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목 May 27. 2023

아내가 돌아왔다.

지난 23일 간의 회고

5월 3일, 아내가 한국을 떠나 브라질로 돌아갔다. 결혼 비자를 획득하기 위함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외국인과 한국인이 혼인 신고를 한다고 해서 한국에서 살 수 있는 권한이 자동으로 부여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결혼 비자를 획득해야 한국에서 살 수 있고, 이마저도 1~2년 정도 머무를 수 있을 뿐이다.(다행히 국내에서 갱신이 가능하다.) 혼인 신고는 결혼 비자를 얻기 위한 첫 번째 단계일 뿐이며 결혼 비자를 얻기까지의 과정은 꽤 험난하다. 다행스럽게도 매사 서툰 날 대신에 아내가 모든 과정을 도맡았고 모든 일들이 잘 해결되어 오늘 26일 아내가 돌아왔다.


이 글은 아내가 내 곁을 잠시 떠나 있었던 지난 23일간의 심정을 기록한 것이다. 난생처음 한 여인과 약 3개월가량의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느낀 감정도 새로웠지만 이 23일간의 감정은 특히나 더 새로웠다.


난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두세 시간 정도 함께 시간을 보내면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이다. 이런 내게 두 사람이 한 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는 결혼이라는 관계는 상상컨대 몹시 불편할 것만 같았다. 결혼 전, 당시에는 여자친구였던 아내를 내 삶의 한가운데에 초대하면서도 설레는 마음만큼이나 두려운 마음이 컸던 것은 당연한 이었다. 놀랍게도 아내는 문화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며 내 삶에 녹아들었다. 그 과정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잃어버린 반쪽을 찾은 것처럼 불편하기보다는 온전하고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독립적인 성향은 이따금씩 고개를 쳐들어 그 존재를 알렸고, 솔직한 심정으로는 아내가 비자를 위해 브라질에 가 있는 동안 자유를 만끽할 생각에 한껏 마음이 부풀기도 했다.


그러나 인천공항에서 아내를 보내고 홀로이 집으로 돌아오던 그날 밤 실로 자유로웠던 것은 오히려 아내와 함께 했을 때라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자유는 무한한 자율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듯하다. 진정 자유롭기 위해서는 어떤 체계나 틀 같은 것들이 있어야 한다. 어떤 위험성이나 불안정성에 대한 안전장치가 충분히 마련되었을 때 인간은 참 자유를 누리는 것 같다. 난간이 있는 발코니에서 자유로움을 느끼는지, 난간이 없는 발코니에서 자유로움을 느끼는지 고민해 보면 이해가 쉽겠다. 더 이상 자유로움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위태로움을 느끼며 털레털레 집으로 걸어오며 내가 아내와 함께 사는 삶의 방식에 완전히 길들여져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내가 떠나고 나니 집 안 구석구석에 금방 먼지가 내려앉는다. 달콤한 꽃향기는 어느새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달갑지 않은 홀아비 냄새가 집 안을 가득 채운다. 과일은 냉장고 안에서 썩어가고 줄어드는 것은 라면봉지뿐이다. 꼭 붙어 걷던 산책로를 혼자 걸으며 졸졸 흐르는 시냇물에서도, 구름이 둥둥 떠다니는 파란 하늘에서도, 이곳저곳 발그레 피어난 야생화에서도 아내를 본다. 그나마 지구 반대편에 내 반쪽이 있다는 사실에 얼마나 위안이 되었던가. 살면서 인간이 느끼는 가장 큰 정신적 충격이 배우자의 죽음으로부터 기인한다고 한다. 그럴 만도 하다. 기나 긴 세월 두 사람은 서로에게 기대며 삶 가운데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고난이란 적들과 맞서 싸웠다. 두 사람은 그 과정에서 사랑과 우정을 접착제로 하여 진정으로 하나가 되었는데 그런 한 사람의 존재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다. 혼자 남은 사람의 삶이 빠르게 시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 같다.


사람은 왜 소중한 것을 잃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는 걸까. 이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며 오랜만에 아내를 내 가슴팍에 있는 힘껏 안아본다. 얼굴 한 번 보고 다시 한번 힘껏... 23일간의 위태로웠던 삶이 이렇게 끝나간다. 오늘은 아내가 한국 음식 중에 가장 좋아하는 치킨을 먹어야겠다.


글을 마치며 용기 내어 내 삶에 찾아와 준 아내에게 고마움과 사랑을 가득 담아 보낸다. 다시는 떨어지지 말자는 수줍은 약속과 함께...


매거진의 이전글 인연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