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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햇살씨 Apr 27. 2022

열람실의 추억②

지금 생각해보면, 내 생애 가장 열심히 공부했던 시기가 대학 4학년, 그리고 졸업 후의 8월부터 12월까지가 아니었나 싶다.


수업시간에 깊이 배우지 못했던 전공 지식들을 아이러니하게도 임용고시 학원에 다니며 깊이 있게 배웠고, 도서관에 틀어박혀 공부하는게 얼마나 재미있던지, 지금 하는 공부가 시험을 위해 하는 공부가 아니라, 그냥 쭉-공부만 하고 살면 좋겠다는 생각도 얼핏얼핏 들곤 했다.


이렇다보니, 하루하루가 아까웠고, 시간은 빠르게만 흘러 어느새 밤공기가 차가운 계절이 왔다.


학교 후문의 5분거리에서 자취를 했기에,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간단히 아침을 먹고 도서관에 와서 가방을 풀고 책들을 셋팅하고 나면 늦어야 7시 30~40분이었다.


셋팅을 마치고, 2층 휴게실로 가서 150원인가 200원인가 했던 자판기 커피 한 잔을 뽑아와서 501 열람실의 내 자리에 앉아 정면으로 바라다보이는 창문을 보며 커피를 마시고 나면 공부가 시작되었다.


한참을 공부하다 어느 순간 고개를 들어보면, 늘상 있는 비슷비슷한 사람들로 비었던 자리들은 어느새 채워져 있었다.


자취방에 가서 저녁을 해결하고, 또다시 휴게실에서 커피를 뽑아 5층으로 올라가서 가끔은 복도에 서서 창밖을 보며 커피를 마시며 저무는 해를 지켜보기도 했다.


'아!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저물어 가는구나.'


열람실에 들어가 다시 정신없이 공부하다보면 누군가 시계바늘을 만져놓기라도 한 것처럼 시간은 훌쩍 지나있곤 했다.


그리고, 부스럭 거리는 소리와 분주한 발걸음들이 유난히 많이 들린다 싶어 고개를 들어보면 시계는 어느새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11시가 가까워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가버리고 서너명만이 남아 그 넓은 열람실을 지키곤 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도 늦은 시간이다보니, 가장 늦게 남아있는 건 두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남아있는 누군가 가방을 챙긴다 싶으면 덩달아 재빠르게 챙겨서 먼저 열람실을 나왔다.


그날도 그런 날 중 어떤 날이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던 도서관이 고요속에 잠기고. 한 명, 두 명 띄엄 띄엄 집으로 향하는 모습이 보이는 익숙한 풍경을 보며 중앙도서관 현관을 막 나서던 참이었다.


몇 미터나 걸었을까.



갑자기 옆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 화들짝 놀랐다.


"안녕하세요!"


자전거를 손으로 끌고, 가방을 멘 사람이었다.


무서운 생각이 들어 앞에서 걷고 있는 여학생을 발견하고선 종종걸음으로 쫓아갔다. 그런데 그 남학생은 자전거를 끌며 뒤에서 말을 또 걸어왔다.


"저, 나쁜 사람 아니에요. 같은 열람실에서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잠깐만, 후문까지 걸어갈 동안만 얘기하면 안 될까요?"


나쁜 사람이라고 얼굴에 쓰여있는 사람은 없겠지만, 일단은. 잠깐 봤지만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아보였다.


게다가, 이 상황에서 내가 뛴다면, 혹시라도 저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면 그것이 더  자극되어 나쁜 짓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그 사람이 계속 끌고 오고 있는 자전거를 보니, 내가 도망간다고 해도 잡히지 않을 도리는 없어보였다.


"네? 아..."


내 망설임이 느껴졌던 걸까?


자전거 남학생은(이 사람의 이름을 모르므로 이제부터 자전거 남학생이다.ㅋ) 갑자기 자기 소개를 했다.


"저는, 00과 000이라고 합니다. 4학년이에요."


무슨과 누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4학년이라고 했던 말은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소개를 들으며 속으로,

'아~그래서 아저씨 같구나...' 라고 생각했던 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4학년이라고 해봐야 많아야 스물 여섯쯤 되었을 텐데, 많지 않은 머리숱 탓이었던지 (얼굴은 기억이 안 나는데 머리숱이 없었던 기억은 유독 이렇게 나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알 순 없다.) 아무튼 스물 셋의 내 눈으로 보기에 엄청 어른(?)같은 느낌이었다.


