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림과 동시에 복도에 소리를 지르며 미친듯이 뛰는 커다란 몸집의 두 남학생.
툭하면 욱하는, 목소리 큰 여학생.
걸핏하면 욕하고 화내며 선생님들께 반항하는 K에,
그런 K와 수업시간에도 욕을 하면서 싸움을 일삼는 G.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혼나는 와중에도 떠들고 웃고 노래하는 여학생의 무리와, 여기저기에서 자기의 존재도 알아봐 달라며 소리지르고 떠드는 남학생들까지.
교직 16년차에 만난,
최고의(?!) 아이들이었다.
한해가 빨리 가기를 이토록 바랐던 적이 있었던가 싶을 만큼. 간절히 12월을 기다리고 고대한 와중에 드디어 12월은 왔다.
오늘도, 지각을 한 아이들이 교무실에 와서 시를 뽑아서 들고 간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 와서는 큰 목소리로, (기억이 안 나면 욕도 해가면서) 시를 외우고 간다.
어제 점심시간에도 한 녀석이 시를 한 수 암송하고 나가니, 한 선생님이 물으셨다.
"외우라고 한다고 다 와서 외워요? 쌤반이?"
"네! 곧잘 외워요. 안 외우면 남기니깐."
"오~그렇군요."
시 외우기를 전파(?)하고 싶은 마음에 한마디 더 했다.
"시 외우기가 정말 은근히 좋아요. 애들이 와서 시를 외우는 동안 눈도 마주치고, 말 한마디 안 하고 순한 애들하고 한마디 할 수도 있고 말이죠."
내 말에, 저쪽에 앉아계시던 과학샘이 말했다.
"사랑하시는군요."
순간.
멈칫. 했다.
"핫핫핫!!! 사랑인가요? 애증이 아닐까요? 헛헛헛!"
이렇게 지난하고 고통스러웠던 한 해를 보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온 것은 순간순간 아이들이 '반짝'하고 예뻐보이는 때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말도 안 듣고, 고집부리고, 반항하고, 때론 무시하던 아이들이 어느 순간에는 다정하게 와서 안기는가 하면, 또 어느 순간에는 귀여운 척(?) 애교부리는 모습 때문에, 억지로라도 웃게되었던 숱한 순간들의 힘으로 살아온 것은 아니었던가.
미움이 컸던 만큼, 사랑의 마음도 자라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늘 혼내면서도,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안의 깊은 곳에서 나오는 아이의 삶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났던 것 또한 사랑의 일부가 아니었을까.
미워죽겠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더 사랑하지 못하는 내가 미웠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제 그토록 기대하고 고대하던 올해의 끝이 3주 남았다.
그래서일까,
아이들을 바라보는 내 눈에 미소가 실리는 것은.
아니면.
이별을 앞둔 자의 넉넉해진 마음 탓인 걸까.
날마다 고민과 한숨을, 때론 두려움과 절망감을, 그리고 간간히 미소를 안겨주었던 이 아이들.
사랑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