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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독 바다청년 May 29. 2022

독일 여행기: Worms

아버지 친구 가족과의 재회

Worms. 아버지 친구와의 재회


어머니의 날엔 엄마가 가족들을 위해 요리를 하고, 아버지의 날에 아버지는 술 마시러 나간다는 농담을 시작으로, 사흘 간 많은 이야기를 했다.


이사는 어떻게 하냐며, 흔쾌히 본인의 차를 가져가서 이사하라고 했다. 나는 친구한테 부탁하긴 했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감사하다고 했다.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가는 길에 독일 로드 트립을 해도 될듯하다.


에너지전환 이야기도 다시 나눴다. 그동안 공부한 것과 앞으로 하고 싶은 공부를 이야기하며, 나는 알면 알수록 이게 불가능하단 걸 통계 수치로 느낀다고 했는데, 본인도 이미 늦었다고, 불가능할 거라고 했다. 독일에서도 다시 원전을 가동할 수밖에 없다는 비관적인 이야기도 들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정말 보수적이어서 이것이 제일 큰 걸림돌이라고 했다. 이처럼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으니, 우린 좋은 시절을 그래도 즐겼는데, 이 아이의 세대는 안 좋아질 것이 너무 분명해 안타깝다는 말로 이야기를 맺는다.


아이에게 한글을 알려줬다. 아직 알파벳을 배운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이에게 한글을 알려주는 게 참 웃기다. 아버지 친구는 내게 그리스 알파벳을 알려줬다. 수학, 물리 시간에 많이 보는 글자다.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시그마 등등. 서양 문명의 뿌리가 그리스였다는 걸 새삼 느낀다.


아이의 승부욕은 얼마나 강한지, 이길 때까지 계속 하자고 하고, 이겼더니 신이 나서, 부모님이 듣는 노래 Jeff Beck의 Loser에서 나오는, I'm loser baby의 구절을 끝없이 반복하며 나를 놀린다. 나도 어릴 때 저렇게 집요하고 끝없이 똑같은 소리를 했었지 싶다.


학교 생활을 시작한 지 반년이 조금 지난 시점. 아이들끼리 나쁜 말도 벌써부터 배우는 듯하다. 이런저런 아이의 이야기, 행동을 보니 20여년 전 나도 저랬었지... 싶을 때가 있다. 어느 순간 아이와 놀아주는 게 피곤하다고 느꼈는데, 이처럼 부모가 되는 게 참 힘든 일이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Spectaculum. 중세기사, 평민부터, 대장장이, 로마군, 해적, 오크 분장까지. 온갖 코스튬의 향연이었다. 중세형식의 텐트를 치고, 불을 피우고, 끝없이 맥주를 마신다. 이 축제를 위해 수많은 이들이 이 도시를 찾았다. 남녀노소, 가족 단위도 많은 게 특이한 점이랄까.


Worms, 조그만 도시다. 내가 사는 곳과 큰 차이가 없다고나 할까. 그래도 이곳엔 흥미로운 역사가 꽤 있다. 일례로, 가톨릭에 반기를 들었던 루터에 대한 일종의 종교 재판이 이뤄진 곳이다. 곳곳의 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데,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대성당과 바로 길 건너 그의 박물관을 보면, 역사에는 참 많은 아이러니가 있음을 생각한다. 또, 유럽 내 제일 오래된 유대인 묘지가 있는데, 10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어쩌다가 그들은 이렇게 뭉쳐서 살았을까 싶으면서, 지금의 아시아인들도 그런 경향이 있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2천년 전, 본인들의 나라가 없어지고 뿔뿔이 흩어지면서부터 살아남기 위해 뭉치게 됐나 싶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Rhine 강변도 걸어본다. 우리집 앞에 있는 강과는 색이 조금 다른 것처럼 느껴진다. 언젠가 라인강을 따라 자전거 투어를 하면, 이곳에서부터 만하임 혹은 마인츠, 멀리는 코블렌츠, 쾰른까지도 갈 수 있겠구나 싶다. 실제로 실행에 옮길지는 미지수다.


있는 동안 돈을 안 썼는데, 감사하고도 죄송한 마음에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에 한국 음식을 했다. 어른들은 맛있게 잘 먹었는데, 아이는 한 입만 대고 안 먹었는데, 원래 호박과 버섯을 싫어해서 먹지조차 않는다고. 아이 키우기 참 힘들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이가 들면 바뀌겠거니 했다. 나와 아버지 친구랑 스무살 차이, 아이와 나도 스무살 차이. 10여년이 지났을 땐, 내가 이 친구에게 넉넉한 한국인 삼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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