유명한 집은 그냥 티비에 나와서 그런 거란다. 배가 고팠던 우리는 줄 안 서는 완탕집을 선택는데 나름 전통 있는 집인 듯했다. 모르는 글만 잔뜩 있는 메뉴판을 남편이 장난스런 표정을 지으며 구글 앱으로 확인했다. 역시 모르는 메뉴들이 한글로 보였고, 그냥 새우완탕을 둘 시켰다. 완탕은 처음 먹는 음식이라 맛을 잘 알 수 없었고 내 입에는 맞지 않아서 줄을 섰더라면 좀 더 나았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배를 채운 뒤, 백종원이 극찬해서 유명해졌다는 밀크티도 줄 서서 마셨다. 여행지에서는 모든 게 궁금해서 경험해 보는 편이다. 유명한 밀크티는 우리나라에서 먹던 달달한 밀크티와는 아주 다른 맹맹한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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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키지여행의 자유시간은 늘 남거나 모자라거나 애매한데 남편은 그 와중에 쇼핑할 곳을 찾았다. 바지를 덜 챙겨왔다나 뭐라나. 30년을 함께 하다보니 이제는 다 보인다.

“어떻게 한결같이 뭐가 없냐? 지난번엔 티셔츠라더니”

물욕이 많은 사람이라 본능에 충실하게 일부러 덜 챙기는 것 같다. 필요하거나 좋아해야 물건을 사는 나는 이해가 안 된다. '굳이? 이 홍콩의 거리에서?' 한심하지만 그냥 따라다녔다. 구경하는 건 좋아하니까. 처음 간 거리라 특징도 잘 몰랐고 쇼핑할 만한 곳은 안 보여 남편은 급격히 흥미를 잃고 지친 듯했다. 참 감정도 기운도 들쑥날쑥 빨리 바뀐다. 걷다 보니 골목골목 재래시장이 있었다. 잡화시장도 꽃시장도 과일시장도 보였다.과일가게에서 한글로 '신고배' 스티커가 붙은 한국 배를 보고 반가워 함께 웃었다. 남편과 같이 걷는 시간을 좋아한다. 걷다가 재미있는 걸 보면 마주 보며 같이 웃을 수 있어서 좋다.


덥고 습해 빨리 지쳤다. 소호거리에는 테라스 펍이 많았다. 핫한 거리의 멋진 테라스 펍에 앉아서 맥주 한잔하는 호사를 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배가 불러 음식을 먹을 수는 없었고 남편은 술도 못 마시니 대화도 안 통하는 동네에서 맥주 한 잔만 시킬 수 없어서 포기했다. 평소에는 술을 안 마시니 운전을 맡아줘서 편한데 이럴 땐 여행지의 낭만을 못 챙기는 것이 참 아쉽다. 카페인이라도 채우려고 거리를 헤맸다. 소호에는 작은 가게들이 많았지만 앉아서 쉴 수 있는 곳은 이미 다 차 있었다. 약속 장소 근처에서 간신히 테이블 두 개짜리 작은 카페를 발견하고 커피를 마셨다. 지친 다리를 쉬며 마시는 커피도 좋았지만, 내 눈엔 맞은편 노천카페에서 시원한 맥주를 들이켜는 사람들만 보였다. 나도 거기에 앉아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낮에도 펍마다 제법 많은 사람이 앉아서 맥주를 마시는 게 맘에 드는 동네였다.


이번여행에서 내 또래 정도의 여성 6명, 나이 좀 있는 언니들 6명, 그리고 우리 부부 2명이 함께했다. 우리 부부 둘 다 소심한 성격에 남편 혼자 남자라 걱정을 좀 했는데 의외로 남편이 싹싹했다. 이동할 때는 캐리어도 척척 옮겨주고 대화도 잘 나눴다. 나는 눈치도 없고 겨우 내 몸하나 챙기는데, 남편이라도 나서 주니 마음이 좀 편했다. 덕분에 낯선 이들과 좀 더 쉽고 편하게 지낼수 있었다.


보통 패키지여행에선 여러 사람이 한 테이블에 앉아 식사하는데, 둘만 있다 보니 아무래도 우리가 호기심의 대상이 됐다. 6명 언니들과 같이 밥 먹을 때는 신혼여행이냐고 물었다. 요즘은 늦게 결혼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그런 줄 알았다고, 당황스러웠지만 나쁘진 않았다. 내 또래 여성들과 먹을 때는 "부부 맞죠?" 라고 물어서 한 바탕 웃었다. 중년 부부 둘이서 하는 여행이 그렇게 이상해 보이는 줄 몰랐다. “부부 둘만 무슨 재미로 여행가냐”는 말을 많이 듣는데 나는 남편과 둘이 있을 때 가장 편하다. 가족여행은 그것대로 신나고 재미있지만, 특별한 걸 하지 않아도 챙김 없이 홍콩에서 처음 보낸 온전한 우리 둘만의 시간이 그냥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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