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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독 바다청년 Oct 18. 2021

바이에른 도시 답사기: 뉘른베르크

뉘른베르크

8년 전, 오랜 친구와 배낭여행을 떠났다. 프랑크푸르트에서 프라하로 가야했는데, 뉘른베르크가 환승지였다. 그 와중에 미리 사놓은 티켓이 없어져, 말다툼이 시작돼 서로 철천지원수가 될 뻔했지만, 낯선 땅 한복판에서 다시 화해했다. 그렇게 프라하까지 3~4시간 버스를 사이 좋게 타고 갔다.

자그마치 8년만. 뉘른베르크를 왔다. 그땐 뭐가 있는지도 몰랐지만, 사실 이곳은 바이에른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다. 볼 게 정말 많다. 수차례 와 볼 법하다

내가 사는 시골에서 한 번 갈아타 도착한 뉘른베르크. 이제 짬밥이 좀 차서 나을 줄 알았거늘, 역시나 익숙하지 않은 곳에선 헤매기 마련이다. 역 앞의 도로는 어찌나 복잡한지, 구글지도에서 안내하는 것과 별개로 목적지로 향하는 트램을 찾기가 쉽지 않다. 어찌어찌 도착한 목적지.

사실, 뉘른베르크는 Nationalsozialismus, 줄여서 나치가 세력을 키운 곳이다. 국가사회주의, 나치는 본인들의 뿌리인 이 도시에 엄청나게 많은 투자를 했다. 이곳을 우리나라에선 나치 전당대회장이라고 부른다. 이 아름답고 큰 호숫가에 연병장을 만들어 열병하고, 온갖 선전과 행사를 하는 건 물론이고, 전쟁포로를 수용하기도 했다.

역설적이게도 독일이 패망한 후, 연합국은 이곳에서 전범재판을 치렀다. 미군은 나치를 상징하는 기념물을 모두 폭파하고, 이 큰 부지를 본인들의 입맛대로 사용했다. 현재 이 장소 중 일부는 축구 구단의 홈구장, 귀가 찢어질 듯이 굉음을 내는 카레이싱 경기장, 또 공연장이 되었다.

전시회의 여러 설명 중 이 문구가 와닿는다.

“The Nazi regime used the rallies as a form of political event marketing to pursue key social aims. Nazism was not intended to be discussed or understood, but primarily to be experienced.”

토론하고, 이해하는 게 아니라 행동하게 만들었다는 점. 그런 광기가 나올 수 있었던 이유다. 이런 이유로, 68혁명 이후, 독일 학교에선 학생들에게 심지어 교사가 수업하는 것조차도 비판적인 사고로 들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이 비극적인 역사의 피해자 혹은 가해자의 피를 물려받은 이 사람들은 이곳에서 무슨 생각을 할까.

모르긴 몰라도, 나는 이런 역사 속에서도 인종차별, 외국인에 대한 배타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그들이 안타깝다. 이곳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게 썩 순탄치만은 않다.

다시 뉘른베르크 시내로 돌아온다. 사대문 안의 서울처럼, 성곽 내 문이 있고, 이 안이 하나의 성처럼 이뤄져 있다.

사람이 정말 많다. 대도시라는 걸 알긴 했다만,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다.

어찌 됐든 고요한 시골이 지겨워 도시로 왔지만, 이 정신 없는 곳이 다시 질려 시골이 그리워진다. 사람은 간사하다. 볼 것도 많고, 할 것도 많지만, 거의 모든 걸 누릴 수 있는 한적함이 문득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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