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목 May 07. 2023

인연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풀리지 않는 숙제

한 사람의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주는 '인연'의 정체가 궁금하다. 특히나 한 사람의 삶 한가운데로 깊숙이 침투해 모든 것을 개편하는 사랑은, 그 결정체인 부부라는 인연은 도대체 왜, 어떻게 발생하는 것인가?


스무 살 초반, 사랑이라는 감정을 만난 뒤 줄곧 궁금했던 질문 '결혼을 결심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에 대한 답변은 내 결혼으로 어느 정도 해소가 될 줄 알았지만 여전히 미궁 속이다. 미궁 속에서 찾은 약간의 단서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결혼을 '한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결혼은 '되는' 것이다. 융의 심리학에서 말하는 무의식을 자아로 발현시켜, 즉 의식화하여 자기실현을 이뤄낸 사람이라면 결혼을 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주한 적 없는 무의식의 영향으로 결혼을 '당하는' 듯하다. 마주한 적이 없는 무의식이 시켜 결혼을 하다 보니 그 결과가 뽑기처럼 그저 운에 맡겨진 꼴이 된다. 누구나 사랑해서 결혼한다지만 결혼식 때의 다짐 그대로 긴 시간 행복한 결혼 생활을 영위하는 부부가 많지 않은 것은 이러한 연유인 듯하다. 


무의식은 긍정적으로 발현되기도 하고 부정적으로 발현되기도 하는데 범인이 통제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내가 결혼 '당했다'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의식은 드러나 있고 무의식은 감춰져 있기 있기 때문에 무의식을 마주해 본 적이 없거나, 그런 노력을 하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은 이런 내 말을 절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융은 무의식에서 어떤 신성한 힘, 즉 신적인 에너지를 보았다. 조화, 균형, 전체, 완벽으로 표현되는 이 신성한 힘은 의식과의 줄다리기 속에 어떤 생각이나 현상을 만들어내지만 역시나 개인은 의식을, 또는 의지를 가지고 살아간다고 계속 착각하는 듯하다. 


지난날 매력을 느꼈던 여성들은 하나 같이 드센 기를 뿜어내는 이들이었다. 자기표현이 분명하고, 고집이 강해 모든 것이 선명했던 이들은 그야말로 불 같았다. 그 끝이 늘 시원치 않았음에도 또 병적으로 같은 유의 이성에게 끌리는 내 모습을 바라보며 매번 정체 모를 무의식과 마주해야 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무의식에 있는 여성상(아니마)이 부정적으로 투사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여기서 궁금증이 든다. 왜 이번에는 무의식의 긍정적 여성상이 투사된 것인가? 나의 아내는 그간 인연된 불 같은 여자들과는 아주 상반되는 그야말로 물 같은 여자다. 물은 스스로를 낮춘다. 가장 낮은 곳에서 흐르며 온갖 생명을 떠받치는 모체(母體)이면서 자신의 공을 가지고 떠들지 않는다. 아내는 혼돈으로 뒤섞인 내 마음을 정화하고, 쓰레기통에 버금가는 내 공간을 정돈한다. 어느 날은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내가 어질러 놓은 것을 치울 때 무슨 감정이 드냐고 물으니 아무 감정이 들지 않는단다. 이것이 물의 성정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아내 자랑은 잠시 뒤로 하고 다시 질문이다. 왜, 도대체 왜 나는 이 여인과 부부의 연을 맺게 된 것인가. 


글을 정리할 때즈음이면 어느 정도 답을 찾게 될 줄 알았건만 여전히 모르겠다. 조정민 목사님이 사랑은 빠지는 것이 아니라 건져내는 것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한 여인으로 말미암아 그 지극한 사랑으로 나를 건져내신다. 그런데 왜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인 것인가. 아내는 골똘히 생각에 잠긴 나에게 한 마디 한다. '그냥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요.' 그녀는 혼돈의 미로에서 또 이렇게 날 건져낸다. 그럽시다. 감사하며 삽시다. 

매거진의 이전글 브라질에서 온 내 부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