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양식이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춥고 긴 겨울 동안 사용할 연탄과 김장을 의미했다. 집 밖에 있는 연탄 창고에 겨우내 쓸 연탄을 쌓아놓고 김장을 끝내면 겨울 양식 준비를 마친 것이다.
늦가을이면 김장을 했다. 겨울 양식인 만큼 집집마다 많이 담았다. 100포기 배추를 한 접이라고 하는데 우리 집도 해마다 한 접 정도 김장을 했다. 배추는 원성동에 있는 청과시장이나 사직동에 있는 큰 시장으로 사러 갔다.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배추를 보러 가면 여기저기 배추를 파는 장사꾼들이 자신의 배추 앞에서 호객을 했다.
“ 우리 배차 좋아유~ 한 번 보고 가셔~ 단단하니 속이 꽉 찼다니께~”
“ 배차 속이 아주 노라니 고소해유~ 이런 배차루 담은 짐치가 최고루 맛있는거유~”
본격적인 김장철의 배추시장은 바닥에 떨어져 밟힌 배추 겉잎들과, 땅이 얼었다 녹으며 생긴 질척한 물기 때문에 젖은 카펫 위를 밟고 다니는 것 같다. 우리는 배추 더미 사이와 호객하는 장사꾼들 사이를 두어 번쯤 오간 뒤, 눈여겨봐둔 배추를 골라 적당한 가격에 흥정을 한다. 속이 덜 찬 부실한 배추를 덤으로 두어 포기 더 받아오기도 한다.
그런 다음 배추시장 초입에 있는 리어카꾼에게 간다. 그곳에는 리어카를 나란히 세워놓고 여기저기 걸터앉아서 배달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아저씨들이 있다. 배추의 양이나 집이 있는 거리에 따라 배달 가격이 정해졌다. 그것까지 흥정을 해야 배추를 리어카에 싣게 된다. 갓이나 쪽파, 무 다발도 함께 실렸다.
나는 엄마와 우리 집 배추가 실린 리어카 뒤를 따라 걸었다. 차곡차곡 높이 쌓아 올린 배추 더미는 리어카가 움직일 때마다 위태롭게 흔들리곤 했다. 리어카를 끄는 아저씨의 발걸음은 빈손으로 따라가는 우리보다 빨라서 나는 뛰다시피 종종걸음을 했다.
배추를 사 온 뒤에 엄마는 내게 동태 심부름을 시킨다. 나는 엄마가 자주 가는 중앙시장의 단골 생선가게로 동태를 사러 간다. 아주머니는 꽁꽁 얼어있는 동태를 토막 내 봉지에 담아주며 한마디 하신다.
“느이 낼 김장한다니?~”
생선가게 아줌마는 단번에 우리 집 김장하는 것을 알아채셨다.
짐꾼 아저씨가 마당에 내려놓은 배추는 겉껍질을 떼어내고 반으로 갈라 저녁 무렵에 절였다. 다음 날 아침, 속을 넣기 적당한 정도의 절임 상태를 맞추기 위해서다. 아버지는 마당까지 전깃줄을 연결해서 백열등을 내어 매달았다. 작은 마당이 대낮처럼 밝아졌다. 커다란 대야와 대소쿠리와 광주리, 채반 등 집안의 커다란 그릇들도 모두 동원이 되었다. 반으로 갈라 소금물에 적신 배추를 커다란 대야에 차곡차곡 담고 위에 소금을 또 뿌렸다. 배추를 절이는 일은 아버지가 돕고 엄마가 주로 했다.
저녁에는 커다란 고무 대야에 마늘이 가득 담겨 방으로 들어왔다. 미지근한 물에 반쯤 잠겨 불린 마늘을 까는 것이 나와 동생이 해야 하는 일이다. 엄마가 흙 묻은 쪽파 뿌리를 잘라서 들여보내면 그것도 까야했다. 동생은 진득하게 오래 앉아 있지 않았다. 김장하기 전 날은 엄마만큼이나 나도 힘든 날이다.
엄마는 동생과 내가 까고 있는 마늘과 쪽파의 양을 점검하기 위해 가끔 문을 열어 확인을 했다.
배추를 절인 후에는, 군데군데 낡아 헤져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깨끗하게 빨아둔 커다란 이불 홑청을 방안에 펴고 씻은 무와 갓과 쪽파를 들여왔다. 그리고 그 위에서 배추에 들어갈 무채를 썰었다. 김장철 가을무의 파란 부분은 껍질을 두껍게 벗겨내고 먹으면 배처럼 달고 시원했다. 나는 밤이 깊도록 손가락 끝이 쪼글쪼글하고 하얗게 불도록 마늘을 깠고, 무채를 썰던 엄마는 마당에 나가서 배추를 한 번 뒤집어 주고 들어왔다.
“아니 경자 엄마, 무채를 벌써 다 쓸어논 겨? 어머나! 배추도 다 씻었네. 하여튼 경자 엄마는 못 말린다니께..”
다음날 이른 아침, 마당에는 김장을 도와주러 오신 아주머니들 목소리로 떠들썩했다. 김장하는 날에는 찰밥을 하고 커다란 솥으로 동태탕을 끓였다. 허리가 아프도록 많은 김장 속을 버무려 넣고 나서 먹는 뜨끈하고 얼큰한 동태탕은 별미였다. 큼직하게 썰어 넣은 대파를 제치고 푹 끓은 동태살과 부드러워진 두부를 함께 건져 먹던 맛은 지금도 기억난다.
속을 넣은 김치는 땅에 묻어놓은 항아리 속으로 차곡차곡 들어갔다. 항아리는 해마다 땅을 파고 아버지가 묻었고, 항아리를 묻는 자리는 정해져 있었다. 항아리는 동치미를 담기 전에 묻었다. 동치미는 김장보다 보름쯤 일찍 담았다. 땅 위로 주둥이만 내놓은 항아리 위는 흙이 들어가지 않도록 가마니를 구해다 항아리 입구만큼 동그랗게 오려 덮고 마무리를 했다. 항아리는 해마다 다섯 개를 묻었는데 가장 키가 크고 배가 불룩한 항아리에는 동치미를 담았다.
엄마는 동네 사람들과 있을 때는 평소와 많이 달랐다. 웃고 떠들고 농담도 하면서 즐거워한다. 잔소리도 안 했다. 엄마의 잔소리가 오랫동안 계속될 때 우리 집에 누군가가 오면 나는 반가웠다. 그동안은 엄마 잔소리가 잠잠해지는 까닭이다.