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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햇살씨 Oct 19. 2021

낮은 마음 기억하며 살기

# 1. 거부


점심시간, 자리에 있는 전화기로 전화가 왔다.



네!


선생님~! 보건실이에요!


네~!


선생님 반 아이들이 보건실 청소잖아요.
근데 안 온 지가 꽤 되었어요.



아이코! 그래요?
진작 말씀해주시지..
그럼 보냈을 텐데요..
죄송해요.


아니요, 선생님. 근데요. 
그 아이들이 오면 제가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요. 
그냥 제가 청소할게요. 아이들 보내지 말아주세요.


네? 아이쿠. 죄송해서 어떡해요.
이 아이들이, 청소구역을 자신들이 선택했거든요.
억지로 시키면, 자기가 선택한 곳 아니라고 안 하거든요.
그래서 그 아이들이 보건실을 택해서 어쩔 수 없이 보냈는데.
사실, 이 아이들은 어디를 해도 잘 안 할 아이들이에요. (ㅠ.ㅠ)


그러니깐요..
선생님 너무 고생 많으시네요.
그냥, 그녀석들 냅두세요.



허허허헛.....네...
선생님..죄송해요.....(ㅠ.ㅠ)  
  


전화를 끊고 나니 웃음밖에 안 나왔다. 


녀석들이 청소하러 가서 오히려 선생님을 더 스트레스 받게 만든 상황이 안 그래도 눈에 빤히 그려졌다. 교실 쓸기를 하던 요 녀석들 때문에 나도 뒷목을 잡은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이었던가. 


그래도 끝까지 청소를 시키니 교실을 탈출(?)하여 보건실을 택했던 건데, 이 녀석들의 탈출이 성공한 셈이다. 학년실 샘들이 듣더니 배꼽이 빠진다.


0반 선생님도, 특별실에 그 반의 말썽꾸러기 2명을 보냈더니, 담당 선생님이 몇 번이나 청소하는 아이들 바꾸어달라고 하셨단다. 근데 0반 선생님은 그 선생님께 이렇게 사정했단다.


선생님~! 
제발 그 아이들 좀 거둬주세요. 
청소시간 만이라도 제가
숨 좀 쉴 수 있게요..
부탁해요....



두 손을 모으고 빌면서 사정을 하셨다는 것을 다시 몸으로 보여주시는데 모두 깔깔껄껄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청소 시키기도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 2. 새해를 맞이하는 자세

지난 해를 돌이켜보니 이보다 더한 일들도 많았다. 


수업 중에 떠들어서 교과 선생님께서 “그렇게 떠들 거면 나가”라고 하시니 “네!”하고 복도에 나가서 앉아서 놀았던  두 녀석들. 


늘 날을 세우고 소리를 질러대는가 하면 어느 날은 혼자 미친듯이 깔깔대고 웃으며 큰 소리로 노래를 불러댔던 K.


반장이면서 주번이었던 녀석에게 앞문 열쇠를 가져와서 문 좀 열라고 했더니 자기는 바빠서 할 수 없다며 버티고선, 착한 아이가 모범상 받는 것을 보고 착한 게 아니라 ‘호구’라고 했던 일이라든지, 


날마다 두더지를 잡는 심정이었다. 


어느 날은 웬일로 조용히 지나간다 싶으면 종례시간에 일이 터져 속이 뒤집어졌고, 또 어느 날은 아침 자습시간부터 얼굴에 열이 오르는 날도 있었다.


나름대로 정성과 사랑을 쏟았던 K가 막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3주 동안 마음이 괴로웠다.


너무 잘해줘서 만만하게 본 것이었나, 어쩜 저렇게도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을까, 이런 아이들을 대하며 오랫동안 교사를 할 수 있을까. 16년 만에 처음으로 했던 고민이었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들을 겪으며 속으로 계속 마음속으로 물었다.


도대체, 이 아이들은 뭡니까. 
왜 이러지요? 
어쩜 이럴 수가 있나요?


내 손에 잡히지 않는 아이들과 날마다 실랑이를 하며 나는,  “겸손”을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름 카리스마가 있어서(?), 그동안 만났던 아이들은 말을 잘 들었다. 지금도 다른 반에서는 힘들지 않다. 수업도 할 만하고 문제아라 불릴 만한 아이들도 따로 불러 이야기를 하면 말을 탄다.


그런데...그런데! 


우리 반이, 글쎄 우리 반이 선생님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반이라니 도저히 내 안에서 용납이 되지 않았다. 


어떻게든 아이들을 잘 따르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수업도 즐겁게 할 수 있는 반, 긍정적인 에너지가 흐르는 반이 되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친구의 잘못을 일러바치기가 1등이요, 수업 중에도 대놓고 욕하며 큰소리로 싸우는가 하면 선생님들께 매서운 눈초리를 날리며 대드는 아이들에, 종이 울려도 교실에 들어가지 않는 아이들까지. 


한둘의 문제가 아니었다. 


잔소리와 칭찬, 그리고 협박까지 동원해가며 11월까지 지내오면서 그동안 내가 아이들을 잘 장악하고 수업한다며 스스로 뿌듯해했던 그 모든 것이 자만이요 오만이었음을 우리 반을 통해 처절하게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착한’ 아이들을 만난 ‘운 좋은’ 교사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으면서, 아이들에게 어쩔줄 몰라하는 선생님들을 보며 때때로, ‘왜 그러실까?’하고 섣부른 판단을 했던 지난날의 내 모습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렸다. 


모든 선생님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음을, 그리고 그 ‘다양한 모습’ 자체도 아이들에게는 소중한 ‘교육’의 일부라는 것을 그때 그 순간에는 알지 못했던 것이었다. 



이것을 깨닫는 것에 대한 대가는 너무 가혹했다. 아니, 나는 너무 가혹하다고 여기고 있으나 어쩌면 아직도 부족할지도 모른다.


교사로서 뭐든 잘해서 인정받고 칭찬받으며 ‘나’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조금 서툴더라도 힘들어하는 동료교사를 다독여주고 공감해주며 때론 같이 울어줄 수 있는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또한, 사랑하기 힘들고 받아들이기 버거운 아이들까지도 끝까지 품고 끝까지 사랑해야함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내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내안에 풍성한 사랑이 가득할 때, 그 사랑은 저절로 흘러내려감을.


새 학기, 새 학교는 또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까. 유독 힘들었던 한해를 보냈기에 올해가 빨리 지나가길 그 누구보다 간절히 바랐지만, 이 마음 하나는 잊지 않고 기억하고 싶다.


힘든 아이들 때문에 아팠던 마음고통스러웠던 마음가난해졌던 마음눈물로 가득했던 마음.


그 마음 기억하며 더 겸손한 모습으로 새해를 맞이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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