후문까지 걸으며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구체적으로는 기억나지 않는다. 무슨 공부하냐고 해서 임용시험이라고 답했고, 자전거 남학생은 경찰시험을 준비한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도 나는, 후문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먼 걸까. 좀 더 일찍 나오는 거였는데, 내일부턴 더 일찍 나와야 할까보다. 뭐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 와중에도, 


'근데 이 사람은 정말 열심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정말 끊임없이 이야기를 했다. 


어둡고 차갑고, 어색한 밤공기를 약간은 과장된, 밝고 큰 목소리로 이겨보려는 의지를 지닌 사람 같았다.


드디어 후문에 다다른 순간. 자전거 남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저기, 저 편의점에서 뭐 좀 먹고 가실래요?"


아니, 아무리 먹는 걸 좋아하는 나였지만, 처음 보는 사람하고, 11시가 넘은 시간에 뭘 먹고 싶겠는가.


"아니요. 괜찮아요."


"아니요. 배고프실텐데, 빵이라도 사드리고 싶어서요. 사실, 저도 배가 고프구요."


"네?"


사람좋은 미소로 간절하게(?) 말하는데, 아...뭐랄까. 빵이라도 먹지 않으면 집에 안 보내 줄 것 같은 느낌? 아니. 그것보단 뭔가 조금 처량하고 슬퍼보이는 느낌 때문에, 알겠다고 하고 말았다.


편의점에 들어간 자전거 남학생은, 호빵 두개를 사서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날씨가 그렇게 춥지도 않은데 벌써 호빵이 나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호빵을 받아들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안드세요?"


호빵을 벌써 몇 입 베어 먹은 자전거 남학생은, 호빵을 들여다만 보고 있는 내게 물었다.


사실 나는, 빵을 안 좋아했다. 게다가 호빵은 돈주고 사서 먹어본 적도 없을 정도로 관심이 없었다.


"아..네..."


어쩔수 없이 호빵 밑바닥에 깔린 종이를 벗겨내고, 한 입 베어물었다.


순간, 자전거 남학생은 얼굴을 붉히며 웃으면서 말했다.


"아! 제가 긴장을 많이 했나봐요. 호빵 껍질을 벗기지도 않고 먹어버렸네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자전거 남학생에게 왠지 모를 미안함을 느낀 나는, 좋아하지도 않는 호빵을 꾸역꾸역 다 먹었다.


왠지 그 호빵을 다 먹는 것이, 내게 호의를 가지고 부끄러움과 떨림을 무릅쓰고 용기를 낸 그 자전거 남학생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일 것만 같았다.


다 먹고 나니 자전거 남학생은 또 어쩔줄 몰라하며 말했다.


"아이고. 음료수도 같이 사드렸어야 했는데. 제가 정신이 없었네요.목이 막혔을텐데..이거 어쩌나"


"아니에요. 괜찮아요. 괜찮았어요."


그렇게, 어색하게. 편의점에서 나왔다.


이제 나는 자취방으로 가야하는데, 자전거 남학생이 가지 않고 머뭇거렸다. 


"저기...저랑 만나보실 생각은 없으신 거죠?"


아...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거울같은 표정이, 장점이 될 때도 있구나.


"아...네....죄송해요."


자전거 남학생은 두 손을 절레절레 내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죄송하긴요. 제가 괜히 부담드려서 죄송하죠."


"아니에요.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집으로 가려는데, 자전거 위에 올라탄 자전거 남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내일부터 저는 열람실 옮길게요. 불편하실테니..."


"아니요. 안 그러셔도 돼요..."


익숙한 공간을 갖는다는 것. 특히나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공부할 땐 더 중요한 법인데, 내가 불편할 것 같으니 다른 열람실로 간다고 말한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시니, 꼭 선생님 되실 거예요."


"감사합니다. 꼭 합격하셔서, 좋은 경찰 되세요."



자전거 남학생은 자전거를 타고, 차가운 밤공기를 가로지르며 사라졌다.


경찰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던 자전거 남학생은 경찰이 되었을까?


경찰이 되었건 되지 않았건, 아마도 어디에선가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으로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이성이 아니라 그냥 친한 동네 언니같은 오빠(?)로 지내면 좋을 것 같았던 순박해보였던 자전거 남학생.


여러뷰운~~!


이래봬도 저,


호빵도 얻어먹어본 뇨자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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