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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독 바다청년 Mar 31. 2022

다시 연재할 독일유학일기

새옹지마

이사할 때 비가 오면 운이 좋다고들 한다. 실제로는 안 좋은 일이지만, 그렇게라도 이야기하며 위로하자는 의미일 테다. 액땜, 새옹지마도 같은 맥락이고, 안 좋은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자 하는 우리만의 사고방식이 아니겠는가.


한국에서 출발해 러시아 영공을 피해 빙빙 돌아 유럽에 도착하니 14시간 넘게 걸렸다. 집에서 출발한 시간부터 독일에 도착한 시간까지 따지면 만 24시간이 훌쩍 넘었다. 모두 대중교통을 타고 오기도 했지만, 역시 지구 반대편은 반대편이다. 돈 쪼들린다고 직항을 끊지 않은 나의 선택에 후회스럽기도 하지만, 돈도 안 버는데 조금이라도 아껴야 한다고 생각했었기에 다시 선택하게 되더라도 싼 비행기를 끊을 것 같다.


그 와중에 연결편을 놓쳐서 두 시간 넘게 공항에 있었다. 여기에서 하룻밤을 지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그다음 연결편이라도 있는 게 어디냐며 스스로 다독였다. 항공사에선 예정보다 늦은 도착 때문에, 보상 차원의 만원 가량의 바우처를 줬다. 자본주의, 돈으로 안 되는 게 없다.


네덜란드에 내려서, 환승하는데도 무슨 짐 검사를 빡빡하게 하는가 싶어 어처구니가 없었는데, 독일에 도착하니 여권 검사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고 이내 ‘유럽 내에서는 그런 게 없었지.’하고 깨닫는다. 독일에 도착하자마자 10분도 걸리지 않아 집, 시골로 가는 기차를 운 좋게 타고는 기분이 좋았다. 창밖을 보니 이곳도 개나리, 벚꽃이 펴있다. 한달 남짓 한 시간 동안 여기도 따뜻해졌구나 싶다.


한편, 역에서 내리고 돌아가는 길엔 비가 내린다. 이삿날에 비 내린다는 게 운이 좋다고 믿어보기로 한다.


반년 전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똑같은 기차를 타고 왔는데, 그때보다 한결 여유롭고 익숙해졌고, 심지어 좋다. 독일에 도착했는데도 집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 거다. 이렇게 점점 익숙해지다 보면, 독일에서가 아니라 한국에서 이방인이 되는 건 아닐까. …



오자마자 짐 풀고, 축구 하러 갔다. 비가 오는데도 하냐고 물으니, 당연한 걸 묻냐는 듯이 애들은 대답했다. 젊음이 좋은 걸까. 한 시간 반이 넘었는데도 계속해서 뛰어다니길래 언제 집에 가냐고 하니, 그제서야 마지막 골 하자고 해서 ‘그래. 이제야 집에 가는구나.’하고,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멀리서 슛하니, 운 좋게 들어가서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대전 집에서 오후 4시쫌 넘어서 출발해서 한국 시간으로 그다음날 아홉시, 열시쯤 도착했으니 30시간을 이동해서 오자마자 축구를 하니,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았다. 손흥민 선수가 맨날 이런 기분이려나. 뭐 그렇게 집에 와서 라면 끓여 먹고 뻗었더니 다음 날 아침 일어났다. 결과론적으로, 조금은 의도하기도 했지만, 시차적응이랄 게 따로 없게 되었다.


오늘은 미적대고 일어나 뭐 먹을까 고민하는데 또 당장 열흘 넘게 떠날 몸이라 쓰레기 만드는게 부담스러워 짜파게티를 끓여 먹었다. 그러고는 오늘 떠날 기차부터, 새벽에 공항까지 이동편, 내일 이태리로 갈 비행기 탑승권까지 하나하나 검토하고, 짐을 꾸리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 와중에 오늘부터 지원할 수 있는 대학에 다시 원서까지 쓰고, 빈으로 떠난 기차에 있다. 조금은 정신 없기도 하지만, 아무런 몸에 이상도 없이 이렇게 훌쩍 떠날 수 있어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이곳은 내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날씨가 계속 좋았는데 오고 나선 계속 흐리고 비가 오락가락 한다.


오랜만에 독일 기차를 타고 떠나니 좋다. 매번 서쪽으로 가는 기차만 탔는데, 동쪽으로 가는 기차는 처음이다. 이렇게 도나우 강을 따라 오스트리아로 가는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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