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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독 바다청년 Jan 07. 2023

독일 도시 답사기: 아헨

온천과 샤를마뉴의 도시


벨기에, 네덜란드 국경에 있는 독일의 중간 규모의 도시. 지금은 독일에서 제일 유명한 두 개의 공과대학 중 하나가 위치한 곳이라고 알고 있을 뿐, 그다지 매력적인 여행지는 아니었다. 그동안 가깝지도 않은지라 갈 일도 없었겠지만.


얼마 전부터 독일 역사를 보다 보니, 아헨이 그들의 역사에서 꽤 비중 있는 도시였단 걸 깨닫는다. 이는 그 유명한 이곳의 성당과도 연관이 있다.


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카롤링거 왕조의 프랑크 왕국의 황제였던 샤를마뉴. 그는 이곳 아헨에서 대관식을 하게 되는데, 왜 하필이면 그의 넓디넓은 땅 중에서 이곳에서 본인의 대관식을 진행했을까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다. 이는 그도 옛 로마인처럼 온천을 좋아했는데, 이곳이 알고 보니 로마 때부터 꽤 유명한 온천이 있던 곳이었다는 사실. 그래서 자주 방문했다고. 그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지만, 이것이 꽤 설득력 있는 논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헨에 도착한다. 인근 대도시인 뒤셀도르프와 쾰른과는 기차로 한 시간 정도의 거리. 인구는 30만 남짓. 아헨이 속해있는 NRW (Nordrhine-Westfalen), 이 주가 워낙 산업이 발달한 지역이라 큰 도시도 많고, 아무래도 소득수준이 높은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국경이기도 하니 살기에 좋은 곳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생각보다 도시 내에 세련된 상점은 거의 없다. 여기에 있는 사람은 아마도 쾰른이나 뒤셀도르프에서 현대적인 문화생활을 즐기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 마치 서울의 위성도시들처럼.


한편 구시가지는 정말 중세에 멈춰 있는 느낌이다. 웅장한 성당과 시청 건물을 중심으로 형성된 구시가지, 골목길 하나하나에는 그 역사가 느껴진다. 몇몇 장소에는 독일에서 제일 오래된 커피집이라는 설명도 있고, 또 어떤 곳에는 벨기에와 국경을 접한 탓인지 트라피스트 수도원 맥주를 비롯한 벨기에 맥주, Chimay, Duvel 등을 파는 곳도 있었다.

그럼 이제 대성당의 역사를 알아본다. 당시 서부유럽을 제패했던 샤를마뉴는 이곳 아헨에 로마의 라테라노 성당과 규모, 화려함을 견줄만한 성당을 지을 것을 유언으로 남긴다. 성당이 완공되고 그의 무덤이 꽤 오랜 기간 이곳에 위치하기도 했다. 유럽 세계의 시스템을 구축한 로마 황제의 명맥을 잇는 자로 교황에게 선출된 위대한, 샤를마뉴가 대관식을 올렸던 장소였기에, 그의 후계자들이었던 ‘독일 왕국’의 왕, 신성로마황제들은 이곳에서 대관식을 하게 된다. 행정적인 대관식은 성당 바로 반대편에 있는 시청 건물에서, 그리고 대관식 미사 등은 성당에서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명맥이 그러고 끊어졌는데 이후 유럽 대륙을 제패한 나폴레옹이 이를 모티브로 삼아 이곳에서 대관식을 하기도 했다. 역사를 좋아했다는 그가 정통성을 더욱 세우려고 했던 정치적인 쇼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이런 이유로, 중세 당시 사람들의 순례 장소로도 이곳은 유명했다. 이를 Aachener Heiligtumsfahrt라고 했는데, 그 순례 장소가 예루살렘, 로마, 산티아고 순례길과 견줄 정도였으니 그 역사적인 가치는 어마어마했다고 볼 수 있겠다.


안타깝게도 외관상으로는 어마어마한 성당 내부 모두를 관람하는 건 제한되어 있었다. 로마의 베드로 성당, 피렌체의 두오모의 쿠폴라를 올라갈 수 있는 것과는 대비된다. 돈을 내고서라도 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유서 깊은 시청 건물도 현재 리모델링 중으로 1층 밖에 관람할 수 없었다.

각설. 로마 때부터 온천으로 유명하기도 했지만, 결과론적으로 이 도시는 최초의 신성로마 황제, 샤를마뉴에 의한 도시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런 이유로 그에 대한 박물관은 물론이고 시청과 성당 사이에 있는 광장마저도 샤를마뉴 광장이다. 그의 뿌리를 기려 샤를마뉴 상도 수여하는데 메르켈 전 총리도 이를 받았었다. 유럽 내 유럽통합,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 등에 이바지한 이에게 수여한다고 하는데, 이교도들에게 가톨릭 개종을 명목으로 작센족을 비롯한 독일의 부족들을 처참히 살해한 그에 대한 평가가 1200여년이 지나 평화, 인권의 상징이 된다는 게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해본다. 결국 역사는 승리자들의 역사라고 하지 않는가. 현대를 살아가는 악한 이들이 나중에 어떤 이름으로 기억될지 씁쓸하기도 하다. 그래도 적어도 샤를마뉴는 유럽통합만큼은 이룬 이는 맞으니 그렇다고 생각한다.

시내에서 500m 정도 거리에 언급한 아헨공대도 위치했는데,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 둘러보지 못하고 돌아갔다. 사진으로 보니 역사가 느껴지는 건물이 있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건물에는 공대 건물스럽게 세련되게 생겼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내가 다녔던 곳과는 달리 삭막하고 환경을 고려한 많은 시도는 전무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 점. 그게 독일 내에서도 기존 산업이 있는 곳에는 당대에 살아가는 경제적인 고려사항이 미래를 생각한 시도보다 앞서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나의 지향점엔 지금 살고 있는 곳이 맞다는 강한 확신을 갖고 돌아온다.


1박 2일동안 뒤셀도르프에서 반나절, 아헨에서 하루, 쾰른에서 잠시 머물며 돌아오는데, 먹을 것 많고, 쇼핑할 것이 많은 대도시에서의 삶이 잠시 즐거우면서도 이곳에 도착해 저 멀리 보이는 산, 자연을 보며 이곳에서 마음의 평안함을 느낀다. 이게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명당이자 택리지에서 이야기하는 사대부가 살고자 하는 곳, ‘사대부가거처(士大夫可居處)’가 아니겠는가 싶은 생각을 해본다. 며칠 전 독일 친구가 본인들도 자연이 많은 곳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을 넘어, 그 땅에 좋은 기운을 느낀다고 하니, 이 이야기를 전해줬다. 동양의 관점을 꼭 우리만 느끼는 게 아니라 그들도 느끼니 내가 이곳을 올 때 모든 독일인이 독일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이라고 하지 않았겠는가 싶은 생각을 한다.


2주간의 긴 연휴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연말연시를 이렇게 보내는 게 두 번째. 이제는 이들의 삶의 방식, 그 리듬에 몸과 마음이 적응해가는 듯하다. 정말 잘 쉰만큼 새로 시작할 2023년에 더 뜻깊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신발끈을 다시 조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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