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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햇살씨 Oct 19. 2021

정말, 사랑했을까?

작년처럼 1년이 빨리 지나가길 기대하고 고대했던 적이 있었을까?


복도를 지나며, 마음속으로 ‘아. 정말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하고 되뇌었던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렇게나 기대하고 고대하던 12월도 끝나고, 1월은 딱 이틀 출근.


이제 이틀만 참으면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볍긴 했지만 그러면서도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다.


역시나 아이들은 쉽사리 변하지 않기에, 언제나 지각하는 녀석과, 전화도 안 받고 학교에 온 지 안 온지도 모르게 도망 다니는 K때문에 마지막 날까지 얼굴에 열이 올라오는 것을 경험해야 했다.


아이들이 예쁘면 사비를 털어서 맛있는 것을 더 많이 먹이고 싶었고, 좋은 것을 더 많이 주고 싶어서 시간을 내곤 했지만 작년처럼 인색했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지각비 모인게 달랑 3만 5천원. 처음엔 지각비를 모아서 학급문집을 내겠다고 했을때 아이들이 모두 동의해서 지각비를 모으기 시작했는데, 모둠일기 두 권을 아이들이 잃어버렸다.(이런 경험도 또 처음이었다.)


집에 가서 모둠일기 있는지 잘 살펴보고 가져오라고 그렇게 사정했으나 끝내 모둠일기는 나오지 않았고, 결국 문집은 내지 못하게 되었다.


한편으론 잘됐다 싶기도 했다. 이런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준들 고마워하겠나, 의미를 가질 수 있겠나 싶은 생각에 차라리 안 하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ㅠ.ㅠ)


반장과 부반장, 총무부장에게 이 지각비를 어떻게 의미 있게 쓸지 고민해보라고 했더니,



“쌤이 보태서 피자 사주시면 되겠네요!”

라고 말한다.



요즘 아이들이야 다 이렇긴 하지만, 어떻게 대놓고 이런 말을 하나 싶기도 하고 지각비를 끝까지 안 내고 버티는 두 녀석을 생각하면, 먹을 것을 다 같이 먹도록 사주는 것도 교육적이지 않을 것 같아 고민스러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아이들에게 ‘베풀기’가 싫었다. 내 안에 있는 어린 자아가 계속해서 속삭였다.


‘얘네들이 너를 1년 내내 얼마나 괴롭혔는데 먹을 걸 사줘? 아깝다 아까워.’


‘그냥, 나눠서 줘버려. 지각비 안 낸 아이들만 빼고.’


‘뭘 사줘봤자 고마워하지도 않을 애들이야.’   

  



다음날이 종업식인데, 고민하는 나를 보고 남편은 햄버거와 콜라를 사주라고 한다.




내가 왜?
싫어!



그러자 남편이 웃으며 말한다.





마지막인데,
그냥 먹여서 보내.



아, 진짜 싫어.



싫다고는 했지만, 남은 지각비를 처리하기도 애매하고, 어떻게든 쓰긴 해야겠고. 고민하다 밤 11시를 넘기니 피자집도 끝나버리고, 햄버거도 배달시간이 어중간해져버리고.


결국 맥도날드에 전화해서 아침 10시 40분에 찾으러 가기로 하고선 햄버거만 주문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남편이 물었다.




콜라 사러 가야하지 않아?




시계를 보니, 12시가 다 되어갔다.




아...싫어...귀찮아.
그냥 햄버거만 하나씩 물려서 보낼래.



에이, 그건 아니다. 목 메이잖아.



아냐. 목 메라고.
그냥 햄버거만 물려서 보낼 거야.

  


얼마나 유치하고, 유치하고 또 유치한 모습이었는지.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그동안 안 내리던 눈이 펑펑 내렸다. 아침 일찍 문을 여는 마트에 들러 콜라를 사서 출근하려고 했던 계획은 눈 때문에 지각할까봐 포기했다.


설상가상, 졸업식이 있는 날인데 눈까지 와서 도로는 엉망이었다. 도저히 쉬는 시간 10분 안에 맥도날드에 갈 상황이 안 되었다.


결국, 남편님에게 SOS를 쳤더니, 햄버거와 (말하지 않은) 콜라까지 사들고 왔다.   

  

대청소를 마치고, 햄버거와 콜라가 교실에 들어오니 평소에도 말처럼 복도를 누비고 다니던 S군은 천정에 머리가 닿도록 팔짝팔짝 뛰어댔다. 지각비 2만원을 안 내고 버티는 녀석이 말이다.


 (ㅡ.ㅡ^)


뒤끝 있는 담임인 나는,


“너! 양심이 있니?
먹고 싶어?”




네!



하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마치 유치원생처럼.



그럼, 뒷정리는
S 네가 깔끔하게 하기.
알겠지?


S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정리하는 모습은 처음 봤다. (^^;)



대부분의 아이들이 열심히 신나게 먹던 와중에도 햄버거가 무슨 햄버거냐, 아—그 햄버거 열라 맛없는데-하고 투덜거리면서도 끝까지 먹던 H양의 얼굴이 또 떠오른다.


어쨌거나, 아이들을 그렇게 마지막으로 햄버거를 먹여서 보내놓고. ‘이제야 다 끝났다. 정말로 해방이다!’ 라는 생각에 홀가분해야 하지만...홀가분하지 않았다.


왜 마음이 그리 편치 않았을까.



마지막 날까지 도망 다니고 핸드폰 안 내고 숨어있던 K때문이었을까.


쓰레기통 청소하던 N이 화난다며 쓰레기통을 엎어버려서였을까.



쌤!
내년에 3학년 따라 올라와요?



하고 묻는 녀석에게,



네가 이렇게 말을 안 듣는데 올라가겠니?


라고 진심어린 답을 해버려서였을까.     



빈 교실을 둘러보니 평소에 사고치고 말썽부려서 부대꼈던 아이들이 아닌, 조용히 자리를 지켰던 아이들의 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아. 이 아이들. 어쩜 좋아...’     


폭탄(?)들이 잔뜩 있어서 두더지 잡기하며 1년을 ‘버티며’ 살았던 내 모습과  반이 어떻든지, 언제나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며 조용히 담임쌤의 사랑과 관심을 구했을 또 다른 아이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돌이켜보니, 말썽대장들에게 더 깊이 다가가서 그 아이들의 마음을 깊이 만져주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평범한 아이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주지도 못했던 것 같다.


그저, 힘든 아이들이 많아 내가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하며 1년을 보내고 말았던 것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어 부끄럽고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아이들 몇몇이 문자를 보내왔다.     








아이들의 문자를 받으니, 지난 1년의 삶이 또다시 머릿속을 스친다.


이렇게 1년이 지나면, 더 사랑하지 못했던 것이 마음 아픈데, 왜 그 순간순간에는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일까.     


이제, 또 새로운 학교에서 새로운 아이들을 만난다. 이 아이들은 또 어떤 색깔로 내게 다가올까?



모쪼록, 내가 작년보다는 더 성숙한 모습으로, 더 많은 사랑을 주는 교사로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으면 좋겠다.      


다음 문장을 기억하며 살고 싶다.     


사람은 똑같다. 서로 위로하고 사랑하며 산다. 우리가 가진 능력이 어떠하든지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서로에게 서로가 되어주어야 한다. 서로의 마음을 듣고 감싸주는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위대한 능력을 갖고 있어도 소용없다. 아이에게, 서로에게 ‘서로’가 되어주어야 한다.

-『선생님의 숨바꼭질』권일한. p.96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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