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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독 바다청년 Nov 02. 2023

독일에서 대한민국 해군을 만나다

나는 2012년 해군사관학교에 입교하여, 4년간의 생도 생활을 마치고 졸업했다. 졸업 전, 생도들은 군함을 타고 마지막 훈련을 나서는데 이것을 순항훈련이라고 한다. 매년 순항훈련 코스는 바뀌는데, 2015년엔 운이 좋게도 세계일주를 하였다. 그 코스는 다음과 같다.


진해 출발 – 중국 상하이 – 태국 사타힙 – 인도 첸나이 – 사우디아라비아 제다 – 수에즈 운하를 거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 터키 이즈미르 – 이탈리아 치비타베키아 (로마 근처) - 스페인 바르셀로나 – 프랑스 셸부르 – 네덜란드 로테르담 – 영국 포츠머스 – 캐나다 몬트리올 – 미국 뉴욕 – 콜롬비아 카르타헤나 - 파나마 운하를 거쳐 멕시코 아카풀코 – 하와이 – 다시 진해.


총 130여일의 기간 중 90여일을 항해했고, 40일을 정박했다.


당시엔 이런 특혜를 누리는 것이 좋으면서도 힘들었다. 130일 넘게 배에서 20명 남짓 비좁은 곳에서 씻고 자는 것뿐만 아니라 장교가 되기 위한 교육훈련을 받는 과정은 정말 고됐다. 더불어 정박지에서 극히 제한된 자유는 젊은 나를 속박하기에 충분했다. 아침에 외출 허가를 받는다 하더라도 저녁엔 돌아와야 했고, 대부분의 관광객은 여행지에서 너무나도 자유롭지만 우리는 많은 순간 제복을 입고 외출했기에 우리의 행동 제약은 굉장히 컸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지금엔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경험이자 나의 시야를 넓히고 내가 외국으로 나오겠다는 도전을 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음은 틀림없다.




8년이 지났다.

내가 5년 간의 해군 장교로서의 복무를 마치고 독일로 떠나 학업을 시작한 지 2년이 되었다. 한국 해군은 지금으로부터 3달 전 진해에서 출발해 태평양, 대서양을 거쳐 유럽 대륙, 독일 함부르크에 도착했다. 8년 전 순항훈련전단의 일원으로 세계를 누볐던 내가 교민이 되어 이곳에 함께하는 게 감회가 새롭다.


항구를 향해 걸어가는 길이 내가 마치 정박 기간 중 짧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처럼 느껴진다. 순간 더 많은 세상을 보고 싶지만 자유롭지 못했던 나의 젊었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거기엔 8년 전 나와 같은 길을 걷는 후배 생도들이 있었다. 4년간의 생도생활 중 마지막 훈련으로 이곳에 온 그들은 참 앳되고 젊다. 재밌는 건 모두들 본인이 4학년 생도이기 때문에 이미 많이 컸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이번 훈련에는 안타깝게도 나의 동기는 참가하지 않았고, 대신 당시 1학년 생도였던 나의 분대장 선배였던 4학년 선배가 훈련에 함께 참여했다. 선배가 벌써 장교 생활이 11년차이니, 소령 계급장을 달고 있고, 100여명이 타는 함정에서 세 번째 위치로 근무하고 있다. 세월이 참 무색하다.




해군을 보러 함부르크까지 최초로 여행을 계획하던 몇 달 전쯤엔 생도들에게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직접 만나서는 그런 이야기를 할 기회가 없었다. 그들이 궁금한 것과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게 달랐기 때문이랄까. 후배들이 내게 했던 이야기는 이 정도밖에 없다.


“혹시 호칭을 선배님이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선배님은 순항훈련 중에 제일 좋았던 기항지가 어디셨습니까?”

“선배님은 생도 때 전공이 혹시 독일어과섰습니까 ?”


무언가 가능하다면 더 많은 걸 주고 싶고 필요하다면 조언하고 싶었는데, 어쩌면 전역하고 유학을 오는 게 그들에겐 별로 와닿는 길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연하게도 그들에겐 왜 내가 독일에 왔는지는 궁금한 일이 아닐 테다. 그보다는 순항훈련을 잘 마치고 졸업 후에 장교로서의 삶이 더욱 궁금할 테다. 어쩌면 당연하고 더 좋은 일이다. 해군, 해병대 장교로서의 생활을 더 잘해나갈 수 있다면.


마지막으로 젊은 날에 많은 혜택을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그 혜택만큼 임관하여 너무나도 어린 나이에 막중한 책임을 지고 살아오기도 했다. 부디 생도들이 건강하게 훈련을 마치고 장교가 되어 우리 해군, 해병대를 잘 이끌어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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