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봄, 환각의 시작_나무

나무를 사랑하시는 분들에게

by 유선미

괜찮다가도 사무치게 보고 싶은 날들이 있다. 나무가 흔들리고 세상은 초록빛 환상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시간은 북풍과 함께 오래전에 멈추었고, 글을 쓰다가 너를 또다시 만나기 위해 꿈속에 잠긴다.

사진 출처: 핀터레스트

봄, 환각의 시작


네 앞에서 나는 한없이 녹아내리다가 형체도 남지 않지. 그래도 어쩔 수 없어. 네가 좋으니까. 바람에 의미 없이 흔들리는 잎이라는 걸 알지만, 그 초록의 나부낌이 내 삶에 커다란 파동이 되어 번져가고, 파동은 다시 나를 네 그늘 아래로 데려가.


네가 행복한 만큼 마음껏 숨 쉬며 그곳에 있어 줘. 녹음이 되었다가, 꽃을 피우며, 다시 낙엽으로 떨어지고, 그리고 새하얀 눈을 맞으면서 우리는 시간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거야.


있는 그대로의 너를, 모든 계절 속의 너를 사랑해.


봄날은 자꾸만 나를 '사랑' 앞에 세워 놓는다. 멀리 서 있는 나무들을 바라본다. 돌아오지 않은 사람 대신 초록의 새싹들이 고개를 들고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묵묵히 보여준다.




나무는 내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존재이자, 사랑하는 물상이며, 가장 거대한 환각의 통로다. 봄이 되면, 그가 주는 파동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초록색 환상 속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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