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엄마
둘째가 이사 가고 싶다고 말했다. 작년 1월에 맘에 드는 집을 구하고 좋아서 입꼬리가 올라갔는데, 이층이라 창문 열면 담배냄새가 난다나 뭐라나. 웬만하면 그냥 살았으면 하면서도 기말고사 끝나는 날짜에 맞춰 계획을 잡았다. 싼 항공권을 이용해 아침 일찍 도착했고, 남편과 둘이 아웃렛에서 시간을 보냈다. “싸다고 일찍 와서 여기서 돈 쓰면 이익일까 손해일까?” 하면서. 남편이 좋아하는 제주에는 없는 아웃렛. 대전에 갈 때마다 아웃렛 앞에 있는 호텔을 예약하고 아침저녁으로 들락거린다. 밥도 먹고 초대형 크리스마스트리도 구경했다. 난 아직도 크리스마스트리며 산타할아버지가 좋아서 신나는데 내 딸들은 초등학교 이후로 이런 것에 시큰둥하다. 참 이상한 아이들이다.
시험 끝날 시간에 맞춰 학교 앞으로 갔더니 둘째가 보자마자 배고프다고 난리였다. 마치 아침에 보고 잠시 헤어졌다 오후에 만난 것처럼 오래 떨어져 지낸 시간이 느껴지지 않았다. 가방에 있던 과자와 귤을 꺼내 주고 맛있게 먹는 걸 보니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점심으로 겨우 타르트 하나를 먹었단다. 아이가 점심 같이 먹자고 했는데, 친구들이랑 먹으라고 했던 게 마음에 걸렸다.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시험 전에 긴장도 되고 시간도 아끼느라 점심은 대충 때우고 그랬는데, 요즘 아이들이 안 그런 건지, 이 아이만 공부에 관심이 없는 아이라 그런 건지 모르겠다.
서울에서 큰아이가 올 때까지 시간이 좀 남아서 둘째가 보아둔 방을 보러 갔다. 역 인근에 있는 신축 오피스텔을 딴에는 사진으로 확인하고 근처까지 걸어가 보기도 했단다. 나름 계획적이었다. 오피스텔은 맘에 들었고 다음날 계약하기로 했다. 전에는 하루 종일 보고도 방이 맘에 안 들어 입이 주먹만큼 나오고 삼일째에 겨우 계약을 한 터라 빨리 구해지면 놀다 올 양으로 넉넉하게 잡고 갔는데 삼박사일 일정이 갑자기 널널해졌다.
큰아이까지 도착하니 네 가족 완전체로 부부만 조용히 지내다가 부산스러운 게 나쁘지 않았다. 오랜만에 보는 딸들이 애기같았다. 하얀 얼굴로 배시시 웃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남편은 칼국수를 먹고 싶어 하고 큰아이는 고기 먹고 싶다고 하니 딸이 먼저다. 전에 가 본 고깃집에 갔다. 4인분을 시키고 아직 고기가 많이 남았는데 둘째가 더 시키자고 했다. 못 먹을 줄 알았는데, 남은 고기도 새로 시킨 1인분도 금방 사라져 다시 1인분 추가. 세상에나 이렇게 잘 먹다니. 딸 둘인 네 가족이 6인분의 고기에 볶음밥까지 시켜 먹었다. 나도 오랜만에 복작거리는 분위기 때문인지 젓가락을 내려놓지 않았다. 잘 먹으니 좋으면서도 혼자 사느라 잘 못 먹었나 싶어 안쓰러운 엄마 마음이 들었다. 한 번씩 올리는 사진을 보면 집밥도 외식도 나보다 더 잘 챙겨 먹는 것 같은데도 말이다. 맛있게 잘 먹는 예쁜 딸들을 보니 마음이 즐거웠다.
둘째의 공간이 궁금했다. 큰아이는 나보다 더 잘 살고 있는 걸 이미 확인했고, 둘째는 방 얻어주고 처음 가 보는 거였다. 이 아이도 야무지게 잘 살고 있었다. 깨끗했고 정리도 잘 되어 있었다. 처음 이사 갔을 때, 가구들이 다 안 들어와 어수선한 상태를 보고 왔는데 물건 배치도 잘해 놓았다. 엄마가 못하면 아이들이 알아서 잘하는 걸까? 근데 속으로 약 오르는 건 뭐지? 집에서는 지나가는 자리마다 흔적을 남기는 아이였다. 화가 이만큼 올라와서 말하다 지치기를 반복했다. 말하다 지치기만 해? 잘못한 주제에 자기가 화내는 꼴이라니. 둘째가 지난여름에 집에 왔을 때, 나는 도를 닦았다. '일주일 있으면 갈 거야. 조금만 참자.' 그리고 우리는 평화롭게 잘 지냈다. 그런데 자기 집은 이렇게 깨끗이 하고 산다고? 배신감이 들었다.
“바닥이 너무 차가운데”
“별로 안 차가운데”
여름에 큰아이가 전화로 말했었다.
“엄마, 윤이 미쳤어. 전기세 아낀다고 에어컨 안 틀어.”
헉, 집에서 두터운 차렵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에어컨 빵빵 틀고 자던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덥기로 알아주는 대전에서 에어컨을 안 켜고 살다니. 시원하게 살라고 용돈에 오만 원을 더 얹어 보냈다. 답으로 활짝 웃는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이번엔 가스요금이 무서운 게지. 아닌 게 아니라 지난달 가스요금이 사만팔천 원이나 나왔다며 속상해했다. 오만 원을 더 올려줘야 하나? 뒷날은 놀다가 들어갔더니 바닥이 따뜻했다.
“오, 바닥 따뜻하네”
“에잇, 보일러 안 끄고 나갔잖아”
콧구멍이 커지며 아까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집에서는 보일러 빵빵 틀어 놓고 덥다며 창문 열던 아이였다.
‘육지로 보내길 잘했네’
손바닥만 한 거실에 넷이 옹기종기 앉으니 처음 아이를 두고 가던 날이 떠올랐다. 그래도 지 언니가 와 있어서 다행이라며 조금 마음을 놓았었지. 맨날 배가 아프거나 머리가 아프거나 발목 또는 허리가 아프다던 아이가 웬일로 혼자 사니 조용했다. 엄마가 없으면 저절로 안 아프게 되는 걸까? 항상 나에게 화가 나있던 아이인데, 그러면서 끊임없이 뭘 요구하던 아이인데. 같이 있는 게 버거웠던 이 아이가 육지로 대학을 가니 마음이 가벼웠다.
작년 5월 연휴에 집에 온다기에 반가운 마음과 함께 한숨도 나왔다. 이제 겨우 벗어난 지 얼마 안 됐는데.... 8월에 왔을 때는 좀 덤덤했다. 나도 혼자만의 시간을 넉넉히 가진 뒤라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일까? 그리고 시간이 지나 다시 보니 진심으로 반가웠다. 아이들도 성숙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둘이 서울과 대전을 오가며 잘 지내서 그럴까? 둘 다 상대를 ‘한심하다, 답답하다’ 하면서도 잘 챙겼다. 낼모레 집에 오겠다던데, 이번엔 반가운 마음만으로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서투른 엄마에게는 아이들과의 거리가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