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라는 쉬운 길을 선택하다..
공존은 인간이 가장 오래도록 속여온 이상(理想)이다.
인류는 평화의 언어를 노래하며 문명을 세웠지만,
그 문명의 심장은 언제나 증오로 뛰었다.
서로를 이해하자고 외치던 종교는 이단을 불태웠고,
인권을 외치던 제국은 약소국을 노예로 삼았다.
공존은 인간이 믿고 싶었던 허상이었고,
인간이 끝내 감당하지 못한 진실이었다.
그들은 단지 자신이 만든 질서 안에서의 평화,
즉 타인의 침묵으로 유지되는 평화를 원했을 뿐이다.
인간은 서로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그 사랑의 뿌리는 지배다.
사랑은 언제나 동화를 요구한다.
“너를 이해한다”는 말 속에는
“나처럼 되라”는 명령이 숨어 있다.
그래서 인간의 사랑은 공존이 아니라 자기 복제의 과정이다.
타인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타인을 자신의 세계로 편입시켜야 안도한다.
그렇기에 인간은 타인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미워한다.
자기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타인은 곧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해의 부재’가 아닌,
‘이해의 과잉’이 만들어낸 비극이다.
공존은 경계를 허무는 행위이지만,
인간의 자아는 경계 위에서 존재한다.
나는 ‘너’와 다를 때만 ‘나’일 수 있다.
따라서 공존의 완성은 자아의 소멸을 의미한다.
그래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공존의 완성 직전에서 방향을 틀어버린다.
그들은 싸움을 원하지 않지만,
평화 또한 끝까지 원하지 않는다.
평화는 너무 조용하고,
그 침묵 속에서 인간은 자기의 허무를 본다.
전쟁은 적어도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인간은 평화를 욕망하면서도
증오를 포기하지 못한다.
그들의 혐오는 생존의 증거이자, 존재의 연료다.
도덕은 이 구조를 정당화한다.
도덕은 공존의 언어를 흉내 내지만,
그 실체는 선악의 분리다.
누군가를 악이라 규정해야만 나의 선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평화의 이름으로
끊임없이 누군가를 도려낸다.
‘우리는 선하다’는 선언이 곧 전쟁의 선전포고가 된다.
이것이 도덕의 잔혹한 본질이다.
인간은 악을 혐오한 것이 아니라,
자신과 다른 선을 증오했다.
선은 언제나 상대를 필요로 한다.
그것이 없다면 자신이 무엇인지 정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은 공존이 아니라, 비교를 통해 정체성을 유지한다.
평화는 자아를 부식시키고, 전쟁은 자아를 강화한다.
그래서 인류는 도덕을 믿는 척하면서
본능적으로 폭력을 택한다.
공존은 높은 이성의 산물이지만,
인간은 이성보다 감정을 믿는다.
감정은 이해보다 빠르고, 판단보다 단순하다.
증오는 생각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공감은 에너지를 소모하지만, 혐오는 쾌감을 준다.
이 단순한 메커니즘이 수천 년간 문명을 이끌었다.
도시는 발전했고, 신념은 세련되었지만,
인간의 본질은 원시적이었다.
그들은 말로는 ‘함께’라고 외치면서도,
내면에서는 언제나 ‘나만’이라고 속삭였다.
공존의 언어는 문명화되었으나,
공존의 의지는 진화하지 않았다.
인간이 공존을 포기한 이유는 악함 때문이 아니다.
그건 오히려 진실을 견디지 못한 연약함 때문이다.
공존은 타인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고,
자신의 욕망을 절제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감정보다 이익을, 이해보다 승리를 택한다.
그들은 ‘모두가 옳다’는 세상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누군가는 반드시 틀려야 한다.
그래야 나의 옳음이 유지된다.
이것이 인간이 사랑을 말하면서도
미움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다.
그리고 마침내 인간은 신의 자리를 차지했다.
창조와 판단의 권한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며,
타인의 생존을 ‘선택’하고, ‘심판’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 결과, 모두가 신이 된 세상에서
지옥은 더 이상 저 아래 있지 않았다.
바로 인간 안에 있었다.
인류는 타락하지 않았다.
결국 인간은 공존을 원하면서도
공존을 감당하지 못한 종족이다.
그들의 사랑은 항상 조건적이었고,
그들의 평화는 늘 누군가의 침묵 위에 세워졌다.
그들이 꿈꾸던 유토피아는
실상 서로 다른 신념이 만든 감옥이었다.
공존은 인간이 가장 가까이서 보고,
가장 멀리 도망친 이상이다.
이상은 늘 아름답지만, 인간은 아름다움을 감당할 수 없었다.
이 이야기는 거시적으로 본다면,
인간은 왜 공존과 평화를 선택하지 않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선택했을까?' 이다.
하지만 확대하여 본다면 우리들이 항상 노출되어 있는
미디어와 일상생활에서도 흔히 이런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결국 인간은 전쟁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평화를 감당할 용기를 잃은 것이다.
평화란 단순히 총을 내려놓는 행위가 아니다.
전쟁은 이유가 필요하지만, 평화는 책임을 요구한다.
그것은 자신의 분노를 마주보고,
타인의 그림자를 끌어안는 고통의 과정이다.
그러나 인간은 고통 없는 선을 원했고,
그 순간 평화는 불가능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