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일, 아내가 한국을 떠나 브라질로 돌아갔다. 결혼 비자를 획득하기 위함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외국인과 한국인이 혼인 신고를 한다고 해서 한국에서 살 수 있는 권한이 자동으로 부여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결혼 비자를 획득해야 한국에서 살 수 있고, 이마저도 1~2년 정도 머무를 수 있을 뿐이다.(다행히 국내에서 갱신이 가능하다.) 혼인 신고는 결혼 비자를 얻기 위한 첫 번째 단계일 뿐이며 결혼 비자를 얻기까지의 과정은 꽤 험난하다. 다행스럽게도 매사 서툰 날 대신에 아내가 모든 과정을 도맡았고 모든 일들이 잘 해결되어 오늘 26일 아내가 돌아왔다.
이 글은 아내가 내 곁을 잠시 떠나 있었던 지난 23일간의 심정을 기록한 것이다. 난생처음 한 여인과 약 3개월가량의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느낀 감정도 새로웠지만 이 23일간의 감정은 특히나 더 새로웠다.
난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두세 시간 정도 함께 시간을 보내면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이다. 이런 내게 두 사람이 한 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는 결혼이라는 관계는 상상컨대 몹시 불편할 것만 같았다. 결혼 전, 당시에는 여자친구였던 아내를 내 삶의 한가운데에 초대하면서도 설레는 마음만큼이나 두려운 마음이 컸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놀랍게도 아내는 문화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며 내 삶에 녹아들었다. 그 과정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잃어버린 반쪽을 찾은 것처럼 불편하기보다는 온전하고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독립적인 성향은 이따금씩 고개를 쳐들어 그 존재를 알렸고, 솔직한 심정으로는 아내가 비자를 위해 브라질에 가 있는 동안 자유를 만끽할 생각에 한껏 마음이 부풀기도 했다.
그러나 인천공항에서 아내를 보내고 홀로이 집으로 돌아오던 그날 밤 실로 자유로웠던 것은 오히려 아내와 함께 했을 때라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자유는 무한한 자율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듯하다. 진정 자유롭기 위해서는 어떤 체계나 틀 같은 것들이 있어야 한다. 어떤 위험성이나 불안정성에 대한 안전장치가 충분히 마련되었을 때 인간은 참 자유를 누리는 것 같다. 난간이 있는 발코니에서 자유로움을 느끼는지, 난간이 없는 발코니에서 자유로움을 느끼는지 고민해 보면 이해가 쉽겠다. 더 이상 자유로움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위태로움을 느끼며 털레털레 집으로 걸어오며 내가 아내와 함께 사는 삶의 방식에 완전히 길들여져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내가 떠나고 나니 집 안 구석구석에 금방 먼지가 내려앉는다. 달콤한 꽃향기는 어느새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달갑지 않은 홀아비 냄새가 집 안을 가득 채운다. 과일은 냉장고 안에서 썩어가고 줄어드는 것은 라면봉지뿐이다. 꼭 붙어 걷던 산책로를 혼자 걸으며 졸졸 흐르는 시냇물에서도, 구름이 둥둥 떠다니는 파란 하늘에서도, 이곳저곳 발그레 피어난 야생화에서도 아내를 본다. 그나마 지구 반대편에 내 반쪽이 있다는 사실에 얼마나 위안이 되었던가. 살면서 인간이 느끼는 가장 큰 정신적 충격이 배우자의 죽음으로부터 기인한다고 한다. 그럴 만도 하다. 기나 긴 세월 두 사람은 서로에게 기대며 삶 가운데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고난이란 적들과 맞서 싸웠다. 두 사람은 그 과정에서 사랑과 우정을 접착제로 하여 진정으로 하나가 되었는데 그런 한 사람의 존재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다. 혼자 남은 사람의 삶이 빠르게 시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 같다.
사람은 왜 소중한 것을 잃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는 걸까. 이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며 오랜만에 아내를 내 가슴팍에 있는 힘껏 안아본다. 얼굴 한 번 보고 다시 한번 힘껏... 23일간의 위태로웠던 삶이 이렇게 끝나간다. 오늘은 아내가 한국 음식 중에 가장 좋아하는 치킨을 먹어야겠다.
글을 마치며 용기 내어 내 삶에 찾아와 준 아내에게 고마움과 사랑을 가득 담아 보낸다. 다시는 떨어지지 말자는 수줍은 약속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