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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독 바다청년 Jan 02. 2022

집안의 경사

임인년. 새해가 밝았다.


긴 연휴라고 다들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학생들을 보며, 나도 고향 생각을 많이 했는데, 집안에 경사가 많다. 형은 불과 어제 전도유망한 업계로 인사이동이 결정되었다. 희망회로를 돌리자면 수년 내로 형이 해외주재원이 되어, 같은 유럽 대륙에서, 내 쪼들리는 유학 생활의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면 좋겠단 생각도 해본다.


또, 불과 몇 시간 전, 나는 삼촌이 되었다. 감격스러운 일이다. 내 자식이 나올 때면 더 끔찍할까? 아버지가 왜 매순간 ‘내 새끼.’ 하는지 생각이 들었다. 재밌는 건 올해가 호랑이의 해인지라, 새로 태어난 아기가 아버지와 띠동갑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어머, 아버지가 올해 환갑이다. 참 시간이 빠르다. 한편 아버지 은퇴가 얼마 남지 않았단 생각이 든다. 나도 조만간 연애 사업에 결실을 보아야 하는지 생각해본다.


그나저나 형이 3년 전, 결혼한다고 했을 때도 ‘드디어 미쳤나?’ 싶었는데, 아버지가 되었다니 믿을 수 없다. 하긴, 이미 장가 간 선배, 친구들이 꽤 있는 데다, 이미 돌이 지난 아버지인 친구도 있으니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닌지도 모른다. 그래. 나 또한 훌륭한 독일 삼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단 생각이 든다.


오늘 느지막이 타지에서 한국인 친구 덕에 떡국을 먹었다. 내가 만드는 것보다 맛도, 모양도 훨씬 훌륭하다. 이 친구에게 요리 잘 못한다고 매번 쿠사리 먹는데, 오늘부로, 이를 인정하기로 했다. 그나저나 친구들은 다 서른인데, 서른이라니... 이 또한 믿을 수 없다. 다만, 이곳에서 나는 2월까지 스물일곱이니 낫다고 생각해본다.


휴일인지라,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아서 저녁은 친구에게 받은 삼겹살을 구워 먹으려고 했는데, 독일 친구가 고향에서 돌아와 내게 쿠키를 가져다주며, 이태리 피자를 시켜준다고 한다. 이 친구는 내일 이태리로 스키 타러 간다고, 혹시나 모를 접촉을 꺼리며, 다음에 돌아올 때 찐하게 한잔하자고 한다. 피자까지 배달해주어 고마워 당연히 값을 치르려고 했는데, 자기가 산다고 한다. 그동안 이 피자 값보다 내게 받은 게 많다고 덧붙이며... 눈물겨운 브로맨스다. 고마운 사람들 덕에 몸과 마음, 모두 따뜻한 연말연시다.


그나저나 오늘 세상에 나온 아기의 태명은 사슴이다. 이는 형과 형수님이 ‘사슴마을’ 아파트로 이사한 다음에 생명을 얻어서 그렇다. 사슴이의 이름은 태어난 날짜와 시간을 고려해 정해질 예정이다. 우리에게 이름, 사주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생각해본다. ‘원선’이란 이름이 무슨 뜻인지, 그리고 어떻게 지은 건지 물어봤던 친구들이 생각난다.


이곳에선 새해 인사로 ‘Guten Rutsch’라고 하는데, 직역하면 잘 미끄러지라는 뜻이다. 그 말인즉슨, 좋은 출발을 하라는 뜻이다. 정말 감사하게도 모든 게 순조롭게 미끄러져서 좋은 출발을 하였다.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